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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역사교실 제2부 ㉕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인 임진나루 (1)

입력 : 2017-07-17 13:44:00
수정 : 0000-00-00 00:00:00

"님아! 그 강을 건너게 해주오!"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인 임진나루 (1)


 

화석정에서 8시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임진나루가 있다. 수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옛날 선비들이 임진강을 건널 때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임진나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시설이다. 또한, 주변의 산과 임진강이 어우러져 뛰어난 경승지로서 이름을 날렸다. 따라서 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임진나루와 경승지로서의 임진나루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6•25 전쟁 때 임진나루에 부교를 가설하는 미군의 모습 (자료: http://www.history.army.mil)


고려 정종이 임진나루에 부교를 설치하다

나루는 육로 교통이 물길로 인해 끊겼을 때, 그 교통로를 연결해 주는 시설이다. 임진나루도 여행객으로 하여금 임진강 하류를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 교통시설이므로 아마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나루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나루가 설치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고려 초기 정종 11년(1045)에 임진에 다리를 놓는 기록이 있다.

  “황제 폐하, 임진 나루에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어서 지나는 사람들이 다투어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부교(뜬다리)를 설치하여 편리하게 오갈 수 있게 하라.”

임진나루에 부교가 설치된 뒤로는 많은 사람과 말들이 평지를 밟는 것처럼 손쉽게 강을 건넜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부교는 장마철이나 홍수 때에 파괴되기 쉽기 때문에 오랫동안 유지되었을지 의문이다. 


태종이 임진나루에서 거북선을 구경하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한양부터 중국의 베이징까지 가는 사신길이 개척되었다. 이때 임진강을 건너는 주요 길목인 임진나루는 교통이나 국방상으로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다. 태종, 세종, 세조 등 조선 초기의 군왕들이 임진나루에 행차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특히, 태종은 임진나루에서 군사 훈련을 지켜보기도 했다.

“강에서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왜군의 선박과 거북선이 맞서 싸우는 훈련입니다.”

임진나루 앞에서 모의 전투를 전개한 것으로 볼 때, 임진나루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록은 거북선이 조선 초기 또는 고려 시대에 이미 만들어졌다는 학설을 뒷받침해 주기도 한다. 


선조가 임진나루를 끊다

임진나루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기억해 둘 것은 선조의 몽진길이다. 『선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저녁에 임진나루에 닿아 배에 올랐다. 임금이 신하들을 보고 엎드려 통곡하니 좌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한 개의 등촉도 없었다. 밤이 깊은 후에 겨우 동파역까지 닿았다. 임금이 배를 가라앉히고 나루를 끊고 가까운 곳의 인가도 철거시켰다. 이는 적병이 그것을 뗏목으로 이용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백관들은 굶주리고 지쳐 촌가에 흩어져 잤는데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이 반이 넘었다.”

마치 현대사의 어떤 대통령이 떠오른다. 자기의 안위만 보존된다면 백성이야 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은 어찌 됐을까? 전란이 발생하면 통치자가 피신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가 보인 행동들은 대부분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선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참게 축제가 열리면서 개방한 임진나루

군인들이 임진나루를 지키다

한편,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병자호란을 겪는다. 병자호란 이후 임진나루는 청의 공격을 막아내는 중요한 방어선이 되었다. 영조는 임진나루에 성을 쌓아 ‘임진진’이라 개칭하고, 성문의 이름도 ‘임벽루 진서문’이라고 하였다(1755). 통행하는 사람들은 검문을 받으며 성문을 통과했다. 교통시설이지만 군사적 기능이 강화된 것이다. 

6․25 전쟁 중에도 임진강과 임진나루를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물자를 원활하게 보급하기 위해 임진나루에 부교를 가설하기도 했다. 휴전 협정 체결 뒤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1972년에는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폐쇄되었다. 

임진나루는 최근에  참게 축제가 열리거나 생태 탐방로 관찰 등의 목적으로 부정기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나루의 기능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관광 차원에서 상시 개방을 기대해 본다.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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