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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없는 회사에 청년 600명이 몰린 이유는? -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인터뷰 기사

입력 : 2022-06-27 05:28:10
수정 : 0000-00-00 00:00:00

[공감 인터뷰] 월급도 없는 회사에 청년 600명이 몰린 이유는?

  •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인터뷰
    백수들이 다니는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
    사훈은 '뭐라도 되겠지'
    월급 대신 마음 챙김 ... 퇴사자 25% 이상 취업

 

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혁신가들이다. 아름다운가게, (사)아쇼카 한국, 카카오임팩트는 전폭적이지만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하고 경제적 지원과 연대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사회혁신가들이 바꾸는 세상을 함께 따라가봤다.

1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6번 퇴사했다. 직전 회사에선 무조건 회사에 맞추자고 노력했지만 1년도 못 채우고 또 나왔다. 백수 생활은 번번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다.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력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만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모으려고 니트생활자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첫 만남은 한양도성 걷기였어요. 12명이 같이 걷고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너무 좋았어요. 매월 미술관 관람, 북한산 등반, 한강 산책 등을 함께 할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10개월 동안 백수 120명을 만났어요. 보다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멘토 한 분이 제게 <극락컴퍼니>를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책을 읽다가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습니다.” –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극락컴퍼니는 일본에서 은퇴한 남성들이 도서관에서 만나 서로 회사 놀이를 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는 가상의 회사 놀이가 백수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그는 "무업(백수)기간에도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일상의 루틴을 이어가며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사진 = 백선기 에디터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 그는 "무업(백수)기간에도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일상의 루틴을 이어가며 교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사진=백선기 에디터

“백수가 되면 사회와 단절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돼요. 소속이 없다 보니 관계망도 좁아지고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상 속 루틴이 망가지고 자신이 무능력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면서 우울감이나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죠.”

박 대표는 2019년 극락컴퍼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니트컴퍼니라는 가상의 회사를 만들어 사원들을 모집했다. 회사 운영비는 카카오임팩트재단, 아름다운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다음세대재단, 소풍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현재 <시즌 10>을 맞았다. 시즌별 재직기간은 3개월(100일)이다.

니트컴퍼니는 사옥도 월급도 없어요. 하지만 출퇴근 도장도 찍고 명함도 만들어주고 주간회의나 회식 같은 회사와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지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정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종무식을 하고 그간의 업무 결과물을 전시회로 마무리합니다.

니트컴퍼니 입사자들이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출근 후에는 온종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근무 시간에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뭘해도 상관없다.
니트컴퍼니 입사자들이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출근 후에는 온종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근무 시간에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뭘해도 상관없다.

 

뭐라도 되겠지

지난 2년간 니트컴퍼니를 거쳐간 사원들은 600명 정도 된다. 온·오프라인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규모는 많게는 200명, 적을 때는 10명씩 꾸려지기도 한다. 박 대표는 백수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교류가 없거나 자책이나 무기력함이 심한 분, 무업 기간이 아주 오래됐거나 이전의 회사 경험들이 상처로 남아있는 분들이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입사 가능 연령은 만 39세 이하다. 사훈은 ‘뭐라도 되겠지’로 정했다.

처음엔 회사 놀이가 지속 가능할까? 의문이 많았어요. 하지만 니트컴퍼니를 퇴사한 분들이 너무 좋았다는 경험담을 쏟아내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니트컴퍼니에선 자신의 배경이나 경력이 중요하지 않아요. 어느 학교 출신이라든지 어느 직장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대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니트컴퍼니는 자연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니트컴퍼니 부산점 사원들의 전시회 모습.  매일 건강한 한끼 먹기 업무를 수행한 뚠뚠 사원은 본인의  식단 사진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니트컴퍼니 부산점 사원들의 전시회 모습.  매일 건강한 한끼 먹기 업무를 수행한 뚠뚠 사원은 본인의  식단 사진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니트컴퍼니를 다니는 동안 목공을 배운 은효 사원은 종무식 전시회때 자신이 만든 목공 작품을 선보였다.
니트컴퍼니를 다니는 동안 목공을 배운 은효 사원은 종무식 전시회때 자신이 만든 목공 작품을 선보였다.

 

참가자 평균 25% 취업

니트컴퍼니의 성과는 청년들이 처음 입사할 때와 퇴사할 때의 변모된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전문가 개입 프로그램은 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도움을 받는 방식이죠. 사실 취·창업이나 상담, 진로교육 같은 청년 지원 프로그램은 지금도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단지 이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가고 서로서로 위로하고 지지할 수 있는 활동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만으로도 망가진 일상을 회복했고 공황장애나 우울감으로 일을 놓았던 청년들이 구직에 나섰어요. 진로를 상실한 청년들은 진로탐색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유형들로 바뀌어 갑니다.

그는 “취업을 목표로 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경험자의 25% 이상이 취업으로 연결됐다”면서 “내적인 힘만 생기면 누구나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라고 전했다. 니트컴퍼니는 최근 재입사 제도를 신설했다.

한 번 경험했으니 그만 나가세요가 아니라 본인이 필요할 때까지 기회를 더 줬더니 크게 성장하는 걸 체험했어요. 재입사 최고 기록은 현재 3번입니다. (웃음) 우린 이분들을 경력직 사원이라 불러요. 이들은 신입사원들에게 댓글도 달아주고 응원도 해주면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줍니다. 이번 시즌에는 입사자가 총 118명인데 이 가운데 22명이 경력직 사원입니다.

퇴사자 중에는 시즌이 끝난 뒤 너무 아쉽다면서 <애프터컴퍼니>, <낯선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여 지원 사업에 도전하거나 소규모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박대표는 이 회사들을 자회사라고 불렀다.

청년들이 눈만 높다고요?

박은미 공동대표는 지난해 사회혁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카카오임팩트 펠로우 2기에 선정됐다. 남보기엔 언뜻 속 편한 또는 팔자 좋아 보이는 가짜 회사 놀이가 어떤 혁신을 만들어낸 걸까 .

"청년들은 윗세대로부터 눈만 높아가지고 일을 안 한다거나 일을 시작해도 끈기가 없어 빨리 그만둔다는 질타를 받곤 합니다. 편한 것만 하려 한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청년들 눈앞에 닥친 현실은 정말 냉혹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팩으로 무장했어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괜찮은 직장은 사람을 많이 안 뽑아요. 다른 선택지를 고르자니 너무나도 열악합니다. 최저임금에 계약직이거나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는데 가르쳐 줄 생각은 않고 일 못한다고 핀잔 주거나.. 그래서 마음이 모두 힘들어요. 아무리 자존감이 높았던 청년들도 무업 기간이 길어지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결코 심약해서가 아니에요.”

박 대표는 그런 청년들에게 니트컴퍼니는 치유와 전환의 시간을 제공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니트컴퍼니 시즌 5 전시회와 종무식이 끝나고 사원들이 찍은 셀피
니트컴퍼니 시즌 5 전시회와 종무식이 끝나고 사원들이 찍은 셀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알아차리면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만족해가며 살 수 있어요. 또 요즘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매우 다양해졌고요. 문제는 루트는 다양해졌는데, 청년들은 본인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몰라요. 획일된 교육 탓일 수도 있고 다양성을 무시하고 똑같은 길을 가라고 요구하는 세상 탓일 수도 있을겁니다.”

그는 “백수란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누군가는 트라우마로 인해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삶을 꿈꾸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니트컴퍼니는 일의 전환뿐 아니라 가치관이나 생각의 전환에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동안 내가 하찮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고, 살아갈 자격이 있고, 어떤 걸 선택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힘을 갖는 전환의 시간 말이죠. 이 같은 사회적 근육이 단단해진다면 어떤 길을 가더라도 혹은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제공= 니트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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