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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4) 8. 율곡과 우계, 그들이 맞은 전란 (1) 불타는 화석정이 보여주는 것

입력 : 2021-02-25 05:12:51
수정 : 2021-06-02 08:21:35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4)

 

8. 율곡과 우계, 그들이 맞은 전란

(1) 불타는 화석정이 보여주는 것

 

▲ 왜란을 피해 선조가 건넜을 임진나루는 몇몇 허가된 어선만 조업하는 통제된 곳이다.

 

임진강에 어가가 도착했다. 4월 그믐, 칠흑 같은 밤이었다. 논란은 지난밤까지 이어졌다.

어찌 서울을 버릴 수 있습니까?”

깊은 밤 장계가 올라왔다.

왜적이 금명간 서울에 들어갈 것입니다.”

장계가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어 어가는 궐문 밖으로 나갔다. 모두 달아나고 숨느라 어둠 속에서 마주치고 부딪쳤다. 비가 내렸다. 임진강에 이르도록 비는 멎지 않았다. 앞뒤로 길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한 개의 등촉도 없었다. 왕이 통곡하니 좌우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순간 갑자기 강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찌된 일인가?”

왕이 놀라 묻자 신하가 대답했다.

화석정에 불을 붙였습니다.”

율곡은 생전에 화석정을 찾을 때마다 기둥에 기름칠을 하곤 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정자 아래 종이와 부시를 넣어두었다. 유언을 생각해 낸 신하가 화석정에 올라 불을 붙였다. 기름 먹인 정자는 비속에서도 활활 타올라 강을 밝혔다. 왕은 무사히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맞은 선조가 궁궐을 버리고 떠나는 날의 장면이다.

 

율곡의 개혁정책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율곡 사후 8, 조선은 전란에 휩싸인다. 조정은 허둥거렸다. 대비는커녕 당장의 일처리도 갈피가 없었다. 이때 길 잃은 조선의 한 줄기 빛이 되어 화석정이 타오른다. 전설은 율곡의 예지를 보여준다. 화석정 전설은 살아서 온 힘을 다했고, 죽어서도 나라를 구하는 충신의 모습을 그린다.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실 가운데 기억으로 남는 것이 역사다. 기억은 기록이며 그래서 역사는 유식자들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 민중은 역사에서 소외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전으로 간신히 버틸 뿐이다. 전설마저 잃는다면 역사에서 민중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역사의 고비에서 유식자들은 전설에까지 손을 뻗었다. 화석정 이야기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왕조실록까지 고쳐 써야 했던 환란의 역사에서 유식자들은 전설을 동원한다. 보라! 조정은 엉망이다. 하지만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그의 말을 들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나라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의 후예다. 유식자들은 전란의 책임을 다른 편으로 전가하고 이후 다시 전면에 복귀한다. 화석정 전설은 율곡의 위대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위대함 뒤에 숨어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일단의 정치세력을 감춘다.

기억의 싸움은 기억의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는 역사에서 기억의 해석을 통한 재구성은 기억되지 않은 다른 것들을 들춰 보는 통로다.

끝내 등촉이 없었어도 왕은 강을 건넜을 것이다. 왕은 나루터 관청과 인가를 불태운다. 왜적이 뒤따라와 뗏목을 만들어 건너올까 두려워서였다. 선조실록은 그 뒤 나루터 풍경을 보여준다. “백관들은 굶주리고 지쳐 촌가에 흩어져 잤는데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이 반이 넘었다.”

 

▲  임진나루,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나루지만 지금은 철통같이 막혀있다.

 

화석정은 왕이 가는 길만 밝혔을까? 나루에 발이 묶인 사람들도 불빛을 보았을 것이다. 백성을 버린 왕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났을 것이다. 이 장면을 똑똑히 본 사람들이 화석정이 나라를 구했다는 전설을 만들었을 리 없다. 만들어 퍼뜨렸다고 해도 믿어 옮길 리 없다. “보라. 저기 왕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다. 화석정이 타오르는 것은 비겁한 왕을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그날을 목격한 백성들의 심정일 것이다. 글을 남길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 사실을 전했을 것이다. 불꽃이 타오른다. 불빛 아래 숨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도망은 왕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화석정 이야기에서 확인되는 율곡의 면모는 마침내 적중한 예언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둥에 기름칠 하는 현재에 있다. 궁지에 몰려서도 손 놓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행동에 있다. 화란을 예상한 것은 예언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자들, 율곡 뒤에도 그들이 숨을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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