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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의 교육이야기 ② ‘궁극의 공부’ 는 자신을 아는 것!

입력 : 2016-04-15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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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공부’ 는 자신을 아는 것!

 

 한 시절, 나는 미친개처럼 거리를 배회했었다. 무엇을 해도, 누구와 만나도 공허했다.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칼 날 위에서 춤도 추어 보았고, 허명(虛名)을 쫓아 숨 가쁘게 달려 보기도 했다. 달려도 달려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그것은 마치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수렁과도 같았다.

 

 30대 중반을 지날 무렵, 나는 마침내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깊디깊은 허무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이 자각은 나를 놀라운 세계로 이끌어 갔다. 우중충하던 흑백의 세상은 온갖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었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세상의 모순들은 치밀하게 짜여 진 완벽한 신(神)의 각본으로 읽혀지기 시작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 사람들은 그 세계를 [행복]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 온 행복, 그것은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사라질 염려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듯 덜컹거렸다.

 

 태풍 루사로 내 삶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는 빈털터리도 되어 봤고, 트랙터에 앉아 익숙지 않은 농부로도 살아 보았다. 때로는 노가다 판에서 돌 쌓는 인부로도 살았고 또 때로는 엔진 톱을 들고 통나무를 다듬는 목수로도 살았다. 함께 했던 대안교육의 현장에서 죽일 놈이 되어 쫓겨나 보기도 했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 할 수조차 없는 빚더미에 앉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나의 인생이 조금도 불행하다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형언할 수 없는 고요와 평화만이 아침햇살처럼 넘실거렸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토록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니던 공허함의 뿌리가 사춘기(思春期)에 잇닿아 있었음을. 사춘기(思春期).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만한 나이. 신체적인 성숙이 거의 완성되는 시기로 15-20세에 해당함.(민중서림. 으뜸 국어사전) 이것이 사전적 의미다.

 

 그러나 나는 사춘기(思春期)를 이렇게 정의하게 되었다.

 

 생명의 근원과 존재의 본질을 묻는 시기. 자신이 누구인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확인하는 시기. 존재의 자각기.

 

 그렇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왜 세상에 왔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사랑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이고.... 이런 일련의 물음들을 속 시원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게 이 물음들의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답을 알려 줄 수 없는 물음들이라면 답을 찾는 방법이라도 알려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삶을 먼저 살아 낸 선배들로서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 길을 듣지 못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분노, 반항으로 이어지는 사춘기의 특징이 나는 여기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시덥잖은 수학 문제 하나 푸는데도 그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과 참고서, 학원들이 즐비한데 삶의 근본인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답 하나 줄 수 있는 곳이 없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에서 풀어야 하는 유일한 과제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하면 70세 노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 짓을 한다. 고집을 부리고, 집착하고, 생떼를 쓰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공부의 궁극이다.

 

 

 

김종률(삼무곡 청소년 마을 대표)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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