알콩달콩이야기(8) 기후야 춤추자, 평화랑 뒹굴자
기후야 춤추자, 평화랑 뒹굴자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진화
“할머니, 기후마켓 저희들이 할게요” 손녀들은 가을잔치를 하기 전날 저녁, 아예 짐을 싸들고 우리집에 건너왔다. 초등학교에서 저녁에 별빛장을 해 본 녀석들은 헤이리에서 열리는 햇빛장에서 농산물을 팔아본 적이 있어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래 좋아, 해보자.”
10월 9일 뜻깊은 한글날에 평화마을짓자는 네 번째 가을잔치를 열었다. 이번에는 작년 임진각 평화축제 ‘평화랑 뒹굴자’를 잇고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생명평화 축제 ‘기후야 춤추자, 평화랑 뒹굴자’로 제목을 정했다. 밭에서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자연을 느끼고 하나 되는 그런 축제이기를 바랐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 누가 오실지 걱정도 되고 비가 며칠째 오고 있어 어쩌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비가 멈추고 손님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손녀들과 일곱 살 지웅이는 기후마켓 대신 접수와 등록을 맡아 손님들을 웃으며 맞이하고 참가자 명부도 빠짐없이 작성했다.
태양열, 지열,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자립온실에서는 무궁화꽃식초를 따뜻한 차로 끓이고 꽃젤리를 곁들여 오신 분들을 환영하고, 은은한 핸드팬 연주에 이어 요가동작을 다같이 해보며 몸을 풀었다. 얼마전 새로 조성한 연못과 빗물순환시설은 에너지자립온실에 빗물을 활용하여 식물을 키우도록 설계하여 이날 첫선을 보였다. 참가자들이 가져온 물건들은 기후마켓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차례로 흩어졌다.
부엌에서는 평화마을짓자가 자랑하는 다섯명의 셰프가 전날부터 다양한 풀요리를 준비해 기후밥상을 정성껏 차려냈다. 7년간 유기순환농사를 지어 건강한 흙에서 자란 풀 샐러드와 삼잎국화나물, 노각무침, 호박잎전, 들깨송이튀김, 꽃초밥 등이 송편과 어울려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게 입맛을 돋궜다. 기후밥상이 차려진 연못 앞에서는 한반도평화통일국기 전시와 그리기 체험이 눈길을 끌었다. 언젠가 남북의 평화가 지속되고 통일이 된다면 국기는 어떤 모양이 좋을지 2013년부터 여러 비엔날레에서 국내외작가들이 그린 국기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여 우리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이윽고 온실의 색동평상 위에서 펼쳐진 공연은 참가자들이 온실과 밭에 자유롭게 앉아서 멀리 파평산 자락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퍼머컬처 밭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하늘과 산과 밭을 배경삼아 아름다운 동작으로 발레를 했을 때 열렬한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김마스터와 김태범, 손현숙님도 편안한 마음으로 특별한 무대에서 자신만의 노래와 연주를 멋지게 들려주었다. 예전에 이날치밴드와 독일의 유주베커가 여기서 풀들을 위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올해 평화마을짓자 밭에 사는 모든 생명과 사람이 함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며 평화의 춤을 추니 대동세상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농로 가장자리에 우리가 심은 쑥부쟁이와 국화, 맨드라미 길을 따라 하늘하늘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유럽의 농부들처럼 우리도 논두렁 밭두렁을 가꾸는 ‘국토의 정원사’가 되고 싶었다.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요즘, “인간은 가끔 용서하고 신은 늘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온종일 기후와 춤추며 평화랑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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