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석 살린 적성 율포리 마을의 최승달씨 인터뷰 - 파주시민네트워크(준) 네 번째 역사탐방
수정 : 2022-03-02 00:59:23
기우제 유산을 보존한 마을이 있다고?
- 기우제석 살린 적성 율포리 마을의 최승달씨 인터뷰
- 파주시민네트워크(준) 네 번째 역사탐방
맥이 끊겨 자취를 감춘 기우제를 복원한 마을이 있어 관심을 끈다. 파주 적성면 율포리 마을이다. 게다가 기우제 상징물까지 보존하고 있다. 크고 너른 ‘기우제석’이다. 기우제 상징물을 보존한 곳은 매우 드물며 기우제석을 보존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이 간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 기우제’라는 것이다. 제(祭, 제사)는 마땅히 남성의 영역이라는 관념이 있던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기우제가 어떤 모습으로 지속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기우제석을 보존하고 마을의 기우제를 복원한 최승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풀 속 방치된 기우제석 보고 “마음 한편이 빈 듯”
최승달 씨는 적성 율포리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과 부천 등에 나가서 생활하다가 2010년 율포리 마을로 돌아온다. “연세 드신 부모님도 모시고, 나고 자란 곳에서 생활하고자” 했다.
그런데 마을의 기우제석이 다른 곳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군 부대에서 걸리적거린다고 기우제석을 한쪽으로 치워버린 것이다.
“굉장히 착잡했죠. 어려서부터 농토로 가는 길에 기우제석 옆을 지나가면서 늘 보고 지냈어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점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곳에 처박혀져 수풀 속에 묻혀 있더라고요. 뭐라고 할까…. 마음 한편이 빈 듯했어요. 저 돌은 우리 동네 상징물로서 가치가 있는데, 우리가 마을의 후손이라고 말하기 힘들지 않겠나. 반드시 있던 자리로 돌려놔야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죠.”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가 2013년 무렵에 일이 생긴다. 마을 사람 하나가 버려진 기우제석을 집 마당에 정원석으로 쓰려고 가져가다가 사고가 벌어진다.
“기우제석이 엉뚱한 곳에서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 보니, 마을 사람 한 분이 지게차를 불러서 가져가려고 했죠. 그런데 기우제석을 옮기다가 지게차가 전복되었어요. 자칫 사람이 다치는 큰 사고가 날 뻔했죠. 그래서 제가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어요. 신성한 돌을 가져가려다가 하늘의 벌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 있던 곳에 두라고요. 하하. 그랬더니 다시 갖다 두더라고요.”
이후, 최승달 씨는 기우제석을 본래 자리로 옮기고 기우제를 복원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 2014년 마을 청년회장을 맡아 그 일에 나서고자 한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청년회장을 하면 마을에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을의 청년회장을 맡아 일을 벌이려고 통장을 봤죠. 그런데 잔고가 30만 원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마을에서 일한 적이 있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부탁했어요. 어떻게든 나중에 돈을 꼭 마련해 줄 테니, 기우제석을 본래 자리에 돌려놓고 주변 단장을 해달라고요.”
포크레인 기사는 사연을 듣고서 기우제석을 옮기고 주변 단장을 하는 일에 ‘대폭 할인’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도움을 주었다.
“요 앞 임진강에 널려 있는 현무암을 가지고 와서 기우제석 주변에 둘레석으로 쌓아 단장해 주었어요. 모양이 괜찮은 돌들을 골라서 탄탄하게 쌓아주셨죠. 게다가 당신이 사업하려고 집에 심어놨던 주목 나무와 꽃나무를 심어주셨어요. 이런 뜻 깊은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고 뿌듯하다며 작업을 다 해주셨어요.”
이렇게 큰 도움을 받았기에 기우제를 할 때마다 귀빈으로 초청한단다. 기우제석에 술 한 잔 올릴 수 있도록. 이렇게 기우제석을 제자리에 놓고 주변 단장까지 마친 것이 2015년 봄의 일이다.
어릴 적 기억, 마을 어르신들 이야기,
민속 자료 종합해 기우제 복원 행사 진행해
이제 기우제를 복원할 차례다. 그는 자신의 어릴 적 기억(중학교 2학년)과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1970년대 후반에 마을 기우제가 이렇게 진행되었다고 설명한다.
“강 건거 백학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어요. 가뭄이 들어서 농사가 안 되니까, 여기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야겠다고 했죠. 또 요 옆에 객현리라고 하는 마을과 장현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어요. 우리 마을은 율포리라고 하는 곳이고요. 네 개 마을이 모여서 기우제를 했죠.
사람들이 경운기에 음식을 싣고 왔어요. 음식 몇 가지 차려 놓고, 막걸리도 따라서 돌에 부었어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소리를 했고요. 그리고 행사에 하던 게 뭐였냐면… 기우제석을 밧줄로 묶어서 경운기로 잡아끌었어요. 그리고 뒤에서는 나무 작대기를 가지고 여럿이 함께 돌을 미는 의식을 했고요. 이 신성한 돌을 괴롭히는 거죠. 괴롭혀서 하늘을 노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이 인간을 꾸짖기 위해 천둥, 번개, 비를 내려주시는 거죠.”
그런데 경운기로 끄는 것이 전통 방식은 아니고 현대에 들어 변형된 형태일 테다. 그래서 최승달 씨는 민속 자료들을 살펴보며 기우제석을 잡아끌고 나무 작대기로 돌을 미는 것과 맥락이 닿는 행위를 찾아본다. 그러다 단서를 찾는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기우제석 밑의 구멍에 나뭇가지들 주워서 불 지피고 놀았거든요. 어르신들이 지나가는 길에 보시고 그러면 “경을 친다”고 혼을 내기도 했고요. 기우제석 밑에 있던 그 구멍이 단서였어요!
긴 나무를 돌 밑의 구멍에 꼽은 다음에 이 바위를 들썩들썩하는 행위가 원래 방식이었던 거죠.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돌 밑에 밧줄을 넣어 묶어서 소나 경운기로 잡아끌고 뒤에서는 나무 작대기로 여럿이 함께 돌을 미는 행위로 바뀐 것이고요.
원리적으로는 이래요. 긴 나무로 돌을 들썩거린다는 것은 음양교합에 해당하는 행위예요. 긴 나무는 남근을 상징하고, 구멍은 여근을 상징하죠. 구멍 속에 나무를 넣어서 바위를 들썩들썩 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것도 대낮에 그 행위를 함으로써 하늘을 놀라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이 노해서 비를 오게 하는 행위를 한 거죠.”
주민이 직접 역사문화 유산 보존하고 복원해 의미가 커
이토록 힘겹게 기우제석을 보존하고 기우제를 복원하고서, 드디어 2015년 기우제 복원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夏至)를 낀 주에 기우제 행사를 열었다. 나무를 기우제석 틈에 끼워 움직거리는 행위를 기우제의 주요한 행위로 삼아서.
한편 기우제석을 중심으로 복원하다 보니, 임진강에서 키질하는 행위(강에서 키로 물을 까부르는 행위)는 행사의 집중을 위해서 미리 임진강 물을 떠와서 기우제석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후 율포리 마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기우제를 열었다. 2017년, 2019년에도 기우제를 계속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우제를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승달 씨는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기우제 복원 행사가 열리길 바라는 하는 마음이 여전하다.
율포리 마을의 기우제는 마을 주민이 직접 나서서 마을의 역사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복원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소중한 역사문화 유산을 보존한 이곳에 사람들의 관심과 지자체의 지원이 있다면 더 좋을 테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 기우제’
파주 적성 율포리에서 1970년대에는 남성 여성 다 섞여서 기우제를 진행했다. 그런데 마을의 가장 연로한 어르신(2010년대에 90살이 넘은 분)은 “옛날엔 여자들이 했어.” 하고 말한다. 기우제석에 술을 올리는 일도 강에서 물로 키질하는 것도 여성이 했다고 한다. 여성이 주도하고 남성은 도와주기만 했다는 것이다. 율포리 외에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여성 기우제 보고 사례는 이미 여럿 있다. 논산 지역의 기우제 보고 사례는 이렇다. 마을의 부녀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키를 뒤집어쓴 채 풍물을 울리면서 강변이나 시냇가로 나아간다. 현장에 도착하면 키로 물을 까부르면서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광석면 항월리에서는 피 묻은 서답(생리대)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천으로 가서 키로 물을 까부르며 논다. 모두 율포리처럼 여성들이 강이나 냇가에서 키로 물을 까부르는 행위가 같다. ‘디딜방아 의례’도 여성 기우제에 해당된다. 이는 다른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치고 마을로 가져와서 거꾸로 세우고 거기다 생리혈이 묻은 속곳을 씌우는 의례다. 이로써 마을의 질병을 퇴치하고 비를 오게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은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고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된다. 율포리의 경우는 기우제석이라는 상징물이 남아 있는 여성 기우제로 더욱 관심을 둘 만하다. |
* 이 기사는 최승달 씨의 현장 설명(2월 20일)과 인터뷰(23일)를 통해 작성했다. 율포리 기우제석 현장 설명은 ‘파주시민네트워크(준)’가 주관했다. 파주시민네트워크(준)는 파주 역사 탐방을 다달이 진행하고 있다. 오는 3월 27일에는 칠중성, 육계토성, 한배미마을 역사 탐방을 진행한다.
-서상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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