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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성혐오 반대말은 인간 존중

입력 : 2016-05-26 14:26:00
수정 : 0000-00-00 00:00:00

여성혐오 반대말은 인간 존중

 

“세상이 무서워요. 세상이 두렵고,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무서운 세상이 너무 버겁습니다.”

어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자유발언대의 한 마디이다. 강남 살인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반성하고, 드러내어 고치자는 거대한 폭풍이 불고 있다.

 

책임을 개인에게 몰아 모두 면피하는 ‘묻지마 살인’이라는 결론

가해자의 특징적인 병증으로 살인의 원인을 돌리면, 나머지 사회구성원인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도, 아무런 피해의식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그렇게 정신분열자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진단을 내리면, 이후의 대책은 무엇인가? 정신분열자나 그런 증상이 보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사회에서 격리하고, 낙인 찍으면 되는 것인가?

 

책임을 개인에게 몰아서 모두가 면피가 되버리는 ‘묻지마 살인’이라는 결론은 결코 이와 같은 살인을 막을 수 없다.

 

자유발언, 왜 자유롭게 두지 않나?

강남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들이 분노하고, 그 배경에 여성혐오가 있으니 이 문제를 극복하자고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몇몇 남성들이 “그만해”라거나, “여성혐오가 아니다”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자기가 느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하고, 떠들게 할 수 있어야 민주사회 아닌가? 그런데 여성들이 자유발언을 한다고 못하게 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는데도 버젖이 핸드폰 동영상을 들이대는 몇 몇 남성들 때문에 더 예민해진다.

 

“한국은 성차별이 너무 심해. 젠더문제에 있어서 세상보다 너무 뒤쳐져있는것 같아. 이번에 강남역 살인사건만 봐도... 모든 묻지마 살인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건데 그게 성별의 문제로는 거론되지 않잖아.” 젊은 여성의 한숨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소리를 내지 못했고, 언론은 그 소리를 귀 담아 듣지 않았고, 그래서 권력자, 기득권자들의 시선과 소리만 온통 세상에 횡행했다. 그래서 여성피해자는 늘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중 90%가 여성

2014년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을 상대로 일어났다. 한국이 여성이 살해당할 확률이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가 횡행하는 인도나 이슬람 국가들보다 높은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1995년 72.2%였던 여성 피해자 비율이 2014년에 87.2%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계속적으로 여성 피해자가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디서도 문제로 거론하지 않았던 것이다.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국 살인 사건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51.0%로 과반이 넘는다.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피해자수는 2.3명으로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미국의 1.9명, 인도의 1.5명, 중국의 1.0명에 비해 단연 높은 수치이다.

 

여성혐오 문화 제대로 벗겨내야

그래서 묻는다. 어느날 갑자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오늘. 사람들이 정신병자만 피하면 된다고 말한다고 그 위험이 사라지는가? 내 친구, 내 애인, 내 동생과 누나가 행복해지길 원하지 않는가?

 

여성혐오의 반대말은? 남성혐오인가? 아니다. 인간 존중, 인간 사랑이다. 여성혐오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종기와 같은 것이다. 고름을 뽑아내야 한다. 그 치유가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고, 대화이고, 토론이고, 상호존중이다.

 

너와 내가 함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사는 그런 나라. 그래서 밤 늦게라도 햇반을 사러 나설 수 있고, 영화 ‘인턴’에서처럼 남자 어른이 여자직원의 상담자가 되는 일, ‘혐오’니 ‘무시’니 하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도 이웃 남자들을 대할 수 있는 사회로 가자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5월 17일 벌어진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제대로 진단하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변하는 것보다 내가 변해서 다른 나라에서 평생 살게 되는게 빠를거 라는 생각을 항상해. 한국이 내가 태어난 나라라는 게 너무 슬프다.”

 

이렇게 말하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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