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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27) 단발머리

입력 : 2017-02-27 16:03:00
수정 : 0000-00-00 00:00:00

 

 

 

단발머리
 

나도 나름 20대 초반엔 긴 생머리였다. 청순 가련한 미모까진 아니었지마는 축제 때 복학생 선배들한테 인기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돌연 귀밑 2cm으로 머리를 잘랐다. 그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컸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 이유가 어렴풋하게나마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머리 길이가 어깨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지금은 기르고 싶어도 어울리지가 않아져서 하는 수 없이(웃음) 단발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단발머리는 기장과 가르마를 중심으로 수만가지 헤어스타일 연출이 가능하다. 나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10년 넘게 내 단발 머리를 잘라주신 미용실 실장님이 계시다. 바로 홍대 앞 나트 미용실 실장님이시다. 실장님은 우리 친언니 연배쯤 되시고 한 군데에 오래 일하셔서인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단골이 아주 많으신 편이다. 미용실에 가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란 책이 있는데 책이 꾸깃꾸깃하고 밑줄도 여러줄 그어져 있다.

 

언제나 머리를 하려고 예약 전화를 걸면 실장님은 아주 밝고 청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다. 또 머리가 끝나고 나올때 역시나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문까지 배웅해주신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비굴하지 아니하고 가식적이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실된 말투와 꾸민 목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난 오랜 시간동안 실장님께 내 단백질의 일부를 믿고 맡겨왔던 것 같다.

 

미용실은 수다 창고이고 정보의 요새이다. 실자님은 10년 간의 내 스토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 이벤트들을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스무살 때 유진씨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어른이 되다니 세월이 야속하다고.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라는 책과 SNS '나도 엄마는 처음이란다'라는 제목을 빌리자면 저도 어른은 처음입니다. (눈물)

 

사실 2017년의 2월이 모든 사람들에겐 처음이다. 꼭 새해라서, 봄이 올거라서, 연초라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눈뜨고 숨쉬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그 시간이 나에겐 처음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실장님께 단발머리를 맡길 것이고 한 5년 뒤에도 우린 지난 시절 한때를 그리워하겠지만 누가 아는가. 지금이 그 한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김유진, 아멜)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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