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문제는 ‘정치’다! 사회대개혁의 출발점은 ‘정치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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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치’다! 사회대개혁의 출발점은 ‘정치개혁’이다!
박찬식 / 시민정치연대제주가치 공동대표, 다른제주연구소 연구위원
탄핵심판 선고는 왜 이렇게 늦어졌는가?
드디어 윤석열 탄핵 심판의 선고 기일이 잡혔다. 월요일 밤에 나는 늦어지는 탄핵 심판과 난무하는 설들, 그에 따라 전개될 시나리오로 시작하는 ‘주간초점’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지난 밤의 작업은 헛수고가 되었다. 이제 관심은 헌재의 선고 결과에 집중되고 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윤석열에 대한 파면선고를 확신한다. 최근에 ‘취재’라며 회자되었던 5:3 데드록 설이 사실이라면 문형배, 이미선 두 재판관이 헌정질서를 유린한 윤석열의 복귀를 용인하느니 차라리 선고를 하지 않고 퇴임하는 선택을 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통령제의 대한민국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되겠지만,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종료시키고 조기 대선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힘이나 10여명의 의원이 동참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치는 않지만, 국민의 분노와 압력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선고일을 지정한 것은 파면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실 결론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전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본 국회와 선관위 무력 침탈, 계엄포고령, 가담자들의 증언 등 모든 증거가 비상계엄이 위헌, 불법적인 내란임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정파적인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기각이나 각하 의견을 구성하는 게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사건인데도 왜 이렇게 선고가 늦어졌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윤석열 측에서 제기해 온 다양한 실체적, 절차적 쟁점들에 대해 다툼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미세한 이견을 조율하고 치밀하게 검토하느라 늦어졌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보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적어도 3월 초중순에는 선고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윤석열 탄핵심판 외에도 다루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았다는 항변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헌재는 이미 대통령 탄핵 심판을 최우선으로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헌재에는 70여명에 달하는 헌법연구관들이 있다. 아무리 미세한 쟁점들이 많았다고 해도 그것을 정리할 인력이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결국 탄핵 심판 선고가 이렇게 늦어진 데는 정파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정파성이 강한 보수적인 재판관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재판 2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의힘이 처음부터 내세웠던 주장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표가 2심에서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는다면 대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오더라도 이재명 대표는 대선에 나올 것이고, 그러면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로 이른바 ‘사법리스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일으킨 이래 국민의힘이 매달렸던 거의 유일한 지푸라기였다. 문제는 이런 정파적 논리와 이해가 국민의힘에 그치지 않고 윤석열이 임명한 내각은 물론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내란 사태는 우리나라 정치·행정 엘리트들의 밑바닥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념적인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극단적인 정파성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식의 정파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미덕으로 하는 관료의 논리에도 반한다. 그런데 관료 경력으로 보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덕수나 최상목은 내란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였을 뿐
아니라, 국회가 선출한 헌재재판관 임명도 거부했다. 심지어는 헌재의 위헌 판결이 나온 이후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뭉갰다. 국민들에게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헌법과 법률에 충실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있으면서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 것이다.
내란사태가 극적으로 드러낸 양당 독식 정치의 퇴행성
행정사법 관료 엘리트들의 정파성을 지적했지만, 문제는 결국 정치다. 나는 내란 사태 초기에 국민의힘이 탄핵을 거부하고 1호 당원 윤석열을 출당시키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이야말로 국민의힘을 해체시킬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법적으로 해체시키지는 못해도 정치적으로는 회생불능의 수준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건재하다. 35% 내외의 지지로 민주당과 지지율을 놓고 경쟁할 정도다. 그 사이에 국민의힘이 정신을 차려서 내란을 단죄하고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초기에는 계엄이 잘못됐다며 윤석열과 다소라도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탄핵기각을 통한 윤석열의 대통령직 복귀를 주장하고 있다. 그 사이에 수사과정에서 노상길 수첩 등을 통해 끔찍한 내란 계획의 실체가 다 드러났는데도 그 정점에 있는 내란 우두머리를 군통수권자로 복귀시키겠다는 얘기다. 사실 최근 국민의힘이 보이는 작태에 대해서는 일일이 거론할 가치도 없다. 문제는 어이상실일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주장과 행태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힘이 아직도 정치적으로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그 원인이 우리나라 정치체제의 퇴행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양당 독식 정치의 폐해다. 거대 양당의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이 경쟁하는 상대 당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가 잘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상대방의 약점만 찾아내서 공략하면 그만이다. 이런 식의 정치가 장기화되면서 상대에 대한 악마화, 혐오가 일상화되었다. 그래서 양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지지하는 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상대편의 당선만큼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다. 어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자기가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 만족스러워서 투표했다는 대답은 47.6%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만족스러워 투표했다는 대답이 절반을 넘긴 건 60대 이상이 유일했고, 특히 20대는 27.7%, 30대는 32.3%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금 국민의힘 주도세력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사 윤석열이 파면되어 대선에서 지더라도 민주당이나 이재명은 절대로 싫다는 유권자가 40%는 될 것이고, 그들은 결국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것이다. 당은 살아남을 것이고, 올해 대통령 선거가 치뤄진다면 다음 총선은 3년 후에 있다. 그때 되면 내란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재명 정부의 레임덕도 시작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책을 잘 공략하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고 정권도 되찾아올 수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가장 골치아픈 것은 광장의 힘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과 처벌, 내란세력 청산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광장이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면 수도권 의원들을 비롯하여 국민의힘 내부가 동요하고 당이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방패 역할을 해준 것이 전광훈과 전한길이 주도하는 태극기 부대였다. 그러니 국민의힘은 이들을 엄호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수구보수를 넘어 파시스트 정당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하면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태극기 부대와 거리를 두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양당 구조가 낳은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이렇게까지 타락한 국민의힘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집요한 검찰 수사와 악마화가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인식과 정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튜브는 그런 인식과 정서를 확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정치개혁이 우선이다
태극기 부대의 동원력과 혐오의 정치와 같은 문제를 모두 양당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체제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극단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삶의 불안정화와 개인들의 원자화 등 더 심층적인 진단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상황은 우리나라의 정치체제, 특히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는 양당 독식의 정치체제가 얼마나 퇴행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퇴행적인 정치체제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정치에서 의제화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상대방의 약점만 공략하면 이기는 양당 독식의 정치체제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도 정치적인 의제로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정치적인 의제로 되지 못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없다. 정치의 본령은 갈등이다. 문제는 사회적 갈등이 정치의 갈등이 되지 못하고, 오직 권력을 둘러싼 정파적 갈등만 지배하는 정치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가 된 양당 독식의 대의 정치체제에 대한 대수술이 절실하다.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첫째는 양당 독식의 정치체제를 뒷받침하는 1인 소선구제를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전면 비례대표제일 수도 있지만, 권역별 비례대표 또는 대선거구제도 고려될 수 있다. 그래야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다양한 의제와 색깔을 갖는 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도 넘어설 수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아무리 불합리해도 공천권자의 요구에 복종하고 유권자의 바람을 외면하는 정치를 바꿀 수 있다.
둘째, 정당설립이 보다 자유로워야 할 뿐 아니라 정당간의 선거연합도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 설립을 포함하여 정당 설립의 요건을 완화하고 중요한 정책적 공통성을 기반으로 선거연합이 보장되어야 다양성에 기반하면서도 다수파를 형성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셋째,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대해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보듯이 소수정당 후보의 득표가 당락에 영향을 줄 경우 소수정당은 불출마 또는 중도사퇴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나 단체장 선거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추구하는 가치와 의제, 정견을 알리고 쟁점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다. 이런 기회를 포기하라는 것은 소수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셈이다. 정당연합과 함께 결선투표제는 거대 정당에서 소홀리 해온 의제들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인다.
넷째,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늘리되 특권은 줄여야 한다. 국회에 대한 불신을 이용하여 국회의원 숫자를 200명으로 줄이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는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포풀리즘이다. 숫자를 줄이면 국회의원은 더 특권화되고 명망성과 돈을 더 많이 가진 소수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계급계층과 의견이 국회에 반영되게 하려면 국회의원 수를 지금보다 100명 이상 대폭 늘려야 한다. 대신 국회의원들에게 배정되는 예산을 줄이면 된다.
다섯째,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확대해야 한다. 아무리 제도를 개선해도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국민들이 법률과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를 도입하고 주요 정책에 대해서 국민이나 주민의 의사를 물어서 결정할 수 있는 국민투표와 주민투표, 숙의민주주의 제도가 실질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 또는 개선해야 한다. 주권자가 선출한 대표자를 주권자가 직접 심판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 도입되어야 한다. 이번 윤석열 탄핵 심판에서 여실히 확인되었듯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소수의 법률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회의 탄핵 의결 후 국민투표를 통해 주권자들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이외에도 필요한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안들에 대한 논의도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당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과제들을 뽑아본 것이다. 윤석열의 파면은 내란 사태의 해결을 향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파면은 시작에 불과하다. 특검을 통해 내란에 가담했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세력들을 청산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50.5%를 득표하고 64%의 의석을 얻었다. 그리고 비례투표에서조차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진보정당들의 득표는 모두 사표가 되었다. 단순히 진보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자신들이 집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정치개혁을 외면한다면 다음에는 더 극단적인 파시스트 세력이 집권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와 진보정당들도 수많은 개혁과제가 있지만, 정치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고 모든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사회대개혁의 출발점은 정치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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