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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원전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에 불과  

입력 : 2022-09-23 0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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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포럼 논평>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원전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에 불과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2031년까지 유예조항의 문제

부지확보 및 건설 시점이 없는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조건

지속가능성 기여도와 무관한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포함

해외수출 또는 해외투자유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

 

 

 

환경부는 9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전을 포함한 녹색분류체계안의 윤곽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전 포함 조건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원전건설의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로 전락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새로운 글로벌 지속가능 규범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적응과 해외수출에서도 경쟁력을 갖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원전 관련 조항들이 두드러지게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환경부의 원전 포함 조건 중 특히 사고저항성 핵연료의 적용 시기, 목표연도를 제시하지 못한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지속가능성 기여도와 무관한 원자력연구개발 사업의 문제들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2031년까지 유예조항의 문제

 

 

 

EU의 사고저항성 핵연료 2025년부터 적용은 원자력 산업계의 탄원에 따라 2.5년간을 유예해준 항목으로 그 이전에 건설허가를 받는 신규원전은 이 조건에서 면제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 2025년까지 새로이 건설허가를 받을만한 신규원전 사업이 없어 사실상 향후 모든 신규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적용해야 할 전망이다.

 

- 유럽에서 원전 발전사업자는 실제 건설 이전에 건설계획 승인, 최종설계사양, 예비안전성분석 등 건설허가에 총 5년 소요.

 

최근 사례인 영국 사이즈웰-C(Sizewll C) 원전사업은 발전사업자(EDF)가 지난 20205월에 신청한 건설계획을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로부터 승인받는 데에만 22개월이 걸렸고, 이후에도 최종설계사양, 예비안전성분석 등 안전규제기관의 심사에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

 

때문에 환경부 안처럼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점을 EU보다 6년 뒤인 2031년으로 지연하게 되면,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원전(신한울 3,4)과 수명연장을 추진 중인 노후원전 10기는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될 수 있게 된다.

 

- 윤석열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신규원전 및 노후원전 수명연장에 대한 심사 및 허가는 2031년 이전인 현 정권 임기 내에 모두 진행될 예정

 

녹색분류체계안의 다른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국내 원전들은 향후 9년간 사고저항성 핵연료 조건에 대한 유예를 받으면서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어, 동 조건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준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조처는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원전 안전을 강화하려는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처사이다.

 

부지확보 및 건설 시점이 없는 고준위방폐물 처분장 조건

 

이번 안은 고준위 방폐물 처분 부지 및 건설의 시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2차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2차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을 법제화할 경우 이를 방폐물 처분의 세부계획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2차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 역시 부지확보 및 건설에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다.

 

이는 2050년 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운영할 세부계획을 조건으로 제시한 EU의 녹색분류체계와 대비된다.

 

결국, 녹색분류체계에서 독자적인 엄격한 규정이 필요한 대목에서 환경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원자력 법률의 제정으로 떠넘긴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고준위방폐물 처리나 처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건설과 운영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미래세대에 필요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이다.

 

지속가능성 기여도와 무관한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포함

 

EU의 경우 핵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기술에 국한해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을 지원한다는 규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녹색금융의 지원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국내의 경우 모든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전체를 녹색금융으로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애초 녹색분류체계의 취지가 무색하게 또 다른 원자력 지원제도로 전락할 것이다.

 

해외수출 또는 해외투자유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

 

환경부 보도자료는 문답자료에서 EU 대비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원전수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질문에 방폐장 처분시설은 EU회원국의 의무사항이며,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일단 수출한 뒤 실제 가동시기인 2030년대 중반 이후에 공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방폐장의 경우, 유럽조차도 원전설비규모가 작은 핀란드, 스웨덴만 부지를 확보해 건설 중이며, 이마저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 프랑스는 법률제정(1991) 후 후보부지로 뷔어(Bure)를 확보(1994)했으나, 부정적인 여론으로 실질적인 방폐장 추진이 지연되어옴.

 

사고저항성 핵연료의 경우, 기존 원전을 먼저 유럽국가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은 뒤 건설 준공 시점인 2030년대 중반부터 적용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 환경부의 논리는 일단 기존 설계 원전(APR1400)을 수출한 뒤 10여 년 후에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공급하면 된다는 의미.

 

그러나 EU 녹색분류체계의 원전 포함 조건은 건설허가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되며, 금융지원 여부 역시 건설허가 당시 허가된 원자로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 즉 건설허가 당시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을 인정 받으려면, 핵연료 설계는 물론 이에 맞는 원자로 핵설계 코드, 열수력 코드 등 원자로 안전운전 관련 컴퓨터 코드 시스템도 심사 후 면허를 받아야 함.

 

현재 국내 원자력계의 수출목표인 동유럽국가들이 프랑스와 함께 EU 택소노미의 원전 포함 보완법안 통과를 지지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원전건설에 금융지원을 지원받기 위했던 것이다.

 

때문에 사고저항성 핵연료가 준비되지 않은 원전은 원자력계가 수출대상으로 고려 중인 동유럽국가들로부터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된다.

 

국내 전력계통 여건에서 원전의 좌초자산화 위험 고려 필요

 

환경부는 녹색분류체계에서 국내 전력계통여건에서 원전의 좌초자산화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대륙과 고압송전선로(HVAC)로 연계되지 않은 독립계통인 국내여건에서 국제적 추세에 따라 변동성 재생에너지가 증가할 경우, 전력당국(전력거래소 등)은 전력계통 안정을 위해 원전의 출력감발을 늘려야 한다.

 

세계 주요국은 이미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라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해 원전의 출력감발을 본격화했으며, 영국은 지난 2020년 최대 규모 원전인 사이즈웰-B(1,250MW)5개월간 50% 출력감발 운전한 바 있다(2021년에는 정비를 이유로 동기간 가동중단). 재생에너지 증가로 순수요(총수요-재생에너지)가 낮아진 상황에서 대형발전설비인 원전의 불시정지가 발생할 경우 순간적인 수요-공급간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전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출력감발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5%로 낮은 국내에서도 이미 전력당국은 순수요가 줄어드는 연휴기간 6회에 걸쳐서 신고리 3,4호기 원전의 출력감발(20%)을 진행했고,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라 향후에는 다른 원전들도 더 빈번하고 강도 높은 출력감발을 확대해야 할 전망이다. 이러한 전력계통 운영에 대한 고려가 없는 원전 확대는 좌초자산을 늘리는 위험을 높이게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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