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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3)

입력 : 2016-02-03 17:56:00
수정 : 0000-00-00 00:00:00

  

우리 엄마(이하 파주댁)는 음식 장사를 오래 했다. 
어릴 때 파주댁이 하던 식당에서 돈까스 고기를 두드리던 뭉뚝한 연장이 기억난다. 
둔탁한 소리가 끝나면 이내 고운 빵가루가 고기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게 신기해서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파주댁은 국수 장사를 하셨는데 난 가끔 유부초밥 등의 배달을 거들기도 했고 어느 날은 용달에 치어서 그녀를 혼비백산하게도 했다. 
다행히 찰과상에 그쳤다. 
아버지 신문사가 파산하고 파주댁은 커다란 한식당에서 먹고 자고 하셨다. 
그때 파주댁이 보고 싶어서 그녀의 화장품 향이 진하게 나는 베개를 껴안고 꺽꺽 울기도 했다.
고속터미널 떡복기 가게에 계실 때 그때 난 진심으로 철이 없어서 장사하고 남은 순대 꼬다리를 먹는 재미가 좋기만 했다. 
유치원에서도 꽤 오래 일하셨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만 보면 조리사님 밥 더주세요! 하고 삐약삐약 울었다. 
유치원 은퇴 후 한동안 의욕이 없으시다가 밥통이라는 가게에서 특유의 분식 솜씨로 목동 주민들을 휘어잡았다. 
하지만 주인은 예고도 없이 권리금을 비싸게 받고 가게를 헐값에 넘겼다. 
오늘 파주댁은 파주에 새로운 일터가 없는지 돋보기를 끼고 벼룩 신문을 찬찬히 읽어보더니 듣기에 가장 젊고 애띤 목소리로 전화를 거신다. 
"사람 구하셨나용?" 
나는 요즘도 가끔 파주댁 옆에 살포시 가서 잠을 잔다. 
그녀가 자면서 내는 그릉그릉 소리가 좋다. 
친구는 나에게 마마걸이라면서 너는 엄마를 극복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힘들 것 같다. 
나는 파주댁의 영원한 팬이고 파주댁도 나의 영원한 팬이기 때문에. 
어제는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가족은 등에 업으면 짐이 되고 가슴에 안으면 사랑이 된다고. 

그래, 이제는 엄마의 등에서 내려와 가슴으로 안아드리고 싶다. 

사랑합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더배곳 배우미 아멜 김유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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