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15> 좋은이웃작은도서관 곽성자 관장
야당마을 피란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좋은이웃작은도서관
야당역 동쪽(보통 뒤쪽이라 한다. 운정신도시 방향과 반대 방향)에 야당마을이 있다. 이곳 나지막한 개인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에 신명교회가 있다. 이 신명교회는 교회인 듯 아닌듯하다. 사실 도서관이 앞 얼굴이다.
신명교회 앞마당을 가로지르면 야당역으로 갈 수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오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온다. 이곳 1층이 ‘좋은이웃작은도서관’이다.
이 좋은이웃작은도서관은 교회 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동아리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고, 다문화 독서대, 북 큐레이터 편지글, 각종 행사 사진 등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작은도서관, 야당마을을 기록하다]
올해 이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냈다. [작은도서관, 야당마을을 기록하다]는 책은 야당마을의 피란난민들의 이야기를 채록한 책이다.
도서관 개관을 하고 활동하다 보니, 동네 주택가에서 사시는 분들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6·25 때 피난 내려와서, 천막 하나 치고 고생하시면서 아이들을 키우셨던 분들이셨다.
“저희 아버지도 참전 용사시고,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도 또 그런 걸 겪었잖아요. 6.25의 아픔이 잊혀가고 있어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기록하자.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곽성자 관장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파주중앙도서관에서 구술 채록 강의를 듣고 작은도서관 활성화 특화사업으로 3개년 계획을 냈다. 그리고 30여 명의 도서관 이용자들과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이 채록사업을 했다.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이곳 야당마을에서 일생을 보내신 40여 명 중 돌아가신 분이 많고, 지금은 10여 명밖에 안 계신다. 더구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로 했던 치매 할아버지의 부인이 먼저 돌아가시면서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이 일이 더 소명처럼 느껴졌다고 곽 관장은 말했다.
채록자였던 유영희 씨가 덧붙인다. “이 책은 관장님과 목사님이 주민들과의 신뢰가 베이스가 되니까 나온 것입니다. 누가 낯선 이에게 자기 얘기를 들려주겠어요?” 책 발간의 공을 곽성자 관장에게 돌린다.
채록자로 나섰던 회원들은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인의 역사가 마을의 역사가 되고, 이것이 바로 6.25를 겪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북 큐레이터, 다문화도서 코너, 수채화와 하모니카 동아리
좋은이웃작은도서관은 알뜰살뜰하면서도 이 작은 도서관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한다고?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활동이 많다.
도서관 우측에 있는 북 큐레이터. 이 코너에는 여러 사람이 쓴 글이 빼곡히 꽂혀있다. 다른 사람이 책을 읽고 싶도록 추천하는 글을 모아놓았다. 책 추천도 되지만, 회원들이 자기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보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책을 읽고만 끝나지 않고 한 줄이라도 감상글을 쓰면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네는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아니어도, 금촌역에 있는 다문화도서관인 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 책을 1달간 대출을 해서 비치해두고 있다. “일부러 보게 하려고 해요. 유명하신 한국 작가분들의 그림책을 여러 나라 문자로 번역한 책들을 갖다 놓아서 관심을 두도록 하고 있어요.” 도서관 이용자들의 호응은 없는 편이지만, 곽성자 관장이 이용자의 시각이 넓어지도록 의도한 코너였다.
또 한편에는 도서관 어르신 동아리들의 수채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 실력이 제법이어서 여쭤보았더니, 벌써 3년 차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수채화로 하다 보니까 마음이 밝아진 것 같아요. 작품 하나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도 완성해 오시는 어르신에게 감동받습니다.”
토요일에는 하모니카 동아리가 있다. 재능기부로 매주 토요일에 와서 하모니카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참여하는 모자가정에 특별한 애정을 표하셨다.
“우리는 연극 공연도 해요”
이 [좋은이웃작은도서관]의 활동은 도서관 안의 동아리 활동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2017년과 18년에는 운정행복센터 대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공연을 했다. 올 7월 26일에는 가람도서관에서 ‘흥부와 놀부’ 연극 공연을 했다. 대단한 내공이다.
도서관에서 연극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한 아이가 “우리 연극 안 해요?”라고 물어왔다. 난타 강사이면서 전문 배우였던 강사가 국립극단의 ‘흥부와 놀부’ 대본을 각색하여 저학년용으로 만들어왔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재밌게 열심히 연습했다.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들을 초청해서 가람도서관에서 공연했다.
이 경험이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절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젊은 애들이 좀 똑똑해요? 와서 도움이 되지 않고 유익하지 않으면 안 오거든. 근데 와보니까 연극도 하지, 무슨 체험활동도 하지, 오케스트라도 하지. 사실 저도 놀랐어요. 다양하게 많이 하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자신도 동화 읽기 봉사를 시키면 얼른 달려온다면서 유영희 씨가 자랑한다.
책으로 하는 교육에 대한 확신
“저는 여기 오기 10년 전 예배실에 책장을 짜놓고 찬조를 받아 책을 비치했어요. 엄마에게는 자식이 너무나 소중하니까, 뭐라고 해주고 싶잖아요. 뭔가 자녀들이 훌륭하길 바라는 열망이 가득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그 방법이 책이라 생각해서 독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단번에 효과가 일어난 거예요.
1주일에 한 번씩 책을 빌려 가게 하고, 사실 강제 대출이었죠. 6개월이 지난 후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데, 엄마들과 아이들이 제가 전하는 말을 알아듣는 거예요. 저도 놀랐어요. 책의 효과가 이 정도로 뛰어나구나. 그 이후 교육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신앙교육이든, 자녀교육이든, 가정교육이든, 그중에 어릴 때의 교육이 평생을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책으로 하는 교육에 대한 확신이 섰다. 책 읽는 것을 습관이 되도록 하고 습관이 되면 행동이 바뀐다. 이런 신념으로 성품 훈련을 책으로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둘러업고 와서 함께 하곤 했다고 한다.
그 경험 이후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좋은이웃작은도서관’ 10년의 역사
파주로 이사 온 후에 그때의 경험과 확신으로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해서 도서관을 만들었다. [좋은이웃작은도서관]은 2016년 2월 4일 등록을 했다.
교회도서관이 교회를 중심에 두고 선교 방편으로 도서관을 활용한다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곽 관장은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도서관에서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도서관의 활동을 넓혀나갔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도서관 살림이 점점 늘어나면서 운영비가 크게 부족하여 곤란했다.
운영자금이 없어서 여러 가지 공모사업에 뛰어들었다. 경민대학교 공모사업, 파주시작은도서관 활성화 협력사업, 파주시치매안심센터 치매인식개선사업, 야외 책 축제와 마을 축제, 파주시작은도서관 지역강사연계사업 등 2017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여러 가지 공모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때 도민사서 제도가 있어서 사서들이 작은도서관에 권역별로 배치되었고, 이 제도가 도서관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려울 때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만들고, 파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이하 파도협)도 알게 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 그동안 파도협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기에 감사의 표현으로 지금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역과 함께 하는 작은도서관
“도서관이니까 조용히 숨죽이고, 책만 대출하고 얘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 안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지역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야 도서관답게 되는 것입니다.” 곽성자 관장은 도서관이 마을과 함께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는 철학을 펼친다. “목사님도 설교에서 예화를 들 때 도서관의 책을 이용하여 설교의 예화로 들면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크게 공감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지역 봉사도 한다. 노인들 도시락을 준비해서 배달(‘틈새 배달’)하고, 생일상 차려준다. 고향을 떠나온 분들이라 마음 밑바닥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일. 특별한 것은 없어도 음식상을 차리고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배너 앞에서 같이 사진 찍는 일이다.
“이렇게 해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시고, 감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준다는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도서관에서는 모두 ‘선생님’
2016년 개관 이후 3~4년 때 고비가 왔다. 교회 목사님이 크게 아팠다. 몇 차례 큰 수술을 하면서 곽성자 관장은 고민이 많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도 놓치지 않았던 도서관 활동. 도서관 활동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더 많은 이웃을 만났다.
작년에 처음으로 독서동아리에서 [시와 수필 그리고 감성 한 스푼]이라는 시와 수필집을 냈다. 올해는 [마음의 향기, 시로 물들다] 시집을 냈다.
이 도서관의 독서동아리는 40대와 70대가 같이 한다. “집사님 권사님 이런 호칭은 안 씁니다. 모두 선생님으로 부릅니다. 여기서는 모두 젊든 연세가 드셨든 모두 선생님입니다.” 이랬더니 세대공감이 되고, 작년에는 40대랑 70대 후반도 같이 독서토론을 했다고 한다.
도서관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눈물
그러면서 한 에피소드를 내주었다. 시 모임에 참여하는 분은 78세라 곧 80세가 되는데, 아침에 시 쓰는 모임에 오려고 도서관으로 나서는데 눈물이 났다고 한다.
“왜 눈물 났어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젊었을 때 그렇게 소원했던 일들을 인생 후반에 이렇게 시간 낭비 안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꾸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라고 답하면서, “우리 집 옆에 작은도서관이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도서관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는다고 한다. 이럴 때 스스로, ‘아, 이게 정말 멋있는 인생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얼굴이 활짝 피어난다.
또 다른 도전, 그림책 심리지도사
곽 관장은 몇 년이 지나면 활동 프로그램을 확 바꾼다고 한다. 자주 참여하는 사람 중심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활동하게 되는데, 관장은 이들의 역량을 높여주고 싶다. 그래서 올해는 그림책 심리지도사를 초빙하여 활동가들이 자격증을 갖도록 강좌를 열었다. 그랬더니 도서관에서 활동을 못해도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까지 24명이 넘게 참여했고, 강의 내용에 대한 만족도도 아주 높았다고 한다.
“제가 그렇게 투자하는 것은 우리 도서관 사람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입니다. 책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면 또 다른 책을 볼 때도 도움이 될 것이고, 또 자녀교육을 할 때 책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방송국 디제이가 도서관 관장이 되다
곽성자 씨는 초등학교 때 성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40대 때 속초의 큰 교회에서 영아유치부 담당 사역자였다. 그 즈음에 영동극동방송에서 낭독하는 라디오 방송을 2년여간 했다. 그 지역에서 영아유치부 교육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파주에 와서는 CTS 기독교 라디오 조이 방송에서 2년여간 DJ로 라디오 방송을 했다. 이렇게 4년여간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어릴 때의 꿈을 이룬 셈이다. 가족과 교회일 등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CTS를 나오게 되었다.
이제 그의 꿈은 도서관 관장으로, 마을공동체 기획자로, 축제 사회자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도 2022년부터 해오던 마을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4회째이다. 곽성자 씨가 총괄 기획을 하고, 찬조 출연 섭외, 바자회, 체험행사 등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우리 관장님은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하는 걸 항상 연구하시지요. 독서 모임에서 한 작가하고 만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에 무엇을 연결할까를 머릿속에서 고민하시지요. 그냥 여기 와서 책을 좀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데리고, 수채화도 하고 시도 쓰고 책도 만들고... 이런 작품(책을 보여주며)을 만들어 오기까지는 리더가 중요합니다.
어디든 리더가 중요한데요, 관장님은 그런 역할을 500%하는 것 같아요.” 회원 유영희씨의 진심이 느껴지는 칭찬이었다.
당시 교회 영아유치부의 어린이 교사였던 분이 올해 마을 축제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때 잘 훈련받아서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 밥 벌어 먹고살고 있어요. 그때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10년 전 인연으로부터의 고마운 인사이다.
오는 10월 18일(토) 오후 12시 좋은이웃작은도서관 마당에서 야당마을축제가 열린다. 벌써 4회째이다.
사물놀이, 합창, 시낭송, 하모니카와 색소폰연주가 있고, 홀트 여디디아 합창단과 그레이트밴드의 협찬공연도 있다. 보드게임, 커피박키링, 책갈피 만들기 등 체험행사와 아나바다 장터도 열린다. 물론, 수채화와 캘리그라피 등 동아리 작품도 가을 햇살아래에서 전시된다.
사람을 키우는 도서관, 도서관에서 크는 사람들, 눈물나게 행복한 사람들이 이 곳 ‘좋은이웃작은도서관’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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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