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야 고향 가자’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파주시민기념식
“임진각에 왜 쌍둥이 소녀상을 세웠을까요”
‘소녀야 고향 가자’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파주시민기념식
▲4.16중창단이 기림일을 기리는 공연을 하고있다.
세계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파주시민기념식이 8월 14일 오후 5시 임진각 쌍둥이소녀상 앞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윤후덕국회의원, 박대성 파주시의회의장, 최병갑 파주시부시장을 비롯하여 이용욱도의원, 박은주·최유각·손성익·이성철 시의원을 비롯하여 파주시민포럼, 파주의목소리들, 살롬의집이주노동자지원센터, 평화마을짓자, 파주시민네트워크를 비롯하여 (재)파주청소년재단 대표 등 5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소녀야 비행기타고 고향가자'소녀야 고향가자' 세계 위안부피해자 기림의날 파주기념식 참가자들이 평화의 소원을 적은 노랑비행기를 날리며 '소녀야 고향가자'를 외치고 있다.
“여러분 여기 평화의 소녀상이 쌍둥이인 이유를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하나는 북쪽으로 보내려고요.”
“네, 절반만 맞췄습니다. 나머지 절반이 뭔지 아는 분?”
8월 14일 ‘소녀야 고향 가자’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파주시민기념식 진행을 맡은 임현주 ‘파주에서신문’ 편집국장은 참가자들에게 왜 쌍둥이 소녀상을 세웠는지 질문부터 했다.
“여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이 전시돼 있습니다만 이분들 중에는 북쪽에 고향을 둔 분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는 남쪽이 고향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파주시민들은 쌍둥이 소녀상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보내고 나서 북쪽의 예술가들이 만든 소녀상을 받아서 세우자는 꿈을 꿨습니다.”
▲ 쌍둥이 소녀상은 임진각에서도 민간인 통제구역 철책선 코앞에 북으로 향하는 경의선 기찻길 앞에 모셨다. 그 자리는 또 북으로 연결되는 자유의 다리와 독개다리 앞이다.
쌍둥이 소녀상을 세운 의미에 꼭 맞는 장소이다.
“이곳의 소녀상은 2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1기의 소녀상을 북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북한 예술가들이 제작한 소녀상을 이곳에 세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상을 처음 세우던 6년 전 당시에는 그와 같은 발랄한 상상이 가능했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 김순현 대표는 개회사에서 그런 꿈을 꿀 수 있던 시기를 말하면서 울컥해했다. 이 단체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1년이 된 2019년 4월 27일 세웠고 이후 매년 4월 27일 건립일과 8월 14일 기림식을 해오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제로 끌려가던 나이와 같은 또래인 ‘운정청소년문화의집 역지간g 청소년 동아리’와 ‘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이 공동 주최한다. 올해도 청소년들은 나비와 꽃 타투를 해주고, 평화의 소원을 담은 노랑비행기 날리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시민의식조사(스티커) 등의 식전 행사를 담당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기념식 현수막은 한글과 영문 두 개를 제작했다.
▲소녀상이 탄생하게 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소녀상 작가 김운성
남북관계가 최악이던 2년 전 기림식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북한 송환식’을 했다. 입만 열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적대 발언을 일삼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파주 시민들의 품격있는 저항이었다. 김순현 대표는 제3국을 통해 평화의 소녀상을 보내기 위한 노력을 이제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운정청소년문화의집 역지간g 청소년들이 준비한 나비타투와, 비행기 메세지 접기 등에 참여한 시민들
일상의 시대로 돌아온 첫 해인 올해 기념식은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지난 시절이 환기됐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파주부시장, 시의회 의장이 함께하는 헌화에 이어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박대성 파주시의회 의장, 최병갑 파주부시장이 기림사를 했다.
참여단체를 대표한 파주여성민우회 최성화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뿐만 아니라 제주 4.3, 한국전쟁, 5.18 광주학살 등에서 여성들이 당한 전쟁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가 이제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며, 기억과 기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다른 전쟁과 국가 폭력 피해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 것 같아요.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이 그 길 위에 놓이는 작은 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기억과 기념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잊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과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파주시민기념식에 앞선 사전 행사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 중 김운성 작가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고, 파주4.16 중창단이 음악 공연을 했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 부부와 파주4.16중창단은 해마다 파주시민 기림식에 참여한다.
▲ 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 김순현 대표가 기림일 기념사를 하고있다.
어느 때보다 울림이 있었다고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던 김순현 ‘통일로가는평화의소녀상’ 대표의 여는 말 전체를 옮겨 적는다.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을 하고 나서야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었음을 알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꽃다운 나이에 듣도 보도 못한 험한 곳으로 끌려가서 누군가는 이름없는 꽃이되고, 누군가는 별이 되었던 분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천우신조로 살아서 돌아왔어도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았던 분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보듬는 날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모두 다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소녀상 곳곳에 돌 맞은 자국이 있습니다. 어느 소녀상 앞에서는 일장기를 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춘부라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엄혹한 시대를 짐승처럼 살아온 소녀에게 왜 돌을 던지고 욕을 합니까? 지켜주지 못했던 국가를 욕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 해야지, 이 무슨 비겁하고 무참한 행동입니까? 저를 비롯한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제 바로 뒤에 있는 소녀는 결코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주먹을 꼭 쥔 모습에서처럼 우리는 꺾이지 않는 강인함으로 이겨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내 이길 것입니다.
이곳의 소녀상은 2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1기의 소녀상을 북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북한 예술가들이 제작한 소녀상을 이곳에 세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상을 처음 세우던 6년 전 당시에는 그와 같은 발랄한 상상이 가능했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평화의 시간은 짧았고 불과 얼마 전까지 엄혹해져만 가는 남북 관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틀 지우고 한 곳으로 묶어 세우려는 시도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속수무책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평화’라는 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이렇게 컸습니다. 이제 다시 평화의 가능성이 열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힘을 내서 한 기의 소녀상을 북으로 보내려는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북으로 가는 소녀상 한 기가 남북의 평화와 화해 협력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의 묵묵한 노력을 지지해 주십시오. 함께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노현기 시민기자
▲쌍둥이 소녀상앞에 있는 경의선 철도 상행선이었던 독개다리고향갈 날을 기다리는 쌍둥이 소녀상 앞에는 경의선 철도 상행선이었던 독개다리와 전쟁 때 북한군 포로들이 귀환한 자유의 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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