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1) 혁신학교 운동의 막전 막후

입력 : 2020-10-15 10:28:32
수정 : 0000-00-00 00:00:00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1) 혁신학교 운동의 막전 막후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2000년을 전후하여 한국교육은 엄청난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학교붕괴현상이다. 이유 없이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많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아예 잠을 잤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지도를 거부했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들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폭력도 늘어났다. 심지어 학교폭력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범죄가 신설되었다(2004). 아이들의 행동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왜 이러는지 교사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조선일보는 1999823일부터 31일까지 무너지는 교실이라는 주제의 기획시리즈를 보도했다. 전교조는 1999930, 전국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업, 생활지도, 학교의 기능 전반에 심각한 붕괴상황이 진행되고 있음을 발표했다. 믿을 수 없는 정부는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교육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청소년개발원(1999)은 전국 24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서 교사의 87%, 학생의 71%가 최근 1~2년 사이에 자기 학교에서 학교붕괴가 실재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사실 이런 현상은 70년대 미국에서 학교실패, 80년대 일본에서 부등교, 이지메, 교실붕괴 등의 이름으로 이미 시작된 현상이었다.

 

혁신 학교 운동을 펼치는 교육자들 (출처 : 오마이뉴스)

 

학자들이 동원되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IMF 사태가 가져온 사회적 충격이라든가 근대학교 체제의 시효 소멸 등이 거명되었다. 세기말 현상이라는 낭만적인 말이 사회과학자의 입에서 나왔다. 대책으로 참여정부는 학교에 힘을 실어준다고 내신성적을 2008학년도 대학 입시에 반영하였으나, 결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었고, 학생들은 더 비명을 질렀다. 이어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모든 학생들을 다 끌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였는지 소수 상위권 학생을 위한 선별정책을 시행하였다. 자사고 150, 자공고 150개를 집중육성하려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2008)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기타 일반계 고등학교를 뒤흔들었다.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어 갔다.

사실 학교붕괴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교육의 체제 전환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해방 이후 개발시대까지 관료적 권위주의 국가와 교육체제는 1980년대 말까지 유지되다가 1990년대 들어서 신자유주의로 자본주의 체제가 재편됨에 따라 시장주의적 교육체제로 편입하게 된다. 1993년 삼성의 신경영선언 발표, 1996OECD 가입, 1997IMF 사태 등과 함께, 우리 교육은 정부 주도의 개발과 발전교육론에서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 외피를 갈아입게 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의 전환에 따라 교육정책의 안티테제로서의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표방한 교사들의 저항적 교육운동도 참교육실천강령의 제정(2002)을 통해서 인권, 양성평등, 노동, 생태교육 등 가치교육을 추가하고, 학교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과정의 창조적 운영, 협동의 학습원리, 학생자치, 연구와 실천의 동료성을 구축하는 새로운 교사상을 천명하면서 신자유주의 교육체제에 대응해 간다. 그러나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와 교육공동체가 교육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EIS 투쟁으로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친다. 이어서 신자유주의 정부를 맞게 됨으로써 교육 위기는 방치되고 선별적 방식에 의해서 능력 있는 계층을 중심으로 학교 다양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후 교육 위기에서 교육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조직적인 운동보다는 개인과 소규모 단체 활동에 의존하게 된다. 학교붕괴 담론 형성에 참가했던 교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학교운동(2000)’은 자생적으로 학교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전국의 학교들을 발굴하여 사례를 전파하는 방식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 단체와 서원대학교는 공동으로 <혁신교육지원센터>(2002)를 설립하여 주로 교사 리더십과 주도적인 인성교육, 선진교육탐방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교사역량개발에 집중하는 운동을 하였다. 전체적이고 구조적인 접근보다는 교사 개인역량을 강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교육운동에서 활동하던 주요 조직활동가들이 지역의 취약 학교에 여럿이 함께 근무하면서 새로운 학교개혁모형의 실험을 하기 시작한 흐름이다. 경기 광주의 남한산초등학교, 충남 아산의 거산초등학교, 홍성의 홍동중학교, 전북 완주의 삼우초등학교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아이들을 중심에 두는 교육과정을 새롭게 구성하였으며, 교사·학생·학부모에 의한 학교자치가 이루어지고, 낡은 시설과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변화가 일어났다. 폐교 위기에 놓인 시골 학교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함께 새로운 학교로 변화시키는 이런 움직임이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되고 이 운동은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2000년 전후로 교육계에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움직임은 대안학교운동이었다. 대안교육은 어찌 보면 시대적 요청으로 공교육이 지닐 수밖에 없는 제한점을 극복해 보고자 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대안교육은 새로운 교육을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제도적으로는 학교붕괴현상에 대한 대안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중교육운동, 빈민 지역의 공부방, 학교 안에서의 대안적 교육이념 추구를 주로 하던 대안교육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성격과 유형이 달라진다. 1990년대 이전에는 대안교육적 노력들이 제도권 학교 밖에서 논의되고 실행되었다면, 1990년대 이후는 다양한 교육 주체들에 의해서 제도권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를 통해서 제도화된 대안교육 분야의 특성화고등학교로 1998년에 간디고등학교(경남 산청), 성지고등학교(전남 영광), 양업고등학교(충북 청원), 원경고등학교(경남 합천), 한빛고등학교(전남 담양), 화랑고등학교(경북 경주)가 설립되었으며, 1999년에는 동명고등학교(광주), 두레자연고등학교(경기 화성), 세인고등학교(전북, 완주), 푸른꿈고등학교(전북 무주)가 설립되었으며, 2000년에는 국제복음고등학교(인천 강화)가 설립되었으며, 2002년에는 대안중학교로 성지송학중학교(전남 영광)가 설립되었다. 2003년에는 한마음고등학교(충남 천안), 공동체비전고등학교(충남 서천), 이우학교(경기 성남), 헌산중학교(경기 용인)와 지평선중학교(전북 김제)가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학교 안에 갈등과 폭력이 심화되면서 학교 부적응학생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도 설립되게 된다. 경기 대명고등학교(2002), 전북 동화중학교(2010), 경남의 태봉고등학교(2010) 등이다.

전교조의 참교육실천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전교조는 2001년부터 <참교육실천대회>를 조직하여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실천한 교육사례를 모으고 발표하며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교과, 학급운영, 교육주제별로 한 해 동안 실천한 것을 시·군별 지회에서 발표하고, 그중에서 선별된 것들을 도 단위의 지부와 중앙 단위의 전국 대회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발표하여 교사의 교육역량을 극대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참교육 실천 역량들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교육위기를 극복하는데 밀알이 되었으며, 나중에 혁신학교 활동가를 배출하는 통로가 되었다. 2001년 경기도 참교육실천대회 발표자 26명을 대상으로 살펴보니 약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5명이 혁신학교 (공모)교장, 2명의 혁신교육 관련 전문직 장학사, 다수의 혁신학교 활동가 되어 있다. 참교육실천대회가 혁신학교 발전의 견인차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 학교에서의 조용한 실천과 대안학교의 영감과 실천의 결과들이 현장 교사들에게 다시 영감과 교육개혁의 의지로 선순환됨으로써 혁신학교의 토대가 되었다. 때마침 지방교육자치제가 활성화되고 정치지형이 달라지면서 교육개혁에 의지를 가진 민선 교육감이 전국적으로 당선되어 혁신학교 운동은 지역과 운동의 차원을 넘어 전국적인 수준의 정책이 되었다. 지금 교육단체는 예전보다 수도 더 많아지고 노력하는 활동가들도 더 늘어서 혁신교육의 저수지는 그만큼 더 넓어지고 있다. 혁신학교 운동은 국가 주도의 경제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참교육운동이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지방교육자치단체와 교사들이 결합한 공공성에 기초한 시민운동으로 승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1999년 학교붕괴담론의 발표자이며, 2000년 전후의 위기의 교육현장을 지켜보면서 대안을 찾고자 한 현장운동과 연구운동에 참가한 교사로서, 초기부터 지금까지 혁신학교 운동에 참가한 활동가로서의 증언과 관찰과 의미를 풀어낸 것이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