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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책 되새기기] 한 줄도 너무 길다

입력 : 2018-11-28 17:57:53
수정 : 2018-11-30 12:54:23

[지난책 되새기기] 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류시화 엮음/ 이레 출판사/ 20001

 

 

어느 시인이 오랜만에 만난 내게 선물이라며 내민 책 [한 줄도 너무 길다]. 예전에도 읽었던 터라 반가왔다. 지금은 말이 떠도는 시대가 아니라, 글이 공기를 채우는 시대가 되었다. 전화보다는 문자로, 대화보다는 카톡으로, 일기보다는 페이스북으로...글들이 넘치는 세상. 그래서 글들이 더욱 희귀해진달까? 과유불급이라고, 차라리 부족한 것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고, 곱씹고, 되새기고...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은 글. 이것이 남겠지?

하이쿠는 단 17자로 이루어진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가 뭔지 몰라도 압축된 표현에서 ?’ 또는 !’하며 빠지게 된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책에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읽히고 또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3대 하이쿠 시인인 바쇼, 이싸, 부손의 시를 중심으로, 현대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인 시키와 나츠메 소세키의 하이쿠까지 모두 243편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몰라도, 그냥 책을 잡고 읽어보면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내 집에 사는 벼룩군/자네가 이토록 빨리 수척해지는 건/ 다 내탓이야.’

홍시여/젊었을 때는 너도/ 무척 떫었지.’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밧줄에도 걸리지 않는/물속의 달

 

시인 류시화가 번역했다. 원래 한 줄인 하이쿠를, 그 시적 운율을 살리기 위해 석 줄로 옮겨 엮은 것이라 한다. 책을 되새기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냥 다시 읽는다.

불쌍한 눈/하필이면 담벼락에/내려앉다니

땔감으로 쓰려고/잘라다 놓은 나무에/ 싹이 돋았다.’

한밤중/소리에 놀라 잠을 깨니/달꽃이 떨어졌다.’

 

나는 이 한 줄짜리 시들을 옮기면서 많은 시간 행복했다. 내 눈에서 약간의 비늘이 떨어져 사물과 인생의 실체를 조금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 삶의 어디까지 왔는가를 이 시들이 느끼게 해주었다.” 류시화 시인이 한 말이다. 그처럼 시를 읽고 사물과 인생의 실체를 조금 더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어떠리. 시의 형식이니, 저자니, 내용이니 분석하지 말자. 그냥 시를 먹어보자.

                                         자유기고가 홍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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