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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통신] ⑨ 한여름의 짜증

입력 : 2016-09-02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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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짜증

 

본지 편집국 사무실을 내방한 윤장렬 박사와 함께

 

올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이미 절기상으로도 말복이 지난 8월 말이지만 아직도 낮 기온은 35도를 넘고 있다. 예부터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삼복더위’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복날의 의미를 벼가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 했다. 벼에는 줄기마다 마디가 있는데 초복, 중복, 말복을 지나며 벼의 마디가 셋이 되고, 그래야 이삭을 거둔다고 했다.

 

2년 만에 독일에서 한국을 방문한 필자에게도 무더운 여름 날씨가 낯설고 힘들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짜증에 짜증을 가져오는 일들이 있다. 바로 요즘 언론에서 접하는 내용들인데, 해외에서 접하지 못하던 실시간 데일리 뉴스를 한국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연스레 흡수하다 보니 몇 가지 이슈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사건의 본질보다 이슈를 전하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 행태에서 짜증이 났다.

 

김영란법 논의, 국가기관들 따로 놀기

먼저, 김영란법을 꼽을 수 있다. 시행을 두 달여 앞둔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대한기자협회 그리고 사학법인연합회가 헌법소원을 냈었고, 이에 주류 언론과 정부가 앞장서 훼방을 놓더니,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헌법을 골자로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의 시행을 용인했으나, 언론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들과 지방자치단체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까지 서민 경제의 위축을 우려하는 발언들과 법안의 실효성을 여전히 지적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습인데, 이는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태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국가 기관들의 따로 놀기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 특히, 주류 언론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사회 개혁에 모르쇠하는 행태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슈에 대한 비판도 견제도 아닌, 김영란법을 통해 개혁되어야 할 언론 자신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건희 성매매 주류언론 보도외면

둘째, 삼성 이건희 성매매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이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집중 보도한 이건희 사건은 한국 사회의 재벌 기업인 또는 지배층이 한 사회의 법과 윤리를 어떻게 남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은 재벌 총수의 이야기를 외면하는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다. 분명히 뉴스타파가 이를 보도했던 시점에 온라인에서 ‘이건희 성매매’의 관련 검색 기사는 뜨거운 이슈였다. 그러나 점차 주류 언론이 외면하자 삼성가의 이야기는 온오프라인에서 관심 밖의 찌라시로 대접받고 있었다. 한 인터넷 방송의 사실 보도가 주류 언론에게 외면당할 때, 그 이슈의 사실관계를 떠나 공론장에 진입할 수 없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지상파 방송이나 조,중,동에서 다루지 않는 이슈들이 어디 이건희 성매매뿐이겠는가.

 

사드배치 지역민 이해다툼으로 변질

셋째, 사드 배치에 대한 언론 보도이다. 지난 7월 13일 정부는 경상남도 성주군을 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했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인데, 정부가 이를 허용한 시점에 우리 언론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보도 행태가 있었다. 먼저,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 시민들의 반대운동에 대한 보도에서는 지역인들의 이해 다툼으로 사드 문제를 축소, 왜곡시켰다. 이는 본질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드 배치의 문제 제기를 어느 지역이 더 타당한가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 더불어 유난히 북핵 문제나 북한의 테러 위협이 신문과 방송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종편은 물론 KBS뉴스를 보면 절정에 달하는데, 저녁 뉴스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북한 소식들은 지금 당장 전쟁도발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고가비용 지불하면서 똑같은 경기 방송하는 지상파 3사

마지막으로, 리우올림픽의 방송 보도이다. 사실 필자는 이제까지 브라질의 도시들 가운데 ‘리우’라는 곳을 알지 못 했다. 영어로 ‘Rio’라는 곳을 우리는 지금 ‘리우’라고 부리고 있는데, 방송에서 ‘리우, 우리’라는 표기를 보고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국제 도시명을 제 입맛에 맞게 바꾼 일도 웃기지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올림픽 경기를 지상파 3사가 모두 동일하게 방송하는 불필요한 방송 편성은 방송사들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도대체 똑같은 경기 장면을 놓고 어떻게 시청률 싸움을 할 수 있으며,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브라질 현지에서 제공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이처럼 다양하지 못할 수 있을까 싶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국에서 한 달여 시간을 보내며 무더위에 적응해야 했고, 신문과 방송을 접하면 한국 사회의 구조를 주시해야 했다. 사실 이번 여름, 무척이나 무더운 한국에서의 여름,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늘어나는 짜증은 폭염 탓이 아니었다.

 

삼복더위를 지나며 벼의 마디가 하나씩 추가되는 자연의 섭리가 있듯이, 우리 언론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삼복더위와 같은 절기나 시간이 지나면 이삭을 거둘 시기가 찾아오리라 믿고 싶다. 이런 기대 없이는 달리 짜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과정 yunjangryol@fu-berlin.de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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