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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3) 되는 집, 되는 학교

입력 : 2020-10-30 11:01:03
수정 : 0000-00-00 00:00:00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3) 되는 집, 되는 학교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되는 집은 가지 나무에 수박이 열린다는 속담이 있다. 구전설화에서 나온 말로, 가지 나무에서 수박이 열릴 수 있다는 조상들의 생명공학적인 상상력이 놀랍지만, 이는 사실 어려웠던 시절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소망의 상상력이다. 땔감을 구하려 산에 가서 눈밭을 헤매다가 나무 대신, 동삼이 자라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던 수박을 얻어서 큰 부자가 되었다는 판타지이다. 비록 현실성 없는 허구지만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놓칠 수 없는 되는 집의 덕목들이 있다. 부부 금슬이 좋았다든지, 가난했지만 가족끼리 화목했다든지, 추위에 굴하지 않고 높은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가는 용기와 결단이 있었다든지, 귀한 겨울 수박을 배고픈 가족끼리 한 번에 허겁지겁 먹어 치우지 않고 팔아서 큰돈을 만들 수 있는 만족지연의 심리와 경제적 지혜가 있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되는 집과 마찬가지로, ‘되는 학교들도 무언가 공통적인 비결이 있다. 학교의 응집력 있는 학교문화가 그것이다. 소박하게 말하면 학교문화란 학교만의 독특한 분위기나 심리적 풍토 또는 기풍을 말하는데, 문화는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가 구성원들을 만들기도 한다. 얼핏 보면 그 학교가 그 학교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학교도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 구조는 비슷하지만, 심층적 문화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학교를 구별하는 결정적 요소는 학교문화이다. 조직풍토 연구로 시작되어 1980년대 들어서 본격화된 조직문화 연구는 조직과 지도자 개인 특성에 집중한 구조론을 넘어 조직문화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조직학자 샤인Shein에 의하면, 조직문화는 구성원 모두에 의해서 공유되고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며,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보다 깊은 수준의 기본가정과 신념이다. 이는 조직 속에 내재하면서 구성원들의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조직문화의 수준은 구체성과 추상성의 차원에서, 그리고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차원에서 세 단계로 구분된다. 1수준은 규범의 단계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수준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상징물이다. 학교의 교훈, 교가, 비전, 교화, 교조, 교수와 같은 상징물, 조회, 축제 같은 것들로 모든 학교에 다 있는 것이지만, 이것들이 계획과 의도한 대로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미지수다.

2수준은 가치의 단계이다. 가치는 바람직한 것, 당위적인 것에 대해서 구성원들이 가지는 공유적 개념형성을 말한다. 구성원들이 공유한 가치는 조직의 기본성격을 명확하게 해주고 조직의 정체성을 가지도록 한다. 조직의 철학이나 이념으로 구체화된 일련의 가치들은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준다. 개방성, 신뢰, 협동, 친밀성, 팀웍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구성원 모두가 의식하는 상태이다.

3수준은 기본가정의 단계로 심층적이어서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외적 적응과 내적 통합의 문제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이 반복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조직의 기본가정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본가정은 조직 내 모든 행동에 적용되고 신입교사들의 학교 내부사회화 지침이 된다. 모든 학교는 이 세 가지 수준의 문화를 모두 공유하고 있다. ‘안 되는 학교가 형식적이고 표피적인 문화 수준에 머무르거나, 인간과 교육에 대한 잘못된 신념체제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되는 학교는 비가시적이지만 강력한 교육의 의미와 조직 운영의 신념체계가 작용하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인간자원의 지향성으로 본다면 학교문화는 보호문화, 냉담문화, 실적문화, 통합문화로 유형화된다. 냉담문화가 구성원에 대해서도, 성과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조직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퇴행적인 형태라고 한다면, 통합문화는 구성원에 대한 인간적 관심과 조직 성과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나타낸다. 여기서 인간은 가부장적인 자애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존엄의 존재로서 조직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하며 기대한다. 실적문화와는 달리 개인이 아닌 조직의 성공에 강조점이 주어지고 협동, 창의성, 모험, 자기 지시, 실험은 통합문화의 중요한 가치들이다. 품질관리(QC, TQM)에 집중하여 잘 운영되는 기업들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오우치OuchiZ이론이라는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제시한 바 있는데, Z형 조직은 의사결정과정이 합의적이고 참가적이다 의사결정이 집단적 과정을 거치지만 결정의 궁극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둔다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한다 평등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을 특성으로 제시하였으며, 구성원들의 헌신, 친밀, 신뢰, 협동, 팀웍, 평등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되는 학교라면 마땅히 통합문화의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며 Z형 조직의 특성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질 리없듯, 학교문화는 결국 오랜 시간에 걸친 구성원들의 담대한 시도와 실패, 이후의 성공 경험에 의해서 축적된다. 학생과 학부모 등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주로 교장과 교사들이 주요 변수다. 교장의 철학과 리더십 형태,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적극성, 학교참여 방식과 의지 등이 중요한 요소다. ‘되는 학교의 교장들은 교장실에 혼자 앉아 공문만 들여다보지 않는다. 문서주의를 벗어나 관리자와 평교사의 선을 넘고, 학교의 울타리와 지역사회를 건넌다. 사람과 사람, 일과 일,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원의 활용과 교류에 힘쓰며 생각의 삼투滲透에 앞장선다. 맹목적인 안정과 정숙의 틀에서 벗어나 잠정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용인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조장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의 새로운 질서로 묶어낸다. 구성원들이 손을 잡고 함께 한 방향으로 나가되 한 동작으로 발을 맞추도록 요구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행정을 넘어 학교 거버넌스를 구축한다. 또한 되는 학교에는 반드시 변화 촉진자change maker로서의 평교사 리더들이 있다. 이들은 모나면 정 맞는다는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인간은 게으르고 시키는 일만 한다는 인간관에 도전하였다. 함께 하는 교사들의 안목을 넓히고, 패배주의적 문화를 극복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민주주의 학교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이러한 문화가 학교 내 성별, 연령, 교육경험, 교직소명, 포부수준, 승진의지 등에 따른, 상이하고 다양한 소집단별 하위문화를 통합하고 생산적인 학교문화로 승화시켰다. 결국 되는 학교는 혁신적인 교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학교인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자생적이기도 하나 연수와 운동을 통해 훈련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되는 학교’, 모범적인 혁신학교를 오랫동안 보고 관찰한 결과다. 문화는 조직의 생산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성과평가에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때 GE의 기업평가모형인 스택 랭킹(stack ranking) 또는 활성화 곡선(vitality curve)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상대평가에 의하여 상위 10%에게는 엄청난 보상(급여와 스톡옵션)을 주고 하위 10%는 배제하여 퇴출시키는 정량적인 기업평가는 GE의 성공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몰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줄 세우고 배제하는 실적문화 방식으로는 조직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되는 집의 기준은 화목하고 노력하되 전략적인 지혜이다. 부자가 된 것은 결과다. 마찬가지로 되는 학교의 기준은 학교 구성원의 동질성과 일체감, 자기 일에 대한 만족과 효능감, 결과적 행복감이다. 업적과 평판은 따라오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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