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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13) 반구정(伴鷗亭), 황희(黃喜)정승의 임진강 변 쉼터

입력 : 2021-09-16 05:57:55
수정 : 0000-00-00 00:00:00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13)

 

편집자주

 

본보는 그동안 11회에 걸쳐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종교단체와 수행단체를 소개해왔다. 파주 관내의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이슬람교. 정토회 등 다양한 종교나 수행처를 소개했다. 하지만 어느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들이 파주 곳곳에 산재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던 것 같아 지난호 부터 파주의 유적지나 자연명소를 소개하기로 했다. 즉 종교로 한정된 코너를 종교와 수행과 장소로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마음의 안식을 찾고, 평화를 확장하는 일이야말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길일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원한다면, 나부터 평화하자”.

 

반구정(伴鷗亭), 황희(黃喜)정승의 임진강 변 쉼터

- 탁 트인 전망과 여여한 임진강을 만날 수 있는 곳

 

 

▲ 반구정 뒤로 흐르는 임진강

 

반구정에 들어서니 우거진 녹음 가운데 매미 소리가 우렁차다. 곳곳에 나무들이 들어차 있고 군데군데 기와집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이 모두 3개인데 반구정과 그보다 조금 높은 앙지대로 향한다. 족히 수백 년의 걸음들이 만들어 놓은 돌계단에는 세월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이곳은 다른 유적지에 비해 좀 더 자연스럽고,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어 내가 즐겨 찾는 자전거 주행 코스다. 몹시 추운 겨울이 아니면 1년에 자전거로만 10여 차례 이곳을 찾는다. 앞에는 임진강이 여여히 흐르고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과 초소가 눈에 거슬리긴 해도 황희 선생의 여유와 풍류는 분단상황을 쉽게 잊게 만든다. 이곳에 오면 지금과 조선왕조가 대비되며 감회에 젖어 들게 된다. 기와 담장 바로 옆으로 철조망들이 줄을 잇는다.

 

▲ 황희정승 영당 

 

세종 때 문신인 황희 선생이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냈다.

반구정은 조선 세종 때 유명한 정승이었던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내시던 곳이다. 그래서 반구정(伴鷗亭: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의 뜻)이다. 황희 선생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으며, 세종(재위 14181450)대에는 18년 동안 국정을 총리 하는 의정부(議政府)의 최고 관직인 영의정 부사로서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46진의 개척,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 성세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한 충신이었다. 또한, 그는 청백리의 삶을 통해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문종 2(1452) 황희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황희 선생이 87세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으니 그가 반구정에서 갈매기와 벗 삼은 지 2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게 못내 아쉽다. 좀 더 일찍 이곳으로 오셨으면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생명을 다 바쳐 나라에 헌신했던 그의 충정이 묵직하게 가슴을 친다.

 

▲ 황희 정승 동상

 

아름다운 풍광의 반구정 기록

반구정은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洛河亭)이라 불렀다. 미수 허목 선생이 지은 반구정기(伴鷗亭記)를 보면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 때마다 백구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온다. 서쪽으로 바다는 30리다.’라고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해 놓았다. 반구정이 위치한 곳 좌측의 높은 대지에 앙지대(仰止臺)가 있으며 반구정 아래에는 황희 선생 영당(影堂) 건물이 있다. 맑은 날 정자에 오르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

 

 

▲ 경모제 

 

6·25전쟁 때 화재로 유실, 98년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복구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 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뒤 이 근처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75년에 단청과 축대를 보수하였다. 그 후 1998년 유적지 정화사업의 목적으로 반구정과 앙지대 등을 목조건물로 개축하였다. 건물 규모는 앞면 2, 옆면 2칸의 장방형 평면에 초익공 형식의 공포 구성으로 기둥 윗부분과 옆면 등에 꽃무늬 장식을 돌려 붙였다. 내부에는 반구정중수기(伴鷗亭重修記)반구정기(伴鷗亭記)그리고 한국어로 옮겨진 <반구정 중건에 붙이는 글> 등 여러 개의 편액이 있다.

 

▲ 방촌 기념관

 

정자 아래 조그만 동산의 벤치. 편안한 휴식처

반구정에서 정자 다음 즐겨 찾는 곳은 계단을 내려와 조그만 동산에 놓여있는 벤치다. 주변에 나무들이 제법 둘러져 있어. 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곳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편안한 안식이 밀려온다.

 

황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영당과, 경모재, 부조묘

벤치 건너편에 조성된 3개의 건물 중 가운데는 황희정승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이다. 이 건물은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영당 건물로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1455(세조 1)에 건립된 영당은 정면이 3, 옆면이 2칸인 초익공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영당 내부 중앙에 감실을 두고 그 안에 영정을 모셨다. 건물 주위로는 방형의 담장을 두르고 정면 입구에 출입문인 솟을삼문을 두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210일 황희의 탄신일에 제향을 받드는데 제향일에는 종중의 후손들과 지역의 유림 등 200여 명이 참석한다. 영당 오른쪽으로 재실 건물인 경모재와, 왼쪽으로 황희 손자의 손자인 현손(玄孫) 월헌공 황맹헌의 부조묘가 좌우로 자리 잡고 있다. 절대 크지 않는 자그마한 공간에 조선의 충신과 그의 현손이 모셔져 있는 것도 황희 정승의 소박한 생활철학이 아닐까 싶다.

 

청백리 황희 선생의 일화

황희는 화려한 관직 생활만큼이나 그의 청빈한 생활, 자상한 인품과 관련된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태종이 그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멍석은 낡아서 많이 해져 있었고, 그것을 본 태종이 이 자리는 뽑아서 가려운 데를 긁는 게 좋겠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또한, 황희 선생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아랫사람에게 자상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웃는 모습으로 대했기 때문에 호호야(好好耶)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방촌 기념관을 나오며 드는 생각

반구정을 나오기 전 해바라기밭이 있고 그 앞에 방촌 기념관이 있다. 황희 선생에 관한 자료와 행적 등을 보관하고 있는 작은 공간이다.

내용이 많을 텐데 너무 적게 조성된 기념관에 안타까움이 남았지만 아마 본인도 크게 자기를 나타내는 걸 꺼리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할 때 이곳을 찾아 반구정에 올라보라. 탁 트인 전망과 쉴 새 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생각들이 편하게 정리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이 현재의 답답함을 쉬게 할 것이다.

 

김석종 기자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 85번길 3

관리사무소: 031 954 2170

이용시간 09-18:00(동절기 17:00까지)

쉬는 날: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다음날)

#130호

 

▲ 방촌 기념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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