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48) 15.임진강 림진강 달래강 (2) 분단, 다시 전설을 쓰는 강  

입력 : 2023-03-14 03:57:29
수정 : 2023-03-14 03:59:14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48)

15.임진강 림진강 달래강

(2) 분단, 다시 전설을 쓰는 강

 

▲ 달래강 전설도. 노인령 전설도 임진강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림은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사계절)] 중 림진강 부분 위치도

 

임진강이 굽어 흐르다 만나는 휴전선, 그 달개비꽃 흐드러진 십 리 거리에서 부모 없이 과년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오누이는 몇 마디씩 고구마 넝쿨을 잘라서 강 건너 밭에 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고스란히 다 맞고 바라본 누이의 베옷. 새삼스레 솟아 보이는 누이의 가슴 언저리. 숨막히는 오빠는 누이에게 먼저 집에 가라 하고 집에 간 누이는 저녁 짓고 해어스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 덤불숲 헤매다 반달이 지고 점점점 검게 소리쳐 흐르는 강물, 그 곁에 누워, 오빠는 죽어 있었다.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은 채.

하여 흐르는 강물에 눈물 씻으며 누이가 뇌었다는 말,

"차라리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래.....(최두석. 달래강)”

 

▲ 달개비꽃이 흐드러진 십 리 거리 휴전선

 

시인은 전국에 퍼져 있는 달래강 전설을 임진강에 끌어왔다. 근친혼에 대한 죄의식으로 오빠는 목숨을 끊었지만 누이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생명을 버릴 것이야 있겠느냐고 흐느낀다. 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도덕이 달래강 전설에 작용한다. 시인은 왜 전설을 임진강에 불러왔을까? ‘달개비꽃 흐드러진 십 리 거리는 비무장지대를 연상시킨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이 공간에 남매가 살았다.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곳에서 남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종족의 절멸을 마주한 상황에서 신의 승인으로 남매가 결혼한다는 전설이 있다. 목숨을 끊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면? 그래서 비무장지대에 남도 북도 아닌 종족이 살아남았다면? 오늘의 정치와 도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을 시인은 제시한다. 그러니 이것은 전설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남매 이야기가 있다. 임진강이 시작된다는 노인령에 얽힌 이야기다. 깊고 깊은 골짜기에 남매가 살고 있었다. 둘 뿐인 남매는 심심함을 달래려고 성 쌓기 내기를 한다. 봉우리 하나씩을 정한 뒤 해가지기 전에 다 쌓는 사람이 이기는 시합이었다. 저녁 무렵, 내기에 지게 된 오빠는 지는 해를 산에 잡아매고 성을 완성한다. 순간 해가 넘어갔는데 서로를 바라본 오누이는 놀라고 만다. 백발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달래강의 오누이, 노인령 오누이 모두 임진강에선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여기선 지금도 전설이 쓰이고 있다.

 

강 건너 삼거리 마을에 '명의네 집'이 있었다. 전선이 몇 차례나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기를 거듭했다. 임진강 북쪽에 살던 한 아이가 갑자기 위독해지고 아버지는 아이를 업고 나루를 건넌다. 그런데 갑자기 포성이 멎고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이 되고 만다. 삼거리 병원에 다녀오려던 남편과 아들은 소식도 모른 채 서른여섯 해가 지났다. 휴전선이 생긴 얼마 후 아버지 오만석은 단신으로 불쑥 어머니를 찾아온 적이 있다. "아직 낫지 않은 아이를 업고 어떻게 강물을 헤엄쳐 올 수 있겠소. 나으면 데려오리다." 아버지는 하루를 지내고 돌아갔고 그날 밤 숙희가 생겼다.

 

▲ 소설 림진강의 무대가 된 삼거리

 

1991년 발표된 북한작가 김명익의 소설 림진강’. 소설은 남쪽 연천의 삼거리와 북쪽 임강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산의 세월은 70년을 넘겼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고 나면 생면부지 오누이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차라리 긴 세월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달래강 이야기처럼 근친혼은 피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달래강 오누이가 죽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십 리 폭 비무장지대가 동서로 238km나 이어진다는데 멧돼지처럼, 노루처럼 그곳에 살고 있다면 말이다. 비무장 완충지대에서 싸움도 모르고, 남도 북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을까? 아이는 커서 또 아이를 낳을 것이다. 아이들의 후손은 비좁은 비무장지대를 빠져나와 남북으로 퍼져갈 것이다. 그런 상상을 미리 한 시인이 있다.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 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고/ 평화로운 눈밭.//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일부)”

 

이만하면 비무장지대 아이들도 퍼져 살만하지 않을까? 임진강은 생기고 나서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참담한 모양으로 흐르고 있다. 전설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모양으로.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저자

 

#155호 파주에서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