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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친구들] 칼럼- 무기한 구금을 통해 정의가 얻어질까?

입력 : 2017-08-09 12: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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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한 구금을 통해 얻어지는 정의(正義)는 과연 정의일까?
                                                             2017년 8월 3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누군가의 약속을 기다려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 하였고 그 사람으로부터 기다려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대답을 약속한 사람이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고 답변을 미룬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부탁한 바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여러분은 그냥 체념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 여러분은 쉽게 체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어떤 대답을 5년 가까이 기다린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외국인입니다. 종교갈등으로 혼란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는 한국에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 입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난민신청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여러차례 관련기관을 방문하였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두달간의 체류기간이 지난 어느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출입국공무원들에게 단속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으로 옮겨지고 나서야 그는 난민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한국정부는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은 이름과 달리 감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철창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 다른 외국인 십수명과 함께 24시간을 지내야했습니다. 밥도 입에 맞지 않았고 처음에는 대화도 통하지 않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참고 기다렸습니다. 1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받은 대답은 난민인정이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국법원에 다시 호소하였습니다. 법원에서도 기다려보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2년 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와 함께 외국인보호소에서 한국정부와 법원의 대답을 기다렸던 사람들 일부가 최근에 본국으로 강제송환되었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의 시간을 열악한 외국인보호소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외국인보호소에서 기다린 시간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강제송환을 지켜본 한 동료 보호외국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이럴거면 차라리 대한민국은 난민을 안받는다고 하지...왜 보호소 내에 대문짝만하게 난민신청하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는거죠?"

현재 외국인보호소에는 이들 뿐 아니라 6개월 이상 장기구금되어 있는 보호외국인들이 화성외국인보호소에만 20여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2년 이상된 사람들도 4~5명 정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난민신청자들이고 일부는 무국적자, 여권발급대기자 등도 있습니다. 대부분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장기간 구금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기다림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형사범죄자라면 재판을 받아 형기가 확정된 후에는 내가 언제 교도소에서 나가게 될 지 알 수 있지만, 이들은 기약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강제퇴거 명령을 받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외국인에 대하여 법무부장관이 3개월마다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 연장의 횟수나 기한에 제한은 없습니다.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것입니다.

법무부는 "보호기간 상한을 설정할 경우 보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크"다며 보호(구금)기간에 제한을 두는 것에 지극히 부정적입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 구금기간의 제한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습니다. 인권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신체의 자유가 무한정 침해되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도 입을 닫습니다. 그리고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법무부가 아닌가 의심됩니다. 법무부는 난민심사기간을 줄이고 인정률을 높이기보다는 난민신청자들을 외국인보호소에서 무한정 기다리게 함으로써 이들이 스스로 지쳐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미등록체류(불법체류)의 해법 역시 고용허가제 등 제도개선을 비롯하여 다양한 접근과 방법이 있음에도 법무부는 단속과 구금 그리고 강제 추방에만 의존하면서 다른 정책대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국인도 보호소에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형사범죄자가 형기를 마친 후에도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호감호소로 보내져 정식재판없이 다시 징역살이를 해야했습니다. 전두환 때 만들어진 ‘사회보호법’이라 불리던 이 법은 2005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구금되어 있던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터져나왔지만 이때도 법무부는 범죄율 증가 등을 우려하며 폐지에 반대해왔습니다. 2010년경 이귀남 당시 법무부장관은 보호감호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시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가둬둠으로써 만 이루어지는 정의는 과연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0여년전 ‘사회보호법’을 폐지시킨 그 기준은 왜 ‘외국인’이라는 이름 앞에서 멈춰져야 하는 것 일까요? 유엔이 권고하는 ‘비구금적 방식’의 도입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 외국인보호소 구금기간을 제한하는 것으로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더 이상 4~5년씩 기약없는 구금상태에 놓여지는 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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