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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⑬ 헤이 · 온 · 와이

입력 : 2015-04-17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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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 온 · 와이

 

책으로 마을을 만들겠다는 불가사의한 착상을 실현한 사람이 있다. 영국인 리차드 부스(Richard Booth)가 그다.

 

마을의 이름은 Hay-on-Wye, 와이 강가의 검은 마을이란 뜻이다. 1960년 초에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청년 부스는 웨일즈의 작은 농촌 마을로 들어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는 헌책방 몇 곳을 열었다. 결국 이 마을은 세계 최초의 책 마을로 발전하여 전 세계 애서가들을 유혹하는 명승지가 되었다. 헤이 마을의 서점은 전부 합해 대략 서른 곳, 어떤 서점은 양으로 승부하고 어떤 서점은 희귀본을 전문으로 하고 어떤 서점은 초저가로 손님을 끌었는데 결국 주제가 있는 서점이 살아남았다. 모든 직업군에는 그 분야의 문제적 기인이 있기 마련이다. 복싱계에 무하마드 알 리가 있고, 화단에 살바토레 달리가 있고, 대중가요계에 마돈나가 있듯이 리차드 부스는 전 세계 서점업계에서 첫 번째로 꼽힐 기인이다.

 

부스는 1977년 4월 1일에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했다. 그는 헤이 · 온 · 와이를 독립왕국이라 선언하고 스스로 리차드 왕이 되었다. 만우절인 이날 부스는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자신이 아끼는 말을 수상으로 임명했다. 여권도 발행했는데 하나에 75펜스. 기사 작위는 2.5 파운드, 백작은 5 파운드, 공작은 25 파운드에 팔았다. 요즘도 작위와 여권을 사겠다고 돈을 부쳐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독립선언"을 하던 날 방송국과 신문사 기자들이 몰려왔고 덕분에 헤이 · 온 · 와이의 지명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헤이 · 온 · 와이는 원래 수공업과 농업을 주로 하는 마을이었는데 부스의 책 마을 사업이 진행되면서 인구 1천 명 미만의 외진 농촌 마을이 관광지로 떠올랐고 더불어 50여 농가가 민박영업을 시작했다. 조용히 스러져가던 마을이 생기를 되찾았다.

 

내가 사랑하는 파주가 서울 사람들에게 침실(아파트)을 내주기 위해 산과 들을 허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주에 헤이 · 온 · 와이 같은 책방 마을이 들어서고 그 마을이 역사적인 비무장지대와 연계되어 문화 · 생태 · 예술 마을로 넓혀지는 꿈을 꾸고 싶다. 논밭 가운데에 흉물스런 창고가 즐비한 ‘기업하기 좋은 파주"가 아니라.... 리차드 부스는 4년 전에 파주를 둘러보고 갔다.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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