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 박사의 통일 문화 산책 ⑬ 통일의 필요조건과 남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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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필요조건과 남북한
1980년대 후반 냉전체제의 한 축을 차지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분단국가이던 독일, 예멘은 통일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통일은 커녕 남북한 사이 대결과 적대의 분위기만 더욱 고조되었다. 왜 그랬을까?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 외세 때문이었다면 냉전체제가 와해됐으니 분단체제도 함께 무너져야 하지 않았겠는가?
위 의문은 한반도의 분단이 단순히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이 합세해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깨달았을 때 풀린다. 분단의 원인이 내 ·외부에 동시에 존재한다면 분단의 극복, 즉 통일은 외부적 요인의 해소뿐 아니라 내부적 요인도 함께 해소돼야만 가능할 것이다.
통일의 필요조건 1
독일, 예멘, 베트남 등 분단국들의 통일과정을 분석하면 통일의 필요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통일의 동력이 작동됐던 것이다. 두 가지인데 첫째는 대립하고 있는 양국 간 힘의 균형이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분단국에서 대치하고 있던 두 나라 사이의 통합은 국력 경쟁에서 세력균형이 무너질 때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전쟁에 의해서든 아니면 협상에 의해서든 통일방식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이는 물리학의 기본원리와도 상통하는데, 두 개의 물체 사이에서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쌍방 중 어느 하나의 힘이 더 크고 다른 하나의 힘이 작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힘은 국력(國力)으로 표현되는데 천연자원, 지리, 인구, 경제력, 군사력, 동맹관계, 국민의 사기, 이데올로기, 정치제도, 정부능력, 지도자의 리더십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지지만 경제력, 군사력, 정치적 정통성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1991년 통일 당시 인구에 있어서는 서독이 동독의 3.8배, GDP는 13.3배로서 동서독 간에 국력의 균형이 깨진 상태였다. 협상에 의한 통일을 이룩했던 예멘의 경우에도 통일시점인 1990년 무렵 북예멘과 남예멘 사이 국력 균형이 이미 깨져 있었다. 인구에 있어서 북예멘은 남예멘의 3.8배, GDP 총액에 있어서는 5.5배로서 양측 국력의 격차는 뚜렷이 나 있었다. 더욱이 남예멘은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천연자원도 별로 없었으며, 67년 영국군이 철수하고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면서 수도 아덴이 중개무역항의 기능을 상실하자 70년도 이후에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일한 수입원이 남예멘 노동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벌어 송금하는 돈이었다. 당시 남예멘은 사회주의 비효율과 내전으로 인해 1980~88년 사이 GNP가 연평균 3.2%씩 감소하고 만성적인 식량 · 소비재 · 의약품 부족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통일을 이룩했던 베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남베트남측이 우세했지만, 정치적 정통성 측면에서는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측이 압도했다.
통일의 필요조건 1 과 남북한 현실
통일의 필요조건 중 첫 번째 요소인 국력비교를 남북한에 적용해보자. 남북한의 주요지표를 비교하면 2013년 기준으로 남한이 북한에 비해 인구 2.1 배, 명목 GNI(국민총소득) 42.6 배, 1인당 소득 20.8 배, 발전 전력량 23.4 배 등 인구, 경제력, 산업생산력 등에서 월등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군사력에서도 8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남한이 북한에 비해 훨씬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정치적 정통성 측면에서도 남한체제에 문제점이 있지만 왕조체제인 북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모든 측면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 당시 독일, 예멘 등과 비교해봐도 훨씬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격차가 너무 커 통일 이후 사회 통합의 어려움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어쨌든 2015년 현재 통일의 필요조건 1은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학박사 ?nbsp;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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