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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전망 - 돈주고 욕먹는 이상한 현상 : 늘공에게 끌려다니는 어공 

입력 : 2021-09-17 08: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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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전망 - 돈주고 욕먹는 이상한 현상 : 늘공에게 끌려다니는 어공 

 

 

정종원(부천YMCA 회원,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기준 없는 정책, 기준 없는 해명 

최근 모이기도 힘들지만, 힘들게 모인 자리에서 꼭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재난지원금 이야기다. 누구는 88%라 받게 되었다고 하고, 누구는 12%에 들어 못 받았다느니, 그 사람이 12%에 들줄 몰랐다느니... 등등 어떤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88%의 국민만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그 기준이, 1인 가구일 경우, 건강보험납부금 136,300원, 4인 기준 380,200원인데, 왜 그렇게 정하였는지 모르겠다. 지원금의 규모가 1인 25만 원인데, 이 역시도 왜 25만 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고자 하는데, 그 기준이 왜 그러한지를 모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공무원들은 법률과 제도에 근거하여, 무엇인가 합당한 기준을 마련해서 정책을 추진해야만, 감사나 평가 등에서 추궁을 받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준 설정에 있어서의 타당성을 매우 엄밀하게 따지곤 한다. 

 

그런데 11조가 지출되는 금번 재난지원금의 1인 지원 규모와 지원 대상의 기준이 모호하고,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유사한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주구장창(주야장천) 회자될 듯 싶다. 그래서인지 이의 신청이 5만 건을 넘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지원 대상을 90%까지 확대한다느니, 웬만하면 이의 신청을 수용하겠다느니 등등, 역시 기준 없는 해명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말 근본 없는 정책의 말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88:12, 아리송한 경계 

왜 돈 주면서 욕을 먹고 있는가? 적은 돈도 아니다. 11조나 된다. 11조 쓰고 받은 사람도, 못 받는 사람도 모두 정부 욕을 하고 있다. 12%에 들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일단 돈을 받아 생활에 보탬이 되니, 나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왠지 나는 가난한 것 같은 박탈감을 느낀다. 

 

12%에 든 사람은 평소에 많은 세금을 내고도 지원금을 받지 못하니(세금만 내고 혜택은 받지 못해) 화가 난다. 게다가 내가 왜 12%에 해당하는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소득이나 재산이 많아도 부채가 많을 수도 있고, 12%에 들었다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은 12%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온 국민이 다 고생하고 있는데, 근본도 없는 88:12의 갈라치기는 도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정책 결정은 정치인? 정책 집행은 공무원?

그렇다면 정책이란 것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기본적으로 정치가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며, 행정이 이를 집행한다고 이론은 말하고 있다. 이론을 우리의 대의민주주의에 적용해 보자. 사실 우리가 어떠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한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모여서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맞다. 왜? 우리는 국민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들이 정책 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민들의 대표를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게 된다. 즉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지방의회 의원과 같은 선출직 정치인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논의하고, 토의하여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결정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는데, 이를 선출직 공무원들이 하기에는 인력이나 조직이 없으니, 고용된 비선출 공무원(임용된 공무원)들이 집행하게 된다. 여기서 선출된 공무원들은 선거에 당선이 되었을 때만 공무원이니 흔히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 부르고, 비선출된 임용된 공무원들은 선거 결과와 관계가 없는 늘공(언제나 늘 공무원)이라고 부른다. 

 

 

직업 공무원의 탄생 

그러면 원래부터 어공과 늘공이 존재하였는가? 민주주의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공이 선거에 승리하게 되면 정책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모두 승리한 정당의 인력이 채우는 것이 관행이었다. 예를 들어 A당이 선거에 승리하면 공무원들도 모두 A당의 인력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초기 근대의 민주주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부와 공공부분의 역할이 커지면서 아무나 공무원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하였고(전문성과 역량의 문제), 나아가 선거에 이긴 정당이 공직을 모두 차지하다보니, 공직의 매관매직 등 부패 문제가 심각해지니, 이를 타파하기 위하여 정치나 선거에 무관한 공무원을 시험으로 선발하게 되었고,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아무나 자르지 못하도록 하면서- 역량과 전문성을 발휘하게 하기 위하여 정년(속칭 철밥통)을 보장하게 된다. 

 

간단하게 설명하였지만, 직업공무원제의 탄생을 아주 짧게 설명한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정책 결정은 선출된 정치인 공무원(어공)이, 정책 집행은 임명된 비선출 행정 공무원(늘공)이 담당하게 된다. 

 

 

어공은 늘공에게 끌려다닌다. 

일견 정책과정이 위 설명과 같이 잘 돌아가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은 300명 밖에 되지 않는다. 300명이 우리나라의 온갖 정책 문제들을 모두 다룰 수 없다. 보좌 인력과 국회 정책 연구 조직 및 지원 조직이 있지만 수많은 정책을 모두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다. 반면 행정부의 임명된 공무원은 100만이 넘는다. 시험을 통하여 각 분야별로 20-30년씩 근무하며, 해당 분야의 정보를 독점하고, 속칭 ‘나와바리’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어공인 선출직 정치인 공무원들이 아무리 해당 분야의 전문직이고, 잘난 척을 해봐도, 정보를 독점하고 몇 십년을 군림해 온 임명직 행정 공무원. 늘공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히려 어공들이 늘공들에게 의존하면서, 늘공들에게 끌려다닌다(D. Waldo라는 저명한 행정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행정국가’ 현상으로 정의하였음). 

 

특히 행정부 중심의 독재가 오랜 기간 역사적 유산을 남겨져 있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의 권한과 역할이 막강한 우리나라의 정치행정 환경 속에서 행정 공무원 늘공들의 파워는 어쩌다 공무원인 국회의원 등 선출직 정치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88:12, 행정국가 현상 

금번 재난지원금 사태도 이 연속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무리 선출된 정치인 공무원들이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를 가진다 하더라도, 문고리를 잡고 있는 임명된 행정 공무원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임명된 행정 공무원의 기강을 잡고, 통제하려고 하여도, 임명된 행정 공무원 집단의 강력한 연대와 저항은 상상 이상으로, 선출직 정치인 공무원들의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 일개 임명직 차관급 조직인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선출직 정치인들이 제대로 통제하고 있지 못한 것과 같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 규모를 1인 20만원으로 줄이면, 전국민에게 모두 혜택이 돌아가고, 누가 받네 못 받네, 이 사람은 주어야 하네, 말아야 하네 따질 필요도 없는데, 왜 1인 25만원에, 88:12라는 기준을 정치인들은 받아들여야만 했을까... 우리나라 국회와 행정부의 역량 차이, 그리고 행정국가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 쇄신이 선행되어야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선 선출직 정치인(어공)들과 국회의 쇄신이 가장 필요하다. 우리가 선출직 정치인(어공)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일단 무능하고, 자기 권력만 추구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길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인간상을 떠올린다. 이러한 이미지에서부터 벗어나야 임명된 공무원들을 통제할 수 있다. 

 

국회는 늘 싸우는 공간이고, 뭐 하나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며, 신뢰 받지 못하는 국민의 대표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통해서 국민을 대신하여, 대표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력과 행정력을 갖춰야 한다. 나아가 적극적인 행정부 통제를 위한 다양한 제도 개혁과 공무원 통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미 개혁과 통제 방안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많이 되어 있다. 이를 적용하면 된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면 먹힐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자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우리 선출직 정치인(어공)들의 수준이 너무 저질이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어공, 늘공 동시 개혁 기회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 본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가 연속적으로 봄과 초여름에 걸쳐 치러진다. 우리가 선출하는 새로운 어공들은 앞으로 적게는 4년, 많게는 5년 동안 우리 국가와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된다. 어떤 사람이 과연 늘공들을 잡고 제대로 국민들을 위하여 일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 모두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그리고 시류에 휩쓸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낭비하지 말자. 우리 미래와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위하여 어떤 선출직 정치인이 바른 미래 비전을 가졌는지, 그리고 정책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얼마나 유능하며, 마땅히 갖추어야 할 역량을 가졌는지, 늘공들을 잘 이끌어 국민 중심적 정책과 행정을 추진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하여 선거를 치러주길 희망해 본다.  

 

 

필자 소개

정종원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정치를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껴 국내문제로 관심을 돌려 행정학도가 되었다.

부천시민으로 부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고, 가톨릭대가 공부하기 좋은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 세계 평화도 추구한다.

강의가 알차고 재미있는 선생, 선한 이웃,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 부천YMCA [진단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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