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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이야기 ⑥ 문산극장의 추억

입력 : 2016-03-17 16:08:00
수정 : 0000-00-00 00:00:00

문산극장의 추억

 

▲사진 1970년대 파주 법원리 해동극장, 이 극장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다.
 

 1972년 무렵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마을에서 가장 큰 문화생활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추석과 설날만큼은 용돈이나 세뱃돈을 받았는데 동네 형들이 우리를 모두 데리고 문산 읍내까지 걸어가서 함께 영화를 보았다. 당시 문산 극장에는 정원이라는 개념도 없어서 표를 끊으면 무조건 극장 안에 알아서 보라고 들여보냈다. 사람들이 꽉 차서 옴짝달싹하기도 힘들었고 앞사람에 가려서 화면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렇게 영화를 정신없이 보고나면 화면과 소리를 놓쳤을 때가 큰 불만이었다. 온전하고 편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누가 보면 추궁할까 산길따라 뛰어가서 혼자 본 영화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국민(초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늦잠에서 깨어나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뱀이나 잡으려고 임진강가 전나무 숲으로 가는 길에 오솔길에서 돈을 주웠다. 임진강에 온 낚시꾼이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당시 가난한 촌동네의 국민학생에게는 지금으로 체감하면 5만 원쯤 되는 큰돈인 지폐 몇 장이 접혀 있었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죄책감도 사라졌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 돈으로 문산 읍내에 가서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곡리 방앗간 정류장앞에서 문산가는 버스를 타면 누군가 알아보고 어디서 났냐고 추궁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산길을 따라 문산 읍내까지 뛰어갔다.

 

 동네 형들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혼자서 처음 영화표를 끊어서 보았고 숨도 안 쉬고 집중해서 본 그 영화는 로마시대 노예의 반란을 다룬 ‘스팔타커스(Spartacus)’였다.

 

 그렇게 난생 처음 혼자서 모험가처럼 영화를 보고 나니 세련된 도시소년으로 거듭난 듯했다. 남은 돈으로 소년중앙을 샀고, 문산 시장에서 국수 한그릇을 사먹었으며, 과자를 몇 개 사서 함부로 흘리면서 부자처럼 먹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임진강에 멱감으러 갈때마다 놀라게 하던 전나무숲의 뱀도 며칠 더 살려두기로 할만큼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이었다.

 

악당을 처단하면 일제히 박수 치던 극장문화

 이후 서울로 돈 벌러가신 아버지가 한달에 한두번 내려오실때마다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한자를 연습했고 기분 좋아진 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을 받을때마다 문산극장에 가서 혼자 영화를 보았다. 닥치는 대로 보았지만 주로 많이 보던 영화가 ‘돌아온 외다리’, ‘용호대련’, ‘인간사표를 써라’ 같은 류의 방화나 홍콩합작 액션영화가 많았다.

 

 영화를 필름이 낡아서 맑은 날인 장면인데도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노이즈는 기본이고, 중간에 필름이 끊어져서 중단되는 것은 다반사였는데 이중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것은 박수치는 문화였다. 그때는 액션영화는 구성이 다 그랬는지 주인공은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로 한참을 두들겨 맞다가 갑자기 믿을 수 없이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나서 악인들 두들겨패서 처단했다. 악당은 죽어도 꼭 개구리 뻗듯이 경련하면서 죽어서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때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고 너무 뻔해서 어린나이에 보아도 온몸이 근지럽고 무안했다. 도대체 저게 무슨 박수칠 일이라도 될 만큼 통쾌하던가. 하지만 박수를 안치면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아서 열심히 같이 따라서는 쳤는데 너무나 어색하였다.

 

시험 끝나면 단체 관람하던 문산 극장 사라져

 어느 날은 박수 나올때가 되어 차분하게 주변을 보니 이게 진심으로 통쾌한 반응이 아니라 그 전부터 내려온 문화를 습관적으로 따라하는 것이라서 박수에 영혼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극장박수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훗날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가 “내가 니 애비다”라는 장면에서 매니아들이 박수를 쳤다는 외신기사를 보고 극장 박수의 심정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문화생활로 자부심을 가지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문산시내의 중학교로 진학하니 새로운 극장관람문화가 있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돈을 걷은 후 줄을 서서 극장까지 행진해서 단체관람을 하는 것과 늘 제값을 주고 표를 끊는 것으로 알았는데 문산 시내에 살던 친구들은 입구에서 표 받는 아저씨에게 몇 마디 나누고 모자란 돈을 주고도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문산 읍내 문화가 10리 떨어진 파평면 율곡리 촌동네보다 세련되었다는 것을 느낀 계기였다.

 

 이런 추억이 있는 문산극장은 1990년대 사라졌고 오랫동안 극장이 없다가 2014년에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개관하였다. 고향가는 길에 들러본 이곳에서 오래전 문산극장의 정겹게 퀴퀴한 의자냄새나 화장실 가는 복도에 배어있던 오줌냄새 대신 사과향기를 떠올렸다. 1977년 문산 북중학교를 다니던 무렵, 문산에 새로 생긴 영화관은 “잡히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할거”라며 떨던 동네 친구 은용에게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꾸짖던 곳이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사람 김현국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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