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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붉은 산수화 이세현 - 인주 색 하나로만 그린 풍경, 세계적 이목 끌었다

입력 : 2023-03-14 04: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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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붉은 산수화 이세현

인주 색 하나로만 그린 풍경, 세계적 이목 끌었다.

 

▲ Between Red-33,2007,Oil On Linen, 400cm x 250cm

붉은 산수화 작가로 통하는 이세현 작가를 파주 작업실에서 만났다. 말 그대로 한 가지 붉은 색깔로만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유화물감 색인명은 Rose-Red컬러인데 우리나라에선 인주 혹은 부적 색깔이다. 이 컬러로만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단조롭고 심심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의 그림 앞에서 바로 아니라는 답이 나온다. 한 색깔인데도 명암과 색깔의 톤이 다양해 입체감이 장난 아니다. 또 일견 산수화 같지만, 그 안에 다양한 인공물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자와 사찰, 거북선, 군함, 등대 등이 나무와 산 바다 바위 등 자연물 사이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다. 모든 배경은 하얀색, 아니 색깔을 칠하지 않아 희게 남은 캔버스의 여백이다.

 

군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보던 붉은 자외선 색깔이 각인됐다.

이세현의 작품은 그가 전방에서 군 복무하며 야간 투시경으로 북한을 바라보았을 때의 붉은 자외선 색깔이 그의 의식 깊게 각인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같이 분단의 최접점에서 느낀 역사적 현장 의식 또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그래서 화폭의 중간쯤에 철책과 참호 등이 자리 잡는 그림도 제법 많다. 그리고 그의 유년 시절의 기억은 산수의 바탕이다. 바다와 기이한 바위, 나무들 그리고 등대와 정자는 거제도 고향과 인근의 통영, 부산 등지에서 보았던 산수 기억의 발현이다. 그의 그림에서 늘 아름다운 소나무는 외롭지만 꿋꿋하게 살아왔던 자기 모습이다. 어릴 적 부산으로 이사가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소나무도 그렇고 정자도 그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어린시절 고생도 많이 했고 또 외로웠다. 그 과거의 풍경 기억이 현재의 풍경으로 재현된 것이 내 그림이다라고 말한다.

 

40대에 영국 유학, ‘예술의 본질이 다름이란 깨달아

그는 홍대 미대를 나왔고 졸업 후 입시 미술학원을 경영한 적도 있었지만 40대에 접어들어 열정이 식어가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접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첼시 미대에서 예술의 본질은 다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그의 그림에 끌리기 시작했고 이제 그의 작품은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독특한 한 장르를 개척한 듯하다.

 

▲ 쉬레더 전 독일 총리가 구입한 작품앞에 서있다

 

세계 유명 컬렉터들과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작품소장

그가 처음 그린 작품은 버거 컬렉션 대표인 모니크 버거(Monique Burger)가 구입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물급 아트컬렉터인 울리지그(Uli Sigg)도 그의 작품을 사기 위해 스위스에서 런던으로 날라오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의 페로탕(Perrotin)갤러리, 미국의 페이스(Pace)갤러리 등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전 독일 총리가 그의 파주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사방 2미터의 대형 작품을 주문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의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통일성이 있어 편하게 보인다. 단일 색감의 흑백사진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자세히 보면 나무건 바위건 사찰이건 형상물에 녹아있는 입체감과 명암 톤의 변화가 치밀하다. 그만큼 계조가 풍부하다. 그가 아크릴 대신 톤이 다양해 작품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유화물감을 고집하는 이유기도 하다. 또 전체적으로 형상들이 균형을 잘 맞추고 있어 한눈에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그림이 하나로 들어온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가 떠오르는 작품의 매력은 통일성과 균형

그래서 자연을 관조했던 겸재 정선의 산수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옛날의 산수화에선 절대로 등장하지 않았을 인공물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산수의 공간 속으로 잘 용해되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는 2006년 처음 붉은 산수화를 그렸을 때는 노스탈지아를 연상시키는 순수 산수화를 그렸다. 2010년 귀국해 천안함,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 이슈를 담기 시작했고 요즘은 구름이나 번개 같은 자연현상, 그리고 자연의 무심함을 담고 있다.

 

▲ Betweem Gold - 021SEP01, Oil and Gold foil on Linen, 250cm x 250cm. 2021

 

지금은 자연의 무심함을 통한 생사의 개념이 없어진 텅 빈 세계를 표현

지금은 자연의 무심함을 통해 삶과 죽음의 개념이 사라진 텅 빈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바다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되는 다층적 공간개념을 담고 있는 것도 그가 말한 텅 빈 세계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세현 작가는 의외로 한반도 분단상황에 관심이 많다. 2021년 남북 간 화해무드가 절정에 있을 때 그는 골드 색깔의 구름을 그의 붉은 산수화에 그렸었다. 남북평화를 향한 그의 금빛 열망이 구현된 그림이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더 이상 나오질 않는다. 그는 만만디다. 서두르지 않으며 천천히 작업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감성과 정서가 그림 안에서 진실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들은 거제도와 통영, 부산 등지에서 잉태된 산수의 기억들이 그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시술대 위에서 때가 되어야 출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석종 기자

 

이세현 010 4939 1080

 

스튜디오: 파주시 회동길 41-3

 

seart23@hanmail.net

 
#155호 파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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