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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3) 7. 율곡과 우계, 그들의 학문 (3) 조선최고의 역작 성학집요의 산실

입력 : 2021-05-12 08:13:15
수정 : 0000-00-00 00:00:00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3

 

7. 율곡과 우계, 그들의 학문

(3) 조선최고의 역작 성학집요의 산실

 

 

▲ 사행길에서 <성학집요>를 베낀 허봉은 산을 넘어 화석정에 올랐다.

 


우계와 철학논쟁을 벌인 2년 뒤인 1574년 5월, 율곡은 율곡리에 머물고 있었다. 출사와 사직을 거듭한 참이었다. 마침 명나라로 향하던 사신 일행이 임진나루 길목에서 율곡을 찾아온다. 정사와 함께 서장관 허봉, 질정관 조헌이 시골에 머물던 율곡을 만난다.

 

“사행기록 5월 13일(병술) 맑음. 아침에 파주를 떠나서 율곡에 다다라 이숙헌(이이)을 방문하였다. 이숙헌이 초본 한 책을 내와서 나에게 보였다. 그 가운데서 입지를 의론한 대목의 말뜻은 극히 정중하여 배우는 이의 병통이 되는 곳을 잘 맞춘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 글의 전부를 베끼게 해 주기를 청하였다.(허봉. 「조천기」 중에서)”

 

율곡은 자신이 짓고 있는 책을 하나 내밀었다. 글을 본 허봉은 놀라서 베끼기를 청한다. 수천 리 사행길 첫머리에서 사절단의 중책을 맡은 관리가 글을 베끼고 앉은 것이다. <성학집요>.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도리와 시무를 정리한 책이었다. 왕에게 바칠 목적으로 쓴 것이지만 정치에 나서는 사람라면 누구나 귀담아야할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행길 허봉이 우연히 만난 이 책은 이후 조선 정치의 교본이 된다. 책은 다음 해 완성되어 임금 선조에게 올려진다.

“나는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세 가지 좋은 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성학집요>·<반계수록>·<동의보감>이다. 하나는 도학, 하나는 경제,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방술로 모두 유자가 할 만한 것이오. 도학은 진실로 사람됨의 근본이 되는 일이니 말할 것 없거니와,(이덕무. 「이서구에게 주는 편지」 중에서)”

책밖에는 모른다는 책벌레 이덕무의 평가다. 반계수록과 동의보감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에서 실학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성학집요는 말할 것도 없다는 평가는 이미 이 책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필독서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덕무는 중국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왜 성학집요를 반포하지 않느냐고 항의할 만큼 이 저작을 귀중하게 여겼다.

 

▲ 화석정에 오른 허봉은 산하를 굽어보며 율곡이 귀히 쓰이지 못하는 시국을 한탄한다.

 

성학집요에는 왕과 사대부들이 곱씹어 봐야할 조목뿐 아니라 당대를 바라보는 율곡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율곡은 시대를 창업과 수성, 경장의 단계로 구분한다. 3단계 시대구분은 실상 경장을 말하기 위한 장치였다. 조선은 창업한지 2백년을 향해 가고 있다. 수성의 단계는 지나갔다. 마땅히 개혁을 해야 할 때 지키려고만 하는 것은 병에 걸렸는데 약은 쓰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라고 말한다. 이후 조선사회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돌이켜보면 이 지적의 적실성을 알 수 있다. 시대구분에 앞서 언제든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정치에 높은 책임감을 부여한다. 이런 인식은 선비들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요구한다. 율곡은 지금 당장의 개혁을 외친다. 다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은 임금에게 달렸다. 율곡의 고투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왕을 성인에 이르게 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허사다. 왕을 설득하고 이끌어야만 한다. 저작의 곳곳에 이 시대적 한계에 직면한 답답함과 그 속에서 무엇이든 해 보려는 절절함이 배어있다. <성학집요>는 시대의 한계에 맞선 몸부림이었다. 율곡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성학집요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눈앞에 아무 일이 없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다 뜻밖에 기이한 재난을 빚어내는 일이 많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경계하옵소서.”

 

책을 베낀 허봉은 뒷산을 넘어서 화석정으로 올라간다.

“그 집은 새로 지었는데 아직 칸막이를 하지 않았다. 정자의 앞으로는 임진강이 띠같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서쪽 경계로는 여러 산을 손짓하는데, (…) 지금 같은 때에 이러한 사람(율곡)이 있는데도 그에게 궁벽한 산곡 속에서 먹는 것조차 가난하게 하였으니 세도는 알 만하였다.(허봉. 「조천기」 중에서)”

화석정에 올라 허봉이 남긴 감회의 한 자락이다.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하다.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 저자

#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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