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무엇이 중요한가
윤석열의 비상사태
계엄으로 시작된 정치 상황이 다음 주 대선을 통해 어느 정도 일단락될 예정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의 엄중한 국가적 현실에 대해 총력을 다해 대응하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저출산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무 한 일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저출산 문제만큼은 중요한 문제로 인식했습니다. 2024년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는 초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위기입니다. 급기야는 대한민국의 존망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고대 스파르타를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최강의 전성기를 누렸던 스파르타가 급격히 몰락한 결정적 원인은 인구 감소였습니다.”
외부 일정이 많지 않았던 대통령이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직접 주재한 행사일 만큼, 이 문제를 비중있게 다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발언이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저출산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스파르타는 저출산으로 망했습니다.
맞습니다. 스파르타의 몰락은 저출산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스파르타 방식’은 스파르타의 정치·군사적인 모습입니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용감한 전사들의 모습은 우리 뇌리 속에 강력히 남아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국강병이나 독재적인 방식으로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이상향으로 삼았던 곳이 바로 스파르타였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고대 도시국가였던 스파르타가 몰락한 것도 젊은 세대의 인구 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활기차고 개방적인 사회였던 스파르타는 아테네처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여 화려한 점토 공예 등이 발달했고, 신들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합창경연대회도 자주 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원전 7세기 무렵 경쟁관계에 있던 이웃나라 메세니아를 정복한 이후 스파르타의 정치와 경제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파르타는 자신들보다 훨씬 인구가 많았던 메세니아를 특유의 용맹으로 제압하고, 포로가 된 모든 시민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자유시민이라고 불리는 지배계급과 노예의 비율이 1:20을 넘었습니다. 지배계급과 노예의 비율이 1 대3 정도에 불과했던 아테네 등 다른 그리스 국가들과는 매우 대조적 이었습니다.
이러한 압도적 인구 차이는 스파르타인들에게 언제든지 메세니아인들의 반란으로 국가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이같은 공포는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폐쇄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어린 소년들은 가정에서 분리되어 군사학교에서 엘리트 전사로 집단 양육되었고, 혹독한 군사 훈련을 견뎌낸 남성만이 자유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모든 남성들은 공동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정치·군사적으로는 집단주의를 택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철저하게 개인주의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식사비용, 교육비용은 물론 모든 군사훈련, 전쟁참전 비용까지 개인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으로 전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스파르타 남성에게 큰 수치였을 뿐 아니라, 자유시민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은 출산기피로 이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녀를 낳아도 양육할 돈이 없었으므로 낳지 않게 됩니다. 부유한 스파르타인들 또한 상속으로 토지를 분할하면 자식들이 가난해질 것을 우려해 출산을 기피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토지를 소유한 가문이 100여 개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 기반이 붕괴됐습니다. 이에 스파르타는 세 자녀 이상이면 노동 면제, 네 자녀 이상이면 세금 면제하는 강력한 출산 장려책을 내놓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이 없어 낼 세금이 없는데 감세가 무슨 소용이며, 복지 없는 사회에서 노동 면제는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는 결국 전쟁 때문이 아니라 저출산으로 서서히 몰락했습니다. 시민권을 가진 남성이 기원전 640년 9,000명에서 300년 뒤 1,0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아무리 무적의 군대여도 1,000명으로는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상속을 막고 복지를 늘리자는 개혁을 주장하는 지도자도 등장했지만 거부당합니다. 시민권을 가진 시민들은 그래도 부유층이니 스스로가 소멸하면서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체제 변화는 없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구는 줄고 재산이 없어 시민권을 잃은 사람들은 도망갔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스파르타는 조용한 소도시가 되고 맙니다.
로마시대에는 소수의 스파르타인의 기이한 공동체 생활을 구경하는 관광코스가 유행하기까지 합니다.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대선 공약으로 본 저출산 대책
우리의 현실을 스파르타와 비교해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양극화, 저출산, 청년의 삶, 지속불가능한 기득권 유지 노력 등은 어쩌면 우리가 마주한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저출산 대책이 있을까요. 공식적으로 발표된 주요 후보 4명의 10대 공약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후보는 아예 출산이라는 단어조차 공약에 없습니다. 나머지 후보들의 공약에는 ‘저출산’이 보통 한 항목의 하위과제로 들어가있습니다. 획기적인 공약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작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요? 기후변화처럼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요?
저출산 극복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1960년대 말 우파정권인 드골 정부 시절부터 저출산 대책을 내세워 처음에는 GDP의 5%까지 투자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도 GDP의 3.8%를 지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5%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치면 130조 원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물론 그만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절박함’이 보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는 곳이 곧 마음을 주는 곳입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세금을 올리는 것은 충분하지 않지만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마저도 거부하는 일부의 생각과 스파르타 마지막 100여 가문의 생각은 얼마나 다를까요?
대선을 일주일 앞둔 오늘, 조국의 운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봅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