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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129)  교하도서관 전은지 사서 - 교하 주민에게 사는 재미를 엮어주는 기쁨

입력 : 2023-03-28 05:34:53
수정 : 2023-03-28 07:31:53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129)  교하도서관 전은지 사서

교하주민에게 사는 재미를 엮어주는 기쁨

사서란 '문화의 빛인 도서관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일'

 

 

 

인생을 사는 스타일은 여러 가지다. 굴곡이 심하고 요란한 사건이 많지만 빈 바람을 잡으려는 헛수고로 그친 인생도 있고 조용하지만 깨끗한 물들이 조금씩 고여 작지만 맑은 샘을 만들어 주변인들이 목을 축이게 하는 인생도 있다. 교하도서관의 전은지 사서(42)도 큰 풍파 없이 맑은 샘물을 모아오는 인생을 살았다 할 수 있으리라. 그녀의 근무처는 교하도서관. 이곳에서만 벌써 12년을 근무했다. 대학 졸업 후 다른 사회 경험 없이 오로지 교하도서관서 근무한 셈이다. 그녀는 상명대 문헌정보학과를 나왔고 이어 동 대학 디지털미디어 대학원서 디지털 영상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한 때 일문학과(日文學科)를 다녀 일본 문학과 만화를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이미 상명대에서 합격 처리가 돼서 사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만화를 좋아해 지금도 가끔 딸과 만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처음 교하도서관에서 전 사서가 맡았던 일은 지하 보존서고에 등록번호 순으로 꽂혀있던 책들을 모두 꺼내 청구기호 순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 2017년 2월 북데이트 

 

첫 근무로 빈 서가에 차곡차곡 책을 꽂는 보람이 컸다

이때의 기억에 대해 전 사서는 텅 빈 자료실 서가에 책들이 분류되어 차곡차곡 쌓여가는게 보람됐다라며 밝은 웃음을 짓는다. 전 사서는 이어 홍보 담당 사서로 근무하며 어린이 프로그램, 성인들의 독서문화프로그램 등을 기획했다.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휴직 등 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2021년 계약직 사서로 재임용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으로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기는 게 보통인데 운 좋게도 그녀는 지금까지 교하도서관서 계속 근무 중이다. 직장 때문에 근처로 이사 왔는데 먼 곳의 출퇴근으로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이 또한 작은 행운이다.

 

 

▲  2023 동네사람 시즌1 포스터

 

지역주민들과 도서관의 연결점 찾는 프로그램- ‘동네 사람이 대표적

그녀가 현재 맡은 일은 지역 연계다. 지역의 현안을 파악하고 지역주민들과 도서관의 연결점을 찾는 일을 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꼽자면 교하도서관이 2012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동네사람이다. 이 프로그램은 교하지역에 새로 이주해오는 주민들이 교하를 이해하고 즐기며 살 수 있도록 지역 시민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준다. 강연이나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는 동네사람은 지금까지 44회가 진행됐다. 44명의 다양한 분야의 경험자들이 교하에서 재미있게 잘 살 수 있는 정보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설명해 참여를 독려했고 나름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동네사람' 프로그램중 가장 기억에 남은 '자서전 워크숍'

 

동네사람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자서전 워크숍

그녀가 기획했던 프로그램 중 성공적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그램은 자서전 워크숍북 데이트.

자서전 워크숍은 소동출판사의 김남기 대표와 함께 기획에 직접 참여했던 프로젝트로, 참여자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전시까지 진행했다. 2016~2018년까지 3년 동안 3번 진행했는데 2017년 참여자였던 두 할머니들은 작가가 됐다. “2008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남은 기록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남겨진 가족들이 할머니를 추억하고 기억을 공유할 거리를 만들어 놓지 못해 안타까웠다라고 말한 전 사서는 낯선 교하로 이주하신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창작물, 예를 들면 그림이나 사진, 글쓰기 등을 통해 기록물을 남기고 또 서로 친구가 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며 프로그램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대상은 50세 이상 성인들로 옆 사람 인터뷰하기, 인생의 타임라인표 완성하기, 휴대전화로 사진찍기, 함께 시 읽고 시 짓기등 어르신들이 처음 해보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  동네사람 강연장내 관련 주제 도서 전시

 

자서전 워크숍한국도서관협회장상 까지 받았다.

참여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3년간 계속된 이 프로그램은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 운영기관 평가에서 한국도서관협회장 상까지 받았다. 2018년에는 세대 간 소통을 위해 참가자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아, 20대와 50대 모녀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전 사서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좋은 일이 많았다. 참가 어르신들 간에 친분이 두터워지고 그림과 글쓰기가 취미가 되기도 하고 어느 분은 작가가 되기도 했다라며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2021년 그녀의 복귀 후에도 시니어 프로그램은 형식만 바뀌었을 뿐 계속 진행 중이다. 작년에는 사진을 주제로 해서 4회차를 운영하면서 전시회도 했다. 올해엔 노는 예술, 더하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뮤러방이란 문화예술교육단체와 함께 디어 다이어리-노래로 쓰는 나의 이야기프로그램을 5월 중순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  2022 동네사람 마크라메 표경희 

 

동네사람프로그램 중 북 데이트

그녀가 진행했던 동네사람도서관 프로그램 중 두 번째로 인상이 깊었던 것은 북 데이트. “2017년 송인서적이란 도서 도매업체가 부도가 나서 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다.

도서관이 독서생태계의 일원으로 출판계-서점-독자를 이어주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라며 북 데이트 기획 이유를 설명했다. “매월 특색있는 소형 출판사 대표를 만나 대담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든 것 같다. 또 그런 책들을 풀뿌리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 사서는 강연 준비보다는 품이 많이 들었지만 새로운 도서 정보를 전달하는 의미가 있었고 출판에 대해 많이 배웠다라고 기억했다.

 

▲  2022 동네사람

 

 

올해 동네사람확장 운영해 4월부터 12회 진행

동네 사람은 올해 특별히 교하도서관의 마을프로그램으로 확장 운영된다.

그간 동네사람프로그램이 평균 분기에 한번 꼴로 열어왔는데, 올해는 4월부터 11월 사이에 모두 12번이 열린다한다. ‘1부서 1 대표사업도서관에서 만나는 동네+플러스중 한 꼭지 프로그램이다.

425일 시작하는 시즌 1자연에 가까운 사람들타이틀로 파주지역의 자연을 탐구하고 알리는 사람들을 강연자로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다. 김성원 살래 공동텃밭 워원장, 김영금 파주 생태교육 원장, 남규조 소동출판사 마케팅팀장, 박경수 갈대 샛강 생태조사단 총괄간사가 강연자로 나서 자신의 경험치와 생각을 전한다.

시즌2는 주제가 말하고 쓰는 사람들로 문화 콘텐츠와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가들을 7~8월에 초청할 예정이다. 시즌 3에는 예술이 일상인 사람들이란 주제로 지역에서 예술가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10~11월 사이에 들을 예정이다.

교하도서관은 12번의 동네사람강연이 끝나면 교하 소식지인 디어교하잡지와 협업해 책자를 만들 계획이다.

 

 

 ▲ 기억의 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 이재연씨

 

시들지 않는 에너지, 주민들의 격려로 힘 얻는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매너리즘에 빠질 만도 한데 전 사서는 시들지 않는 에너지가 견고해 보인다. 전 사서는 홍보 담당 사서로 일하며 도서관을 알리다가 교하도서관을 사랑하게 됐다. 시원한 통 유리 건물에 탁 트인 로비, 숲으로 연결된 산책로, 함께 일하는 좋은 동료들이 있어 행복하다라며 때론 일이 많아 고단할 때도 있지만 내가 큐레이팅한 자료전시나 기획한 독서문화프로그램에 만족감을 표시하는 분들의 격려를 들으면 힘이 난다며 밝게 웃는다.

 

 ▲ 사서라는 직업으로 사람을 연결한다는 자긍을 갖고 일하는 전은지 사서

 

사서란 문화의 빛인 도서관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것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나름 철학이 깔끔하다.

올해 도서관 주간 선정표어 같이 도서관은 경계 없이 비추는 문화의 빛이다. 그 무한한 빛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사서다라며 직업에 대한 긍지를 표현했다. 촬영을 위해 도서관 산책로에 선 그녀의 얼굴이 소박하고 밝다. 사서란 직업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연결하고 사랑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려는 그녀의 수고와 노력이 그녀의 내면에 맑은 영혼의 샘물로 고이며 빛을 발하길 기대해 본다.

 

교하도서관 파주시 숲속노을로 256

사서 전은지: 031-940-5162

 

김석종 기자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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