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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3) 신촌종합설비 대표 허육 - 열관리시공보다 더 ‘뜨거운 삶’

입력 : 2018-03-29 12:11:00
수정 : 0000-00-00 00:00:00

   

열관리시공보다 더 뜨거운 삶

 


경기도 파주시 아동로 46번가에 가면 많은 설비업체들이 있다. ‘신촌종합설비대표 허육.

건축설비, 누수탐지, 보일러, 각종 배관 등. 실내인테리어부터 건축까지 생활상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하고 있는 이곳의 또 하나의 이름은 한국열관리시공협회 파주시회이다. 바로 파주시회의 시회장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열정 넘치는 대표의 활동만큼이나 다양한 상패가 벽면 가득 걸려있다.

신촌종합설비 대표 허육님은 지난 2월에 파주에서는 처음으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평소 친환경 난방설비시공 및 에너지 효율향상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에 솔선수범하고 국가 에너지절약운동에 앞장을 서서 받은 상이다.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한국열관리시공협회

건물 준공시 자격을 갖고 있는 업체를 통해 건축을 해야함은 안전한 건물을 짓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난방시공업 인정기능사를 갖고 있어야 가스안전관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2년째 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열관리시공협회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협회에서는 해마다 자연재해나 국가적 재난에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수해나 화재로 어려운 환경에 노출된 이들에게 전문 시공인으로 사랑과 정성어린 자원봉사는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강원도 강릉 쪽에 재해가 많은데 이때에는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고향 교하 신촌

 

아들귀한 집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의 고향은 교하의 신촌이다. 고향의 이름을 따서 신촌종합설비이다.

양촌 허씨의 후손으로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허준, 허목은 그의 선조이다. 허목은 1624(인조 2) 독서와 글씨에 전념해 독특한 전서(篆書)를 완성한 학자이다. 파주에는 이성중표문(李誠中表文)이 있고 파주시의 모든 비문은 허목이 썼다고 전해진다. 허준은 동의보감을 저술한 우리나라를 대표한 한의사이다.

따님만 있던 아버님이 60세에 얻으셨다는 귀한 아들 허육. 그에게는 웃지못할 일화가 있다. “내가 몸이 약했고 아버님이 귀가 얇으셨는데 어머님이 미신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은 점을 보고 오셔서는 누이들이 나를 미워해서 초상화를 그려놓고 날 화살로 찔러서 내가 아팠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누이와 매부를 막 두드려 팼지. 매부에게 맷돌을 던져서 큰매부가 허리를 다쳤지요.”

그의 나이 14세 아버님은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까지도 허육님을 꼭 끌어안고 주무셨다니 귀한 아들 두고 떠나가셨을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 사랑의 무게가 느껴진다. 16세에 어머님마저 병환으로 세상을 뜨자 큰누이 집에서 기거하며 걸어서 두 시간 거리인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개근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좀 더 수월하고 안일하게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둠이 드리워졌지만 그는 이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서울에서 공장을 다니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역의 유지였던 아버님의 땅을 13세에 물려받았으나 미성년자인 그는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고 그의 재산의 절반을 매부들이 가져갔다고 한다. 나중에 변호사들이 누나에게 간 재산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하며 소송을 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누나에게도 재산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누나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돈은 내것은 없고, 내게 머물다가 가는 것입니다

      

시작한 사업들을 모두 말아먹고...

21세에 재산권 행사를 하게 되어 그는 또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호기롭게 사업의 영역에 뛰어든 그는 삼립식품에 다니면서 카센터를 운영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신문지국운영, 신발가게, 완구점 등 14년간 다양한 업종의 사업을 벌인다.

돈이 무서운 것을 알았으면 잘 관리를 했을텐데 저는 어렸을 때 숨만 쉬면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돈관리에 대해 잘 몰랐어요.”

재산에 여유가 있었던 만큼 사업에 대한 애착이 적었던 탓인지 모든 사업을 모두 말아먹고 19961월에 적성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홀홀단신으로 1년간 아는 곳에서 기거했다. 1997년 부터 주유소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 그에게 새로운 삶의 제안을 해주신 분은 바로 세 번째로 주인이 바뀐 주유소 사장님.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보일러기술을 배우라고 알려주신 사장님. 그리고 전문가로써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이 되는 해에 독립을 하고 지금 금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03년도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까지 보일러시공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삶의 도전 열관리 그리고 종교

 

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다. 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자원봉사활동을 할 때에도 다른 이들이 사진 찍는 다는 것도 거부하며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함께 동참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주위에 많이 알리고 계신다고.

교회에 한사람의 의인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죠. 모두가 의인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 저는 저밖에 몰랐죠. 항렬이 높아 어른들한테도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내가 더 어른들을 모시고 대접합니다. 제가 이제 사람이 되었죠.”라며 미소 지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저에게는 3천원짜리 수도꼭지를 갈든, 10억짜리 집을 짓든 모두 똑같습니다. 똑같이 정성을 들입니다. 하느님은 은밀한 중에 보는 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인이 안보더라도 눈에 보이는 상전에만 잘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라는 뜻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한 돈은 돈은 내것은 없다.’ 단지 돈은 내게 머물다 가는 것이고 머물 때 정말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계약이 들어가면 모두 내 것 같이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재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누구 한사람이라도 따스한 손길을 내밀면 풍요로워지듯이 우리의 삶도 그가 꿈꾸는 세상도 그렇게 하루하루 빛을 발하고 있다. 삶에 충실하고 나에게 있는 것을 베풀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이성옥 기자

 

신촌종합설비 031-945-5878, 010-7734-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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