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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재의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2) 디지털 성범죄는 어떻게 진화했나

입력 : 2021-09-16 06: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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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재의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2)

디지털 성범죄는 어떻게 진화했나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에 ‘N번방 사건이라는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난 디지털 성범죄는 하루아침에 탄생 된 것이 아니다.

‘N번방 사건은 N번 째 참사라는 어느 기자의 말처럼 디지털 성범죄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남성 중심 문화와 일상화된 여성의 성적 대상화,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못 따르는 사법부의 판단기준과 사회적 무관심의 자양분을 먹으며 지금도 자라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이렇게 자라기까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그 연대기를 짚어본다.

 

1990년대 ~ 2000년대 초

가정용 캠코더로 촬영된 포르노그래피 비디오를 보다는 인터넷이 무섭게 발달하던 시기, 1997빨간 마후라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현대 디지털 성범죄의 원형과도 같다. 이것을 제작하고 촬영한 이들이 모두 미성년자였다는 것도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보호법이 만들어 졌지만 정작 본인의 동의 없이 영상이 유포되는 명백한 피해를 입은 15세 여성 청소년은 소년원을 가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 여성 청소년은 가출 후 성폭력을 당했고 이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성폭력이자 성착취 사건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유명 여성 연예인의 동영상 유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두 영상 모두 전 남자친구가 영상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여 죄가 입증되지는 않았다. 이중 한 영상은 미국의 한 포르노 사이트에 동영상으로 올려진 후 폐쇄될 때까지 약 20만 명이 건당 19.9달러를 내고 파일을 내려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두 사건은 제작에서 유포까지 손쉽게 이루어지며 그것은 곧 수익()이 된다는 걸 알려 주었다.

 

2000년대 중 ~ 2010년대 초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관련 규제의 도입과 실패를 반복하던 시기다. 2004년 소라넷 운영자 71, 2006년 한국에 엄청난 음란물을 공급했다고 알려진 김본좌’, 2007년 스팸메일의 지존 김하나등이 검거된다. 그럼에도 유사한 사이트가 또 다시 생겨나는 것을 막지못했다. 이들은 이미 초고속인터넷망과 남성 소비자들을 기반에 두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포르노로 만들어 돈을 버는 방법을 체득한 상태였다.

여기에 웹사이트 제작사의 공조도 한몫했다. 당시 국내 대기업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업계를 선두 하던 회사가 일반 사이트 제작보다 더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포르노 사이트 제작을 위해 전담팀을 둘 정도였으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시기부터 재현으로서의 포르노와 실제 불법행위로서의 성범죄 사이의 선이 흐려지는데, 포르노의 소비가 인터넷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일반인이 등장하는 짧은 동영상이 대세가 된 것이다. 이것을 보는 이들은 이를 범죄가 아닌 포르노의 새로운 유행 정도로 여기는 정서가 공유된다.

 

2010년대 중 ~ 현재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으나 그 저변에는 소라넷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5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소라넷 문제를 다뤘는데, 당시 인터뷰한 A씨는 초대남 모집에 응했다가 거부 의사를 밝히는 여성을 강간하도록 부추기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인사불성의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해 회원들을 초대하는 초대남모집 글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온다며, 소라넷에서 여자는 거의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소라넷 회원들은 운영자가 검거되어 핵심 서버가 폐쇄되자 n번방, 박사방 등으로 스며들게 된다. 피의자들에 대한 법원의 낮은 형량과 성범죄자들에 대한 온정주의는 결국 ‘N번방 사건이라는 참사를 낳고 만다. 대한민국 성범죄 사건 중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든 N번방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올해 6월에 구속된 김영준 사건은 2N번방’,‘남자N번방사건으로 불리우며 다시 한번 끊어지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의 일면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의 손 끝에서 한 사람의 삶을 산산조각 내는 새로운 기술의 범죄가 만들어 지고 있을 것이다.

 

#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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