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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10> 교사의 품격

입력 : 2020-05-13 12:23:17
수정 : 2020-05-13 12:26:23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10> 교사의 품격

 

 

 

스승의 날이다. 교사를 두고 스승론과 노동자론이 첨예하게 맞선 적이 있었다. 당시 언론과 정부, 일부 교원단체는 스승의 이미지를 앞세워 교직원노동조합 창립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이 교사 예우와 교권보호에 앞장서 교사를 스승으로 받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교직의 홀대를 넘어 오히려 권위주의 정부의 말단 기관처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스스로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교단에 서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승의 날을 특별히 기념해 주는 우리의 문화적 풍토는 교사로서의 공적 의무와 자세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교직에서 오래 있다 보니 교사가 된 옛 학생들을 만난다. 종종 그들을 만나는 일은 먼저 선생 된 자로서의 과거와 현재의 내 교직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참 민망한 일이다. 가르친 학생 중에 올해 처음 발령 받아 교사가 된 이가 있다. 임용고사에서 최종합격을 하고 전화했을 때 함께 기뻐하면서도 축하의 말보다 교직의 고단함에 대해서 말을 한 적이 있다. 입직 전의 기대와는 달리, 교실의 삶은 고달플 것이고 급여는 생각보다 적을 것이며, 학부모는 지지자이기에 앞서 민원인이며, 아이들은 끊임없이 문제와 고민을 던져줄 것이고 무엇보다 날마다 처리해야 하는 과업이라는 것이 극적 도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고만고만한 지루한 일상 업무라는 것을.

교직은 오래 해도 관록이라는 것이 잘 붙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박근형이나 김혜자 같은 분들을 보면 오랜 연기생활의 경력과 품격이라는 것이 묻어나는데 내 경우를 보면 날마다 새 경험이라 발언도 행동도 수업도 늘 어설프고 생경하기까지 하다. 교육사회학자 로티(Lortie)의 말처럼, 교직의 구조는 달걀 꾸러미와 비슷하여 신규교사나 30년 이상 된 경력 교사나 꾸러미 안의 달걀처럼 각자 교실 안에서 하는 일은 비슷하다. 일반 직장에서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신참과 구참이 경력이나 계급별로 일을 분담하는 것과는 달리, 수평조직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경력에 상관없이 각자의 교실에서 똑같은 무게의 수업을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교사 자격증은 출신대학에서 받지만, 실제로는 노량진 학원에서 임용 합격증을 받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교사 임용 구조 안에서 직전교육이나 현직교육 모두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교직 사회화의 기회를 부여하지 못한다. 구조적 측면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교사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적으로 기반이 확실한 교수법의 실제와 원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직은 이러한 빈약한 공식적 사회화의 결과, 교사 개인은 학생 시절의 과거 모델로부터 배우거나, 첫 발령 받은 학교에서 개별적인 노력과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알아서 교사가 된다. 이런 교직의 개인주의적 훈련의 결과는 교직의 전문적 지식·기술체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의사나 법조계와는 달리 직업의 전문직화를 방해하여 교직의 개인주의와 분절적 교실주의를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 최근에 교직의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공식적 교직 연수체계를 정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직의 기본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는 할 수 없다.

교직의 실제는 영웅적인 교사의 분투를 다루는 영화와는 다르다. 교실의 삶은 일상성의 테두리에 있다. 출근하고 수업준비하고 수업하고 행정 업무하고 아이들의 분쟁에도 개입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것이 교사의 일상성이다. 일상은 특별한 일 없이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로, 누구에게나 편하고 좋으며 따라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러나 명배우들이 단조로운 일상에 머물지 않듯 교사도 루틴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 바람 불듯 일어나는 작은 기미에도 교사는 민감해야 한다. 교실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무심하지 말라. 교실에서, 아이들의 삶에서 무언가 계속 일어나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는 둔감한 선생이 되지 말라. 눈을 크게 뜨고 학교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홀로 분투하는 동료를 찾으라, 그게 청소원이든 교사든 교장이든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찾아서 친구로 삼으라. 동료를 통한 배움만이 교사의 키를 자라게 하리라. 불모지라도 그런 분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 영화 천국의 속삭임 포스터 
 

교사는 권력과 부나 인기가 아니라 목적의 왕국을 추구해야 한다. 목적의 왕국은 눈 뜬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이고, 눈은 교사들에 의해서 떠지는 것이다. ‘파랑색은 자전거를 탈 때 네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같은 거야하는 눈 먼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교사만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영화 <천국의 속삭임>을 보라).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대체로 운이 좋지만, 선을 행하다 보면 언제나 함정에 빠지게 된다.”<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라마구가 한 말을 약간 비틀어 말하면, 아이들의 문제와 행복을 쫓아다니는 교사는 늘 수렁과 늪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만, 그렇다고 게으름과 안일에 빠진 교사들의 운 좋음을 부러워하지 말라. 교사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심과 냉담, 또는 거리두기이다. 일상에 빠지지 말고 일상 속에서 일상을 개혁하라. 그렇다고 영웅적인 행동을 모험할 필요는 없다. 스승이 되지 말라. 스승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름이다. 캡틴이 되려고 하지 말라. 스스로 참되면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아이들이 곁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그늘이 될 만큼 충분히 자란 40년 전에 심은 느티나무 아래서, 교사로서 이제 막 첫발을 뗀 박 선생이 좋은 교사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살겠다. 아이들 옆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할 때만이 교사는 당산나무 느티나무의 위엄과 품격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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