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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43) 어떤 조선족 동포(1)무하마드 깐수

입력 : 2022-12-07 03:46:53
수정 : 0000-00-00 00:00:00

이해와 오해 (143)


어떤 조선족 동포(1)무하마드 깐수

박종일(저술가, 번역가)

 

 

 

정수일(鄭守一)1934년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들은 함경북도 명천에서 연변으로 이주했다. 그는 연길고등중학고(현재는 용정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베이징대학 아랍어과에 입학했고 전교수석으로 이 학과를 졸업했다. 중국정부 국비유학생으로 카이로대학에서 아랍문학을 공부하였고(1955-1958) 중국외교부에 들어가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일했다(1958-1963)

정수일은 국적으로는 중국인이었지만 부모의 영향으로 조선(한국)인이란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일하기 위해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그의 뛰어난 재능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외교부장 천이(陳毅)가 극력 반대했다. 수상 저우언라이(周恩來)까지 나서서 그에게 중매를 해주겠다고 만류했으나 그는 조선족 동포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함께 조선(북한)으로 돌아왔다. 그는 평양에서 국제관계대학과 평양외국어대학에서 1974년까지 교수로 일했다. 그의 뛰어난 아랍어 능력과 아랍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이국적인 외모가 북한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다. 19749월부터 그는 45개월에 걸친 간첩훈련을 받았다.

19791, 정수일은 베이루트로 가서 레바논-조선친선협회와 북한대사관의 도움으로 레바논 국적을 취득한다. 그 후 튀니지에 유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튀니지대학 사회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튀니지 국적을 취득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다시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의 대학 등을 거치면서 10년에 걸쳐 연구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현지 국적을 취득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마지막에는 (레바논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나) 필리핀에 거주하는 무하마드 깐수라는 레바논인 신분을 만든 후 1984년에 남한으로 들어왔다. “무하마드는 위장신분을 확고히 하기 위해 5년 동안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1988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고, 1990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 관계사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후 단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되어 실크로드 문명교류사를 강의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학계의 저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신라 시대 인물인 처용이 아랍상인이란 주장을 가장 먼저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5년 만에 한국 역사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타국에서 열정적으로 공부해 성공한 그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19846~19967월 사이에 정수일은 라디오를 통해 평양의 지령을 161차례나 받았고 월간지에 보도된 기사를 중심으로 클린턴대통령 방한, 한국군의 최신형 전차성능, 한국의 민주화운동 동향, 영화감독 신상옥 내외의 은신처 등에 관한 정보를 베이징과 선양의 북한 정보거점에 보고했다.

정수일은 1987~1995년에 4차례 비밀리에 북한으로 가서 훈장을 받고 공작금을 수령했다. 이때까지 정보는 원시적인 서신의 방식으로 보고되었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수일이 1996년부터 보고수단을 팩스로 바꾸면서 안기부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안기부는 군사 정치 분야의 정보가 서울의 한 호텔 팩스를 통해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으로 전달되고 있는 정황과 그때마다 어떤 아랍인이 이 호텔을 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가 체포될 당시에 그의 집에서 나온 문건이란 방대한 양의 전문 학술서적뿐이었다. 북한이 파견한 학자 첩보원은 첩보원으로서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검찰은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그의 첩보활동이 큰 위험을 가져오지 않았고 오히려 남한 학계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점이 고려되어 12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의 제자 대학원생들은 재판과정을 지켜보았고, 정수일은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다음 호에 이어서)

#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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