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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만세 <3> 이인삼각 달리기 50년

입력 : 2022-01-12 00:26:15
수정 : 2022-01-13 03:58:13

이인삼각 달리기 50

 

양재숙

언젠가 인생의 사분의 일은 커 가면서 보내고 사분의 삼은 늙어 가면서 보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우리가 그렇게 빨리 늙는 거야?”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무시한 채 살아왔는데 막상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심오한 뜻을 알 것도 같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손길에 마음을 열고, 늘 바라보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이 황혼의 여정에 이제는 젊은 날의 꿈도, 열정도, 욕망도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남편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지켜보면서 더욱 뼈아프게 나를 흔드는 노년의 삶에 대한 명제가 되어 버렸다.

노년의 삶은 투병과 간병 사이에 있다. 생의 마지막에 우리에게 어떤 병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지만, 평소 나보다 훨씬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노쇠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한때는 빛나는 존재였다는 것을, 밤하늘의 별까지 따다 줄 것 같은 열정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남편의 일상생활이 차츰 회복되면서 조심스럽게 그 젊은 날의 꿈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졌다. 비록 뇌는 퇴화되었을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은 그 시절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내년이면 금혼을 맞이한다. 우리는 50년이라는 세월을 둘이 함께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어릴 적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우리는 운동회를 즐겼었다. 지금도 함성을 지르며 우리 편 이겨라를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운동회 종목 중에 이인삼각 달리기라는 종목이 있다. 21조가 되어서 한 사람은 왼발, 한 사람은 오른발을 함께 끈으로 묶은 다음 어깨동무를 하고는 빨리 달려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빨리 달리려는 마음만 앞서면 백전백패!

무엇보다도 서로 마음을 합쳐서 하나둘, 하나둘구령을 넣어가며 리듬을 잘 타고 달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넘어지기 일쑤인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경기였다.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도 어쩌면 이인삼각 달리기와 궤를 같이하는 닮은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기 규칙처럼 둘이 어깨동무하고 같은 방향을 향해 호흡을 맞춰서 달려야지 넘어지지 않고, 위기도 가뿐하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생텍쥐페리)

 

사람이 가야 하는 인생길은 그 어디로 가는 길보다 훨씬 멀고 험난하기 마련이다. 그 길을 행복하게 가기 위해서 좋은 배우자와 함께 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간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로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젊은 시절에는 자칫 저 잘난 맛에 놓치고 살아왔던 덕목이지만 이렇게 나이 들고 나니까 스스로가 먼저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70대 중반인 이 나이에 예전처럼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냥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적이고 우아한 할머니로 늙고 싶다는 둥, 귀여운 할머니로 살고 싶다는 둥, 젊은 시절의 로망은 이제 허영심의 한 조각으로 저 구석으로 밀려놓고 산다. 그저 건강이 최고라는 진리를 절감하며 산다.

결혼 50주년(금혼식) 만세! 여보 그동안 즐거운 인생을 살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그러니 지금 이대로 건강을 유지하며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만 주세요.

 

사랑에 있어서 나는 / 나 자신을 낮추지도 / 그녀를 낮추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 하나의 공간으로 그녀 곁에 있을 것이고 / 하나의 시간으로 그녀 속에 머물 것이다.

(생텍쥐페리, <사랑은 그저 있는 것> 중에서)

 

양재숙: 내년에 금혼을 맞이하는 12년차 파주 시민.

'내책만세'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세상이란 뜻으로, 파주 교하도서관 독서동아리입니다. 일년에 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매일 일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각자 책 한 권씩을 엮어서 독립출판물을 냈습니다.
이 책들에서 한 편씩 뽑아 <파주에서>에 연재합니다. (문의 시옷살롱 031-955-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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