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 복권으로 번 재정 ,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복권
정창수 칼럼 - 복권으로 번 재정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복권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로마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총독에게 노예 5천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노예들이다 보니 노동 의욕 저하로 인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당시 노예 5천 명에게는 하루 일당으로 빵을 하나씩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그중 5분의 1씩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면 천 명분의 빵이 되는데, 그중 절반을 추첨을 통해 한 명에게 모두 준 후에 해방시켜 주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착취의 방법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 노예들은 식량을 더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예들은 매일 이벤트에 열광했습니다. 천 명분의 빵과 해방은 인생을 바꿀 것이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권의 기원설 중 하나입니다.
복권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기록은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 황제 때입니다. 황제가 자신이 여는 축하연회 입장 티켓에 번호를 표시해 나눠주고, 추첨을 통해 노예, 유람선, 저택 등을 준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모아진 돈은 사회복지에 쓰였습니다.
성서에도 복권의 이야기가 수십 차례 나옵니다. 민수기(26:55~56)에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여 추첨으로 땅을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라고 씌여 있습니다. 하느님까지도 복권을 활용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네로도 일종의 이벤트로 복권을 나누어 주며 체제를 유지하고 재정을 확충하였습니다.
카사노바도 만든 복권
현재와 같은 근대복권의 효시는 1530년경 피렌체에서 등장한 ‘로또’입니다. 제노바공화국에서는 90명의 정치가 중에서 5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 것에 착안해 ‘로또 5/90’ 게임이 복권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치열한 정쟁보다는 공평하게 게임처럼 정치인을 뽑는 시스템을 선택한 것입니다. 로또(Lotto)라는 단어는 ‘운명(Lot)’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우리가 흔히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카사노바가 사실은 프랑스에서 복권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카사노바는 루이 15세에게 파리 시의 재정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권을 제안했고, 책임자가 되어 2백만 프랑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중 60만 프랑을 파리 시에 수익금으로 주었습니다.
복권은 미국 식민지 개척의 자금으로도 쓰였습니다. 제임스타운을 건설했던 버지니아 사는 제임스 1세에게 건설자금을 위한 로또 발행을 승인받았고, 당시 이 회사 수입의 절반은 복권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복권으로 모은 돈으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계(契) 중에도 복권과 비슷한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복권은 1945년 일제가 군비 마련을 위해 ‘승찰(勝札)’이라는 이름으로 근대복권을 처음 발행했고, 해방 이후인 1947년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했습니다. 요즘 발행하는 로또 6/45 방식은 해외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방식입니다.
복권으로 확충된 재정
복권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복권의 구입자는 대부분 서민이어서, 공익보다는 ‘소득의 역진성’과 ‘이중조세’만 야기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23종의 복권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 돈은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정부가 진행합니다.
아무리 정부가 공공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한다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혹시 관료들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생깁니다.
사행산업감독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복권을 포함한 공공부문 사행산업은 25조 3023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첨금으로 돌려주는 돈을 뺀 순매출은 11조 3726억 원입니다. 순매출** 중** 로또 복권이 3조 5275억 원으로 31%를 차지합니다. 다음으로는 ‘토토’라고 불리는 체육진흥투표권이 2조 2524억 원으로 19.8%를 차지합니다. 이외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1조 8614억 원(16.4%), 경마 1조 7456억 원(15.4%), 강원랜드 1조 3641억 원(12.0%)로 절반을 차지합니다. 이외에 경륜과 경정이 있지만 합쳐서 6천억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순매출수입 11조 원 중에서 국세·지방세 등의 수입은 2조 108억 원으로, 매출 중 조세 기여도는 17.7%입니다. 이외에 기금으로 가는 돈이 5조 7596억 원으로 50.4%입니다. 결국 국가재정보다 기금으로 많이 가고, 그래도 여전히 기관의 운영비 등으로 32%가 사용됩니다.
돈이 어디로 가는가는 그 제도의 원래 목적을 보여줍니다. 일단 기금은 재량의 폭이 넓은 재원입니다.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20%의 사업계획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사회장 같은 경우에는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어서 항상 논란거리가 됩니다. 마사회의 목적에 맞추다 보니 인건비도 많이 나가고, 불필요한 승마장 등의 말 관련 시설을 전국에 많이 만드는 데 지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쓰인 돈도 문제지만, 쓰지 않고 모아 두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복권기금(로또)만 해도 각 부처의 복권을 통합한 것이어서 자동적으로 나누어 줍니다. 그 부처가 미처 쓰지 못해도 무조건 나누어 주다 보니 모두 합쳐 수조 원의 여유자금이 계속 남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복권기금에도 1300억 원이나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에는 연금복권과 복권기금 준비금이 있습니다. 6821억 원입니다. 국민체육기금에는 5천억 원의 여유에다가 6843억 원의 예탁금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정은 관리만이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특히 정책은 타이밍입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21~2024년 연금복권 판매액, 수익금, 적립액 변화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재정의 목적은 보관이 아니라, 소득 재분배, 자원 재분배, 경기 조절 기능 등 중요한 경제주체의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재정 축적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침체기가 없고, 성장률이 낮은 적이 없습니다. 재정의 역할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빚을 내기 전에 있는 돈을 활용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복권 #재정 #미사회장 #복권기금 #사행산업감독위 #카사노바 #이벤트 #노예 #토토 #강원랜드 #연금복권 #복권기금 #국민체육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