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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32)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재일교포 대학생 간첩단 사건

입력 : 2021-12-21 06:51:50
수정 : 0000-00-00 00:00:00

 이해와 오해 (132)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재일교포 대학생 간첩단 사건

 

박종일
 

파평면 장파리에 라스트 찬스란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장파리 일대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시절(1970년 중반 이전)에 미군들을 상대로 영업했던 클럽가운데 하나인데 지금은 영업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클럽의 이름과 건물 안팎에 옛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은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은 10대 후반(1960년대 후반)의 나이에 라스트 찬스에서 허드렛일로부터 시작하여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고 알려져 있다.
 

조용필의 출세곡은 단연코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1972년에 이 노래를 처음 선 보였는데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4년 후인 1976년 조용필이 이 곡을 빠른 템포로 편곡하여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노래가 히트하게 된 배경에는 재일교포 모국방문 확대라는 시대상황이 있었다. 해방 이후 남북한 정권은 재일교포 지원정책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교포사회도 민단(民團, 남쪽)과 조총련(朝總聯, 북쪽)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교포정책에서 줄곧 수세에 몰리던 남쪽이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조총련계 교포의 모국방문을 받아들이면서 공세로 돌아섰다. 부산항을 통해 입국하는 교포들의 추석성묘단이 급증하였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조용필의 인기는 수직상승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재일교포 모국유학생도 빠르게 늘어났다. 그런데 재일 동포 2세로 태어나 이방인이라는 설움을 이겨내고,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돌아온 모국유학생을 앞장서서 맞이한 곳은 보안사(기무사)와 중앙정보부(국정원)였다. 1972년 유신헌법 발표 이후로 박정희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중앙정보부는 연이어 조작된 간첩사건을 일으켜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다. 특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약자들이나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재일동포가 그 중 한 집단이었다. 19714월 서승, 서준식 형제의 간첩사건을 필두로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간첩 조작에 이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사회적 파장도 컸던 사건이 19751122일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이 언론에 발표한 사건(이른 바 11.22사건)이었다. 김기춘은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암약해온 간첩들이 국내 대학에 침투, 통일혁명당 지도부를 학원 안에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21명의 피고인 가운데서 1976년 대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4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피고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이 사건 1심 재판부의 배석판사 가운데 한 사람이 양승태였다).
 

 

30여년이 흐른 2010년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고 그때부터 사망하거나 생사를 알 수 없는 피해자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재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재심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재일교포 유학생 관련 간첩사건은 (서승 형제사건으로부터 198310월 재일교포유학생 6개 간첩단사건에 이르기까지) 20건이다. 20196월 문재인 대통령은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김기춘은 박근혜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국정농단 사건에서 오명을 떨쳤다. 양승태는 다른 간첩사건을 포함하여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간첩사건 6건의 1(유죄)판결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우리 사법역사상 최초로 독직혐의로 법정에 서는 전임 대법원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일제 때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변호했던 후루야 사다오(古屋貞雄, 18891976) 일본조선연구소 이사장이 19711220일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다음과 같은 공개편지를 썼다. “8·15 이전의 일본 국가는 한민족의 가장 뛰어난 자식들,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투사들을, 그 주장에 깊이 귀 기울이지 않고 국가라는 이름으로 다수 죽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 같은 짓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의 대한국 정책 및 재일한국인 정책을 계속 비판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들이 당신의 자식과 동세대의, 한민족의 장래를 바로 짊어져야 할 전도유망한 청년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아주 간단히 죽여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 자세는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잘못된 수법과 아주 비슷합니다.”

 

 #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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