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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⑥ 갑골문 이야기

입력 : 2015-01-12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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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이야기

 

세계의 4대 고대문자 중에서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자, 바빌로니아의 진흙 판에 기록한 문자, 마야 문자는 진화 과정에서 정지하거나 사용되지 않아 역사의 무대에서 소멸되었다. 오직 중국의 갑골문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갑골문은 중국의 은상(殷商) 시대 후기(대략 기원 전 1,500년에서 1,100년 사이)에 사용된 문자인데 주로 점을 친 내용을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겼기 때문에 갑골문이라 불렀다. 

 

갑골문의 발견 과정에 관해서는 오랫 동안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얘기가 전해져 왔다. 1899년 북경의 국자감(國子監) 제주(祭酒) 왕의영(王懿榮)이 학질에 걸렸다. 태의(太醫)가 진맥한 후 처방전을 써주었는데 그 중에 ‘용골"이란 약재가 들어 있었다. 집안 일꾼이 시장에 나가 사온 약재를 살펴보던 왕의영은 ‘용골"에 삐뚤삐뚤하고 마치 전자(篆字) 같은 모양이지만 해독할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동기명문(銅器銘文)에 정통했던 그는 그것이 고대의 문자라고 확신했다. 이 우연한 발견을 통해 갑골문은 세상에 알려져 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른 바 ‘용골'이란 하남 안양(安陽) 일대의 농민들이 밭 갈다 발견한 물건이었다. 

 

갑골에 새겨진 내용은 3천 년 전의 은상(殷商)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풍속, 천문,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역사자료가 없어 전설로 치부되던 중국 고대사의 중요한 부분이 제 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갑골문은 출토되던 그날로부터 끊임없이 유실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재로, 후에는 제국주의 각국 문화 거간꾼들이 각종 명목을 앞세워 대량으로 사갔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갑골문을 소장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은 12 곳에 이르는데 일본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개인과 기관 소장 합 12.443점).

 

최근 경주에서는 10년 계획으로 월성궁터를 발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발굴 기간을 단축하자고 재촉하는 모양인데 그럴 일이 아니다. 중요한 역사자료가 나타나서 우리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무릇 모든 개발은 천천히 할수록 좋다.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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