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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5) 경쟁주의, 과학인가 신화인가

입력 : 2020-08-27 10: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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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25) 경쟁주의, 과학인가 신화인가

 

                         

출처 : 레디앙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인터넷에 떠도는 어떤 글을 보니 한반도에 두 개의 유일사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북쪽을 지배하는 주체사상이고, 또 하나는 남쪽에서 지도이념으로 당연시되는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경쟁주의가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의 위상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여부와 그 정도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으나, 현대 우리사회를 경쟁사회, 경쟁중독사회, 무한경쟁사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빨리빨리’, ‘각자도생’, ‘승자독식’ ‘학벌사회’, ‘능력주의’, ‘선행학습등의 언사 밑에는 경쟁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깔려 있다.

미래의 지위와 부를 선점하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곳 중 하나가 교육 분야이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단순한 학력경쟁의 시대를 지나서 고등교육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인 서울중에서도 최상위권 학벌 경쟁이 살벌하게 전개되고, 이제는 외국유학과 학위취득을 통한 학력차별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되면서 교육경쟁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의 성적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우위 선점을 위한 사교육 경쟁은 한없이 확장되고 팽창된다. 오래 전에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45락이라는 말이, 지금은 자기 학년보다 4개 학년 앞서 선행학습 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3개 학년만 하면 떨어진다43락이라는 말로 바뀌어져 학부모들 사이에 유행한다고 할 만큼 사교육과 선행학습이 극성이다. 살인적인 경쟁주의가 돈 놓고 돈 먹는 머니게임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PISA의 교육성취도 국제 순위에는 만족하지만, ‘주관적 건강’, ‘학교생활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상황적응’, ‘외로움등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OECD)가 꼴찌라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극심한 교육경쟁에 아이들은 기쁨 없는 강제 학습노동에 소진되고 이를 지원하는 부모들의 삶도 함께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피폐해지고 했다.

 

출처 : 한겨레신문

 

사람들은 경쟁이란 마치 공기와 같아서 이것 없이는 생존을 영위해 나갈 수가 없고, 공기가 자연의 요소인 것처럼 경쟁도 사회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한다. 교육계와 주류 언론은 경쟁이 학업과 교육에서 필수적이라고 인식한다. 경쟁은 동기를 강화하고 결과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믿는다. 한정된 재화를 획득하는 데 경쟁은 불가피하고 또한 공정한 기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자연의 진리로 인식했던 다윈의 생각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에 의해서 정당화 되었다. 자원은 희소하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희소한 재화 획득을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며 경쟁 말고는 다른 대안이 부재하다 것이다. 경쟁의 논리를 가장 확실하게 찬성하고 옹호하는 것은 경제학이다. 경쟁은 판매를 촉진하며 기업의 판로를 개척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고용을 촉진시켜 사회의 유용성을 증대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경쟁은 고전경제학에서부터 신자유주의 경제학까지 경제의 가장 중요한 공리公理로서, 거시경제에서는 자유무역을 촉진시키고 미시경제에서는 노동 유연성의 근거가 된다. 이기적인 목적에 자극을 받은 개인들 간의 경쟁이 자동적으로 사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모든 것을 경제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경제환원주의 시각에 물든 한국에서 경쟁이 교육적 결과를 향상시킨다고 생각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경제학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는 견해도 있다. 주장의 근거와 전제,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자크 사피에르(Jacques Sapir)는 경쟁의 효용성에 대한 고전 경제학의 이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경쟁이 자유무역을 촉진한다는 흄의 일반이론이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메카니즘이 실제로는 논증된 적이 없는,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도그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일정한 상황에서 특정결과를 실현할 때 경쟁이 개개인의 행위를 조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입증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생태학은 다윈의 적자생존을 부정하고 있다. 생물은 무한히 증식시키려는 본능이 아니라, 삶의 영위를 위해서 적정한 군집의 규모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불필요한 경쟁을 회피하는 다양하고 능동적인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가우스의 원리’(두 종의 생물이 똑같은 생태적 지위를 누리는 경우는 결코 없다)를 비롯해 생태학적 연구를 종합하면 자연은 경쟁적 투쟁을 회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절되어 있으며, 투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이 자연계의 법칙이다. 오히려 적자適者는 싸움을 잘 하는 동물이 아니라 언제든지 싸움을 회피하는 동물이다. 자기와 상반된 힘을 가진 자와 협동하는 생물이 자연계의 진정한 적자이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조화의 기제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알피 콘의 <경쟁에 반대한다> - 민들레출판사

 

알피 콘(Alfie Kohn)은 경쟁반대론의 선봉에 서있다. <경쟁에 반대한다>는 저서에서 그는 경쟁옹호론이 1. 경쟁이란 인간 본성이다. 2. 경쟁이 최선의 동기를 부여하며 생산적이다. 3. 경쟁은 스포츠와 같이 재미있다. 4. 경쟁이 인격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는 일반 사람들의 통념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경쟁은 학습된 것이고, 협력과 비교했을 때 비생산적이며, 놀이의 정신을 훼손하며, 자존감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협력체계에서의 보상의 분배가 개인과 집단의 생산성, 개인의 학습능력, 인간관계, 자존심, 일을 대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책임감 등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경쟁옹호론, 경쟁반대론, 절충론 등 이렇게 경쟁의 효과와 결론에 대한 상반되는 논리와 이론들이 난무한다. 어떤 주장이 이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적합한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만 우리는 경쟁의 실체에 대해서 아무 의심 없이 수용하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경쟁을 의심하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장은영(2009)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인보다 모든 유형에서 비교활동에 대한 동기가 더 높으며, 자기향상동기에 있어 상향비교 경향이 뚜렷하고, 이의 충족이 주관적 안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인보다 비교성형이 더 강하고, 미국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극을 얻고 그들과 비교하여 향상되었을 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우리가 훨씬 더 경쟁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 포스터 

 

경쟁의 효용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 얼마나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무한경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과 협력의 상호보완적 관계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구조적 경쟁과 의도적 경쟁(알피 콘), 상대적 경쟁과 절대적 경쟁의 차이와 그 효과도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근면의 정신을 강조하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의 이야기로 읽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오력하면 이길 수 있다고만 배웠지 물속동물과 산속동물이 왜 경주를 해야 하는지, 경주의 종목이 수영이 아니라 왜 달리기이인지, 경쟁의 목표가 푯대인지, 상대인지는 꼼꼼하게 따져 보지 않았다. 이제 경쟁과 비교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은 과연 정당한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며 살인적인 경쟁에 몰두하는 모든 교육 관련자들은 영화 <지상의 별처럼>을 한 번 보라.

교육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노력과 지치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다. 경쟁의 폐해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현실의 지배 가치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느 정도로 변화시켜야 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멀고 힘든 여정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폐해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면 무의식처럼 존재하는 신화를 깨고 경쟁의 개혁 장정에 나서야 한다. 성적이나 학벌 등 교육의 결과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진정한 학습은 협력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진정한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유럽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 종사자와 학부모들은 교육경쟁체제를 대체할 건전하고 생산적인 협력학습 구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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