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책만세 <8> - 딸! 전생에 우리 무슨 사이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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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전생에 우리 무슨 사이였니?
- 딸기 탕후루 만들기
▲최 은 미: 나이 들어가는 나를 인정하고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올해 고3인 딸은 평일에는 조기 등교와 야간 자율학습 그리고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낸 후 늦은 시간에 집에 온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자는 시간 포함해서 길어야 여덟 시간이다. 등하교를 책임지는 나를 제외하고 가족들이 딸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은 아침 식사 때가 전부일 때가 많다.
어느 날, 딸아이가 딸기 탕후루가 먹고 싶다고 한다. 그것이 뭐냐고 했더니 설탕 시럽을 입힌 딸기라고 한다. 그래서 집 주변의 간식 가게와 제과점 그리고 인터넷을 알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파는 가게가 없다고 하니 집에서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유튜브에 나와 있으니 보고 만들어 달라는 말이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먹어 보지도 않아 자신은 없지만 공부하느냐 고군분투하는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그러겠다고 했다.
주재료인 딸기와 흰설탕을 사와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을 약간의 물과 섞어 끓인 후, 깨끗이 씻어 말린 딸기에 이 설탕 시럽을 입히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두 팩이나 되는 딸기를 가지고 신이 나서 만들었다. 늦은 밤, 돌아온 딸에게 자랑하며 설탕 시럽으로 범벅이 된 딸기를 내밀었다. 졸리더라도 엄마 성의를 봐서 몇 개 먹고 자라고 했다. 그러자 딸이 하는 말이, “이게 무슨 탕후루야. 끈적거리는 설탕물 묻힌 딸기지. 유튜브 본 거 맞아? 엄마처럼 요리 잘하는 사람이 이것도 못 해!” 하는 거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씩씩거렸더니 이 유튜브를 보라며 사이트를 알려 주고 방으로 쏙 들어간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까 봐 늦은 밤 데리러 가고 머리도 감겨주고, 해달라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있는데 엄마인 나를 완전히 종처럼 부려먹는 딸이다. 나는 딸 아이의 몸종이 되어 온갖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다고 했더니 옆에서 남편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자기는 이 집에서 돈 벌어오는 머슴이라고 한다. 웃음이 나왔지만 반격할 말이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공부한다고 애쓰는데 해 줘야지’ 싶었다.
탕후루 만들기 2차전에 들어갔다. 고수의 유튜브를 여러 번 반복해서 시청하고 딸기는 깨끗이 씻어 이쑤시개에 꽂아 놓고, 설탕 시럽을 만들 준비를 했다. 두꺼운 냄비에 두 컵의 설탕과 물을 조금 넣고 조리기 시작했다. 탕후루는 설탕 시럽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너무 타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 덜 조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시럽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탔다. 탄 냄새가 부엌을 장악했다. 이번에는 소심해져서 조금 덜 조렸더니 찬물에 넣은 시럽이 굳을 생각을 안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튜브를 다시 보며 어느 포인트에서 오류가 생겼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조금 덜과 조금 더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설탕시럽 한 숟가락을 떠 얼음물에 넣으니 원하는 결정이 생겼다. 이번에는 성공한 듯했다. 이쑤시개에 꽂은 딸기를 둥글리며 시럽을 묻히고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스티로폼 상자에 꽂아 식히는 과정을 거쳤다. 흘러내리는 시럽이 얼마나 뜨거운지 손가락 데는 것은 기본 옵션이었다. 그리고 어찌나 빨리 굳던지 불에 얹어 녹이다가 또 태워버렸다. 겨우 열두 개의 딸기 탕후루를 만들기 위해 삼 킬로그램의 설탕 한 봉지를 다 써 버렸고, 부엌에는 밑바닥이 새까매진 냄비와 끈끈한 시럽으로 덕지덕지 엉겨 붙은 잔해들이 즐비했고, 내 손가락은 화상으로 따끔거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수 유튜버의 딸기 탕후루와 내가 만든 것의 모양이 거의 비슷했고, 단단히 굳은 탕후루는 잘 만들어졌을 때 서로 부딪히면 맑은소리가 나는데 내 것도 그랬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딸이 돌아오면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이 묘하게 설렜다. 늦은 밤, 집에 온 딸에게 오늘의 딸기 탕후루 만들기 무용담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더니 듣는 둥 마는 둥, 만든 탕후루를 보여 주었더니, “괜찮네” 하며 딱 한 개를 집어먹고 피곤하다며 방으로 쏙 들어간다. 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조용히 부엌으로 돌아와 정리했다.
부모의 품에 있을 때 귀하게 크라고 공주 대접 해 주었더니 울 딸은 자기가 진짜 공주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에 딸아이와 나는 양반집 아기씨와 종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책만세'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세상이란 뜻으로, 파주 교하도서관 독서동아리입니다. 일년에 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매일 일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2021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각자 책 한 권씩을 엮어서 독립출판물을 냈습니다.이 책들에서 한 편씩 뽑아 <파주에서>에 연재합니다. (문의 시옷살롱 031-955-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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