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책 되새기기- 나목, 박완서, 세계사
수정 : 2021-12-27 03:06:40
지난 책 되새기기
나목
박완서, 세계사
올해는 故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연초에 나는 '박완서 전작 읽기'를 올해의 목표로 정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사십여 년 간 수많은 작품을 남긴 박완서.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근현대를 살아낸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함께 한 경험이었다.
『나목』은 박완서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스무 살 ‘이경’의 한국전쟁 체험기이다. 서울 수복 후 오빠 둘을 모두 잃고 학살 유족이 된 이경의 내면 기록이자 한국전쟁 후 미8군 PX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의 기록이다. 소설 속에서 이경이 흠모하는 ‘옥희도’의 실제 모델인 박수근과 PX 초상화부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는 『나목』 작가의 말에서 화가 박수근의 삶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2021년은 코로나로 잃은 것이 참 많은 해였다. 12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시 『나목』을 읽는다. “하지만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은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합니다.” 화가 박수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불안의 시기, 박완서의 소설과 박수근의 그림에서 위안을 얻는다. 『나목』에 나오는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은 지금 박수근의 전시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김정은 <엄마의 글쓰기> 저자
#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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