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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칼럼> 인권과 공간 - 우리안의 가자지구에 주목하자

입력 : 2023-11-10 12:03:54
수정 : 2023-11-10 12:04:08

<인권연대 칼럼> 인권과 공간 - 우리안의 가자지구에 주목하자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마스의 행위는 현행 국제법 개념으로 보면 테러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났고 지금은 그 다음의 시기에 놓여 있다. 이 테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풀까.

 

출처: BBC

 

미국과 이스라엘은 응징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이후 자신들이 세운 질서 내에서 으레 사용해오는 방법이다. 그들은 응징이, 그것도 테러분자의 씨를 말릴 정도로 가혹한 응징이 다시는 테러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미국의 응징 방식이 먹혀들었다. 대부분의 사태는 미국의 방식으로 정리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미국의 방식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은 이미 그때와 다른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전의 시기가 미국 일국체제의 시기라면, 지금은 미국 일국체제가 무너져 내리는 시기이다. 미국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국가를 동원하여 응징할 압도적 힘을 상실했다. 다른 국가들이 이제 미국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미국의 힘의 쇠퇴는 ‘규정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 데서 시작된다. 미국은 이 전쟁을 하마스의 테러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규정을 만들고 유엔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실행했다. 그러나 이제 아니다. 우선 이미 유엔이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사건에서 미국은 소수로 전락했다. 다수의 국가는 미국과 달리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이 방치하고 조장해 온 팔레스타인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보복이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다수의 국가는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 공격은 인종학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미국은 전쟁을 막을 힘도 끝낼 힘도 상실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끝내 이스라엘이 벌이는 지상전을 막지 못했다. 의도보다 무력함이 더 문제였다. 지금 중동전쟁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내년 대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운명이 걸려있다. 미국이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공화당은 이미 발을 빼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국민들이 염증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결코 달갑지 않는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과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이다. 미국은 이 전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베팅을 하고 있다. 상승하는 물가를 버텨내면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고, 자국 기업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배터리전쟁도 지속하고 있다. 동맹까지 강제로 동원하여 반도체전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미국이 패한다면 미국의 패권은 급속도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출처: BBC

 

그러나 승리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중국과의 전쟁은 제재라는 방식을 동원한 미국의 직접 전쟁이다. 제재라는 전쟁의 방식은 시한부적이다. 일본에 시도해서 효과를 본 플라자협약처럼 잠깐 사용하여 효과를 거두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1970년 이후 미국이 독자적으로 진행한 제재의 성공확률은 13%에 불과하다. 동맹을 동원한다고 해도 겨우 21%에 그친다. 이미 미국의 동맹국들은 짜증스러워하며 빈틈을 보고 있고, 중국은 그들의 최대 강점인 광물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할 준비를 마쳤다. 아마도 하마스는 이 시기가 호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적은 가장 가까이 있었다. 미국의 약점을 건드린 것이 하마스였다면 찌른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지상전을 개시하며 중동전을 벌였다. 네타냐후 개인의 독선으로 결정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준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느 편에 서느냐는 매우 중요했다. 이란의 참전이 전쟁의 규모와 관련이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선택은 전후 질서와 관련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편을 들어야만 미국은 전후에도 중동을 계속 관리할 발판이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오히려 팔레스타인 편을 들고 나섰다. 이 전쟁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한 것은 이 전쟁의 해법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에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가 중재를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중동전쟁을 중재할 명분도 힘도 없다. 이스라엘은 이미 중동전을 개시했다. 이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국이 중재자로서는 적임자이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중국이 지향하는 양 국가 건립안에 동의해 줄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별로 없다. 결국 미국이 변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지리한 3개의 전쟁이 벌어지는 참혹한 시기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시민들이 미국의 변화만을 기다린 채 이 참혹한 시기를  바라만 보며  보낼 수는 없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미국적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시기의 해법은 미국적 질서가 공고하던 시기의 해법과 달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아젠다 중에 하나는 공간 민주주의 문제이다. 미국적 질서가 공고하던 시기 국내외 인권운동은 주로 민주적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바꾸는 데 주력해왔다. 이것은 법과 질서를 유지할 힘이 있는 행위자가 있다면 유효한 민주주의 건설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엔이 주도하던 국제법은 무력화되어가고 있고, 미국이 주도한 국제 경제 룰은 미국부터 지키지 않는 무질서의 세계가 도래했다. 한마디로 두 진영의 강대국이 ‘차가운 평화’를 주도하는 신냉전의 시기가 아니라 아무도 뚜렷한 해법을 내지 못하고 끝없이 충돌하는 무질서의 시기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였다.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다. 세계는 국제법을 너머 존재하는 이 폭력적 공간을 해체하는 데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가간 수교만 다시 이루어지면 중동의 평화는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폭력적 공간은 체제가 동요할 때 어김없이 폭발한다. 미국의 할렘가와 월가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영원히 공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의 공권력이 무너지자 할렘가에서 번지기 시작한 총기 난사와 약물 복용은 부자 동네 베버리힐스까지 잡아먹어버렸다. 미국의 할렘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자지구도 마찬가지이다. 가자라는 비인간적 공간을 방치한 가혹한 결과를 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틈을 보이자 가자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미국 할렘가의 풍경" 미국의 할렘가는 전국화되고 있다> 출처: The Sun

 

아마도 미국은 다시 국가 간 합의를 도출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 가자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미국이 그 법을 주도해 만든다고 해도 미국은 이미 그 법을 끌고갈 수 있는 행위자가 아니다. 아무리 강한 법도 무력한 시대이다. 이제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간의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간민주주의는 다자주의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국가와 인종, 종교를 초월하여 민주적 공간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수정해서 집행할 수 없는 시기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 국경, 종교, 이데올로기를 떠나 가자지구를 사람이 살 수 있는 인권적 공간으로 만드는 구상에서 출발해보자.

 

덧붙이자. 가자지구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휴전선은 이미 우리가 가자지구임을 보여주는 증명서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반도가 아니라 가자지구 같은 갇힌 섬이다. 세계체제는 흔들리고 있고, 남북은 서로 틈을 노리고 있다.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다. 법이나 제도, 이데올로기의 관점이 아니라 공간의 민주주의 관점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국내에도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폭력적 공간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다. 부자들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들만의 스카이캐슬을 만들고 있고, 날로 발전하는 빅테크기술은 훌륭한 그들의 수성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미 노동의 상당부문이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림동이나 안산같은 지역은 인종적 혐오의 공간으로 자리매김되어 되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도 뉴욕같이 완전한 공간이 이분화된 국토가 만들어 질 것이다. 인권의 사각지대는 순식간에 언제든지 가자지구처럼 폭발할 수 있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 그리고 그것이 구조화되는 공간적 인종주의로부터 절대 자유로운 국가가 이미 아니다. 우리 안의 가자지구부터 살펴보는 일을 시급하게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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