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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⑯ ‘도서관 육아’ 유정미씨

입력 : 2015-05-28 10:51:00
수정 : 0000-00-00 00:00:00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아이의 그 시절은 이킬 수 없어요”

 

 

유정미(36세, 파주시 동패동)씨는 2007년도 사라를 낳고 5주 만에 파주로 이사왔다. 아파트 분양을 받아 입주한 것이다. 위로도 아이가 둘이 있으니, 집안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집안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지 못했다.

 

3년동안 매일 9시에 도서관 출근(?)

“집은 허물어지면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아이는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문구가 가슴에 박혀서 도서관 출근을 시작했다. 매일 아이와 함께 아침 9시면 어린이실을 점령(?)하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 9시면 교하도서관에서 사라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그전에 사연이 있다. 사라가 7개월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교사로 취직했다. 출근해서 사라를 다른 반에 맡겨 놓고 일을 했다. 어린 아기였지만 엄마가 자기 옆에 없다는 것, 엄마가 자기가 아닌 다른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몇 달 다니지 못하고 어린이집을 그만 두었는데, 아이가 3개월 동안 잠을 안자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이토록 아픔이 클 줄이야. 이후에도 정미씨는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 않았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찾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이가 16개월 되었을 무렵부터 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아침 9시에 나와서 12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그저 직장이라 생각하고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거지만 하고 나온 집안은 첫째와 둘째가 하교하고 와서 놀다보면 엉망진창이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남편이 이해해주고,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면 같이 청소를 했다.

 

5개월 동안 책을 넣었다 뺐다 놀기만

도서관에 나온 후 처음에 사라는 아무것도 안했다. 그저 여기저기 걸어다니기만 했고, 정미씨는 아이 뒤를 쫓아다니기만 했다.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도서관을 선택했는데 아이는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회의도 들었다. 이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일까? 효과가 있는 것일까? 등등. 사라는 엄마 마음도 모른채 5개월 동안 책장에서 책을 넣었다 뺐다 놀기만 했다. 엄마 어깨 위에 올라가 책을 구경하다가, 책으로 집을 쌓았다가....그러다가 어느날 사라가 책 한 권을 읽어달래서 놀이처럼 읽어주었다. 아이가 책을 골라 갖다주면 읽어주었다. 1권을 3시간 내내 읽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10권도 채 안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 지 않았다. 엄마 몸을 놀이감 삼아 머리 위로 올라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그저 오랫동안 관찰하듯 보기도 했다.

 

"사라는 학교 갈 때까지 한글을 못 깨우쳤어요. 큰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주었더니 4살 때 글자를 깨우쳤는데...사라는 그림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아이마다 글을 읽고 깨우치는 시기는 다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사라는 도서관을 졸업(?)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종종 "도서관 가고 싶다"고 한다. 엄마랑 아빠랑 주말이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놀다 간다.

 

아이와 1:1로 교감하고 취향 알 수 있어

사라를 데리고 도서관 다닐 때 동네 엄마들이 같이 가자해도 그저 웃기만 하고 답을 안했단다. 엄마들과 오면 엄마들끼리 얘기 나누느라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게 싫어서 도서관을 혼자 다녔다.

 

도서관은 아이랑 엄마가 1:1로 교감하기 정말 좋다. 책이 있고, 책안에 다양한 경험이 있고. 더구나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서 아이의 성향이 드러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이 스스로 자기 취향을 들어내어 그림을 보고, 책을 선택하고...도서관에 오면 이렇게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좋다.

 

사라에게 기억되는 도서관 선생님은 이정은씨다. 당시 그는 어린이실에서 배가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라가 "선생님, 선생님"하고 좋아했다. 스승의 날에 과자와 카드를 갖다 주었는데, 그 카드를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사라가 매일 도서관에 나오는 거예요. 내복 입고 올 때도 있었고, 어느 때인가는 1달 동안 발레복을 입고 왔어요. 어린이실이 사라의 전용서재가 된 셈이죠. 누구든 공공도서관을 자신의 서재로 만들 수 있어요. 어린 사라도 했잖아요. 요즘 오전에는 어린이실이 텅텅 비어있어서 아쉽고 슬퍼요."

 

▲오전. 교하도서관 어린이실은 사라의 전용 서재가 되었다.

 

처방전이 좋아도, 약을 먹이는 건 엄마

도서관에 매일 오다 보니 여러 유형의 엄마들을 보게 된다. 어느날은 어떤 엄마가 책 30권을 쌓아놓고, 아이 옆에서 책을 줄줄줄 계속 읽는 것이었다. 아이가 받아들이는지 어떤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숨이 팍 막혔다. 그 엄마는 아이에게 뭘 주고 싶은걸까?

 

"도서관 육아법을 권하고 싶은가요?"라는 물음에 유정미씨는 잘라 말했다."여러 가지 육아법이 나와 있지만, 엄마와 아이에게 맞춰서 재가공하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유명한 박사가 강연을 해도, 그 방법을 재가공 해야해요. 그대로 왜 구겨넣으려 하나요? 의사가 처방전을 내주지만, 약을 먹이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예요. 엄마가 잘해야 아이들이 약을 잘 먹을 수 있어요."

 

유정미씨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다는 걸 몸소 체감했다. 어떤 육아 방법을 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고, 하나나 둘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도서관 이용법도 엄마가 결정할 몫이라는 것이다.

 

▲교하도서관 브라우징룸을 찾은 유정미씨.

 

"10년 고생하면 평생 편해요."

유정미씨는 아이 어린 시기에 제대로 된 사랑을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취향을 아는 것, 아이를 존중하는 것, 아이를 사랑하는 법은 아이마다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했으면 하는 의견을 피력했다."10년 고생하면 평생 편하고, 10년 고생 안하면 평생 끌려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사라는 도서관 행사를 많이 다녀서인지 집중력도 생겼다. 교하도서관 개관 기념 클래식 공연이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도 집중해서 들었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1달에 1번 인형극도 하고 클래식 공연도 있었는데, 요새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가 지금도 팥죽할머니 인형극 공연을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추억에 젖듯 말했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면서 얻은 부수익도 아주 크다. 동화책 목차만 봐도 어떤 책인지 알 수 있고,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림책도 많이 보아서 나라별 그림책의 특성도 알게 되었다.

 

"내 아이 잘 키우면 사회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아이를 낳았잖아요. 아이를 잘 키워야해요.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집중해준다는 것 같아요. 당분간은 엄마 욕구를 포기해야할 것 같아요."유정미씨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 엄마 일이라 말했다. 엄마 유정미씨는 ‘세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글 임현주 기자

사진 이정은 임현주 기자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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