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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길은 열리는가

입력 : 2018-03-12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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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길은 열리는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과 남북·북미 정상회담 합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루어진 북한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의 특사방문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 훈 국정원장 일행의 특사단 방북 등 남북한의 특사 교환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평화의 기운이 빠르게 자라나고 있다. 

  대북 특사단은 3월 5일 남측 고위인사로는 처음으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접견과 만찬을 가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11월 초 시진핑 중국주석이 보낸 특사 숭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주지 않은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 측이 북측 특사를 환대한 데 따른 답례 성격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북측의 태도 변화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대북 특사단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접견한 뒤 서울로 돌아와 6개항의 ‘특사 방북결과 언론발표문’을 공개했다. 이번 방북을 통해 남북은 △4월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 개최 △남북정상간 핫라인 설치 및 정상회담 이전 첫 통화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 동의 △비핵화, 관계정상화를 위한 북미대화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 핵·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남측 태권도 시범단, 예술단의 평양 공연 등에 합의하였다. 

  이번 남북합의에서 눈에 띄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전향적인 태도다. 북한은 헌법 전문(前文)과 노동당 규약에까지 ‘핵보유국’이라고 명기하고 있고,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어떠한 비핵화 대화에도 거부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북합의에서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고,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정 보장’의 조건하에 핵포기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북미 간에 비핵화를 의제로 적극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경천동지(驚天動地)할만한 일이 발생했다. 대북특사의 방문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은 정의용·서 훈 일행은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대신 전달하였다. 김 위원장의 친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까지 북미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제안과 화답으로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만나게 되었다.

  북한의 국면전환은 자체의 전략적 시간표에 따른 조치

  북한이 비핵화 원칙을 수용하긴 했지만, 신년사에서 당초 북한이 관심을 드러낸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에는 큰 관심을 드러냈지만,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드러냈었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의 꽃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조기개최를 희망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의 여건 마련을 위해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원칙을 수용하지 않는 한 북미대화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원칙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면서까지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정상회담에 공을 들이고, 더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까지 제안했던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특히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은 북측의 제안으로 판문점 우리 측 지역에서 열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게 되는 최초의 사건이 되는 셈이다. 또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이것도 사상 최초의 일이 된다. 북한의 이러한 급격한 입장 변화와 관련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몇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해석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2016년 11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통상마찰을 우려한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였고, 그 뒤부터 북한 경제가 점차 물자부족과 인플레 등으로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이용해 대북제재를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강경파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북 선제타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아보려고 한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코피 작전(Bloody Nose Strategy)’이라고 불리는 제한적인 대북 군사작전 개념이 정립되고 있고, 이를 미 국내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조기 정상회담을 바랐다고 풀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징후를 아직은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의 주요 물가는 아직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고, 조만간 북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해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도 지속해 온 핵·미사일 보유 노력을 포기할 리 없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비핵화 진전이 없으면 한국이 국제공조에서 이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북한당국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음, 작년 8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군사행동의 준비완료’를 외치며 대북 군사행동을 경고했을 때에도 북한 지도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괌도 주변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4발을 쏘겠다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군사연습 기간 동안 시행되는 참수작전 훈련 때 일시 모습을 감춘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의 제한적 군사작전 위협에 굴복했을 것으로 보는 해석은 수긍하기 어렵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전략적 시간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대북 경제제재와 군사압박으로 고통 받고 두려움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 북한의 태도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주요인은 아니다. 북한의 태도변화 배경에는 이른바 ‘국가핵무력의 완성’이 있다. ‘국가핵무력 완성’에 따른 자신감이 없었다면 북한이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주민들이 굶주려도 국면전환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국가핵무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행동 위협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표명은 대북 경제제재나 선제공격론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나타났다. 2016년 5월의 제7차 노동당대회 때 이미 김정은 위원장이 당대회 결정서를 통해 “현 시기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는 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점은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이 본격화된 2016년 11월 유엔안보리 결의 2321호나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론이 등장한 2017년 8월보다 앞선 때이다.  

  북한의 핵폐기를 이끌어낼 ‘합리적 안보우려’ 해소가 관건

  북한은 작년 11월 29일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본격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착수했다. 금년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비정상적인 상태라 규정하고,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북과 남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관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해 국면전환을 예고했다. 

  김여정 북한 특사가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평양으로 돌아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강령적 지시’를 내렸다는 말에 북측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1월 25일에 발표한 ‘해내외 동포 호소문’에서는 김 위원장이 그린 ‘조국통일의 설계도’에 따라 올해의 통일대진군이 시작되었다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제2의 6.15체제’를 이어간다는 전략적 목표를 세워놓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제7차 당대회 결정서는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평화보장과 련방제 실현”을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우리 당의 투쟁방침”이라고 규정하고, 현 시기의 과제를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태도변화는 군사강국, 경제강국의 완성을 통해 ‘사회주의강국’을 건설한 뒤 ‘통일강국’으로 간다는 자체의 전략적 시간표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대북 경제제재나 군사압박에 굴복해 대화에 나왔다고 오판해 남북관계를 ‘갑을관계’로 보고 대북협상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상황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우리 측이 전략적 오산을 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전략적 시간표에 따라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에 취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응하는 보다 치밀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면서까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북한은 자신의 핵개발이 미국의 핵위협과 적대시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중단과 철폐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대로 비핵화 추진의 대가로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 방안에 대해 담판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체제안전 보장과 함께 북미 관계정상화를 요구해 나올 것이다.

  북한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지금, 13년 전에 발표된 ‘9.19공동성명’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비핵화의 등가교환물이 되기 어렵다. 진정 한반도 비핵화가 의미 있게 추진되길 바란다면,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비핵화 프로세스에 상응한 ‘합리적 안보우려’ 해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군비통제나 평화체제 수립 외에 옛 남북조절위원회와 같은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기구’ 창설도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자체의 전략적 시간표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아직 남북이 서로 불신이 깊고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0년 만에 다시 열린 ‘기회의 창’을 그대로 닫히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설사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표명한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우리는 이번 계기를 잘 활용해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결실을 얻도록 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과제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의 손으로 넘어왔다.

                                                              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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