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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9) 학교를 혁신해야 할 이유 -‘전교 1등 의사’들의 행태를 지켜보며

입력 : 2020-09-25 06: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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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9)

 

학교를 혁신해야 할 이유

-‘전교 1등 의사들의 행태를 지켜보며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출처 :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지난 한 달 동안 의사들의 불법 집단휴진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영 불편했다. 특히 전교 1등 의사광고를 보면서 이들의 특권 의식에 더하여 비틀어진 사고방식에 대하여 황당하다 못해 경악할 지경이었다. 전교 1등은 아마 학교에서 상당히 우대받으면서 공부했을 것이다. 부모님들의 각별한 기대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초등학교의 전교 1등들이 모여 중학교의 전교 1등이 되고 중학교의 전교 1등들이 모여 고등학교의 전교 1등이 되었을 것이다. 특목고나 자율고 등은 지역의, 아니면 전국의 전교 1등들이 모여 하나의 학교를 이루었을 것이다. 전국 2,300여 개 고등학교 중 일부 일반계 고등학교의 특별한 전교 1등이나 특목고 등 특별한 학교의 전교 1등과, 그 비슷한 학생들만이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 전국에 고3 학생들이 대략 55만 명 정도 되고 한 해의 의대 정원이 3,000명 정도 되니 이들은 1% 미만의 극소수 우등 학생들로서 전교 1등 의사들이 가질 자부심과 긍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알다시피 전교 1등 의사들은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과 정원확대(400)’안을 반대하고 약 한 달 동안 불법적인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전공의와 전임의도 휴진에 참여했고, 의대생들은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의협의 선도 투쟁에 따라 현직 의사뿐만 아니라 예비의사들도 동맹 휴학함으로써 일시에 나라의 의료체계를 교란시킨 것이다.

 

 

출처 : 주간경향 시사2판4판 

 

이들은 노동조합에 소속한 노동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파업이라고 할 수 없을텐데도 명분을 파업이라고 내걸었다. 어떻든 집단휴진이든 파업이든 이들의 행동을 나무랄 의도는 없다.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그들의 이기심을 비난할 의도도 없고 명분도 없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기피하고, 워라밸을 내세워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마방진(마취과-방사선과-진단영상과)을 선택하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판단할 생각은 없다. 과문한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전공의들의 과다노동과 저임금 같은 병원 내 착취적 임금체계 문제나, 수시로 보도되는 전공의들에 대한 교수들의 폭행이나 성추행 사건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단체행동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일이 아니면 동료라고 하더라도 남의 일에 대한 무관심을 미덕이라고 여겨온 그들이었기에 전국적이고 동시적인 그들의 집단행동이 놀라웠을 뿐이다. ‘의사 노동자라는 말과 파업이라는 말과 공정성에 항의하는 청년 노동자의 연대라는 언사들은 듣기에 참으로 생경한 것이었다.

아무려나 어떻든 그들의 주장과 요구를 모두 비난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엄중한 코로나 사태라는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을 배경으로 하여 국민을 볼모로 잡고, 중환자실이나 응급실까지 비우고 단체행동에 나선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행동은 인간의 생명 치료라는 의학의 존재 이유와 최소한의 의사윤리라는 차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전교 1등 의사광고를 보고서야 그들에게는 인간의 생명보다 엘리트주의의 특권의식이 더 중한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를 반대하는 환자단체연합회의 기자회견 모습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별히 찾아 읽지 않아도 보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전교 1등 의사에 대한 글을 10편은 읽은 것 같다.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에서부터 특권층의 윤리 의식에 대한 비판까지. 칼럼을 읽고 나서도 보통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풀리지 않는 것은 이들의 이런 의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의 교양교육이나 의사윤리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대에 진학하기까지의 전교 1등들을 배출한 보통교육의 제반 문제를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품이라고 치면 교육계에서 생산한 최상위 1%의 상품인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든 특권의식을 형성하게 한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전교 1등 의사들의 문제는 결국 우리 교육의 입시 종속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입시교육이란 한 마디로 교육의 모든 역량과 제도가 입시에 올 인하는 교육라고 할 수 있는데, 입시교육이라는 말이 제대로 된 말인지 우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입시가 교육이 될 수 있는가? 입시를 위한 교육인가, 입시에 의한 교육인가? 교육을 위한 입시인가?

 

그럼 소위 입시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목적의 전도 현상이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었다. 대학입시란 중등교육의 끝 단계에서 학생의 능력과 장래의 직업 희망에 따라 고등교육기관에 정치定置하는 활동의 시험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수단인 대학입시가 나라의 모든 교육제도를 잡고 흔드는 형국이다. 입시제도에 기울어진 교육제도를 바로잡지 못하고는 우리 교육의 혁신을 말할 수 없다. 둘째, 입시는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의 관심은 우수한 학생들을 중심에 둘 수 없다. 본인의 능력과 피눈물 나는 노력이 요구되지만, 사실 학교의 교육경비와 교사의 노력과 헌신과 부모의 재정적 능력까지 사회의 많은 자원이 투입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의 희생, 시쳇말로 깔아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 학생들의 학습 기회와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되어야 한다. 입시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짜고, 이들을 지도할 시간들이 더 많이 투입되며, 이들을 위해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서 교사들은 더 많이 고민하고 수고해야 한다. 탈락생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출처 : 다음 이미지

 

셋째, 입시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우수한 학생들의 사적 이익인 입신출세를 위해서 공적인 교육기관과 공무원인 교사들과 국가의 세금과 같은 비용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사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공적인 자원이 동원되는 것인데, 비판받아야 마땅할 이런 현상은 오히려 장려되고 이들의 입학 성적에 따라 학교의 평판이 결정되며, 지역 명문고 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지자체까지 동원되는 실정이다.

넷째, 입시는 결국 입시 과목으로 중시되는 과목들의 점수와 등수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입장에서 학교에서 개설하는 모든 교과가 똑같이 등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결국 예술, 노동교육, 가치교육은 등한시됨으로써 전인적 발달을 도모할 수 없고, 교육과정 파행 운영이 일반화된다. 다섯째, 입시교육은 결과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교육의 동기와 목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승자독식의 가치관을 심어준다. 여섯째, 입시교육은 출제가 용이한 문제 중심으로 가르치는 암기식 교육을 강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교육과 수업방식의 가능성을 차단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 교육의 거의 모든 문제점은 입시교육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입시교육으로 인한 교육의 병폐야말로 학교와 교육을 혁신해야 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학교교육에서 공공성의 원리가 회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공공성이 살아 있는 학교란 학교 구성원들의 상호 존엄성이 인정되고 협업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보편 가치를 공유하며 학교내외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학교를 말한다. 학교는 인종이나 외모, 성별 등등의 차별적 요소뿐만 아니라 성적에 의해서도 무시되거나 모욕받는 배제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 비용을 사용하는 학교는 국가개입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공공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사회 주류에 해당하는 특정 계층을 위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교육내용이나 교육결과의 사회성 및 공익성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내용이 특정 계층에 유리하게 편성되어서는 안 되며, 교육을 통해 얻게 되는 수익은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 교육환경의 공공성도 확보되어야 한다. 교육환경은 입시교육과 같이 어떤 목적에 경도된 것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 전체의 삶의 공간으로서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급성 중증 환자들을 버려두고 장기간의 불법 휴진을 벌이는 우리 교육의 최고 퀄리티인 전교 1등 의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교육이 얼마나 공공성에서 벗어나 사적 이익에 복무해 왔는지, 그 결과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의사 진료실 앞의 환자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실존적 생명체가 아니라 돈으로 보이거나, 옛날에 자기 성적을 깔아주던 사람으로, 더 나아가 최상층 1%의 의사들의 고급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무섭다. 이러한 인력구조를 생산하는 학교는 혁신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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