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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이야기 ② 1964년 겨울 파평면 임진강(2)

입력 : 2016-01-22 11:59:00
수정 : 0000-00-00 00:00:00

1964년 겨울 파평면 임진강(2)




큰 물난리, 2,000명이 넘는 이재민

그해 여름에는 큰 물난리가 나서 문산과 선유리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는 홍수가 있었다. 두포리, 운천리, 금촌, 공릉촌 일대도 큰 물난리를 겪었는데, 파평면 율곡리, 두포리 부근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물이 범람했다. 전국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 중 파주가 가장 극심하여 2천명이 넘는 이재민이 생겨났으며, 전국 홍수피해액의 70퍼센트가 파주에서 일어난 물난리때문이었다.

 

‘죽으러 갈때 한강 간다 라는 말 대신 파주간다’라고

어렵던 보리고개 시절 미군부대가 많은 파주에서는 미군 관련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 무렵 파주나 평택 등에서는 미군부대 철조망 근처에서 먹을 것이나 돈 될만한 것을 훔치거나 얻으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미군보초병들이 총격을 가해 사살하거나 중상을 입히는 일이 빈번했다. 여성이나 소년들도 총 맞아 죽는 일이 있어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저녁에 미군부대 주변에만 접근해도 총격을 가해 155건의 인명사고가 있었다. 그 전년(1963년)보다 55건이나 늘어난 수치이다. 당시 파주경찰 시장이 분노하여 “보초수칙이나 발포지시에는 사람을 쏘아죽이라는 명령은 없다”면서 분노하였고, 주요 신문 컬럼에는 ‘사람들이 죽으러 갈때 한강 간다 라는 말을 쓰는데 앞으로는 파주간다’라고 써야 할 것이라며 한탄하였다(경향신문 1964년 12월 1일 ).

 

미군 쓰레기도 돈이 되던 시절, 파주선 슬레끼보이(slicky boy)라 불려

당시 전국의 미군부대에서 물건을 훔쳐내거나 달리는 미군트럭에 뛰어올라 훔치는 도둑들을 다루마치라 하였는데 파주에서는 슬레끼보이 (slicky boy)라고 불렀다. 당시 미군이 가진 것들은 쓰레기도 돈이 되는 시절이었기에 미군부대로 침입하거나 트럭에 올라타서 훔쳐내는 행위는 일상사였고 이에 미군병사들의 스트레스도 극심했다. 총알 수 천 발을 훔치거나 수송용 유류를 통째로 훔쳐가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군사용으로 대단히 중요한 레이더부품을 훔치기도 했다. 파평면 두포리에서는 훈련중 산꼭대기에서 고장나서 세워둔 탱크를 산소용접기로 17조각으로 분해해서 훔쳐가다 잡힌 전설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미군들은 심기가 사나울때 이유없이 주민들을 폭행하거나 술먹고 행패부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주민들은 미군이 지켜주는 안보와 행패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또한 금파리에서는 포탄을 주워다가 고철로 팔려고 분해하다가 터져 즉사한 사건도 자주 있었고 적성에서는 야산을 개간하다가 지뢰를 밟아 폭사하는 비극도 있었다. 사진에서처럼 임진강에는 1970년대 초까지 철조망을 치지 않았는데 북한 무장공비들의 주요 침입루트가 되어 총격전이 수시로 발생하였다.

 

휴전선과 미군, 보리고개와 무장공비가 나타나는 1964년의 파주는 임진강의 겨울바람만큼 춥고 매서운 시절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파주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사람 김현국

 

#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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