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장 올라왔소. 맛만 보소~
“언니, 뭐 혀?”
“몸이 안좋아서 집에 누워있어.”
“어디가 안좋당가?”
“걍 안좋아.”
“김장이 올라왔소, 좀 있다 갖다 줄게.”
“뭐? 김장? 좋지. 그거 먹으면 힘 나겠네.”
“허허, 그냥 맛만 보소.”
김장철이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을 몇 포기 해야 하는지 혹은 하고 와서 병이 났다는 얘기가 줄을 잇고 있다. 김장하러 시골에 안 가본 나로서는 얘기를 들으며 “잘 하고 와.”, “어쩐대?” 하는 추임새만 넣을 뿐이다.
그랬는데 이번 주 들어 여기저기서 전화, 카톡이 왔다. 김장 해왔으니 맛 좀 보라고. 다 얻어 왔다. 얻어 와서 보니 각 지방 김치들이 우리 집에 다 모였다. 서울 김치, 경상도 김치, 전라도 김치, 우리 친정집에서 좀 있다 김장을 하면 강원도 김치까지 맛볼 수 있다. 충청도 김치 빼고 다 맛보는구나. 김장철이 되면 각 지역 김치를 맛보는 일이 올 해 뿐은 아니었다. 파주에 와서 매년 겨울 이웃들의 인심이 이렇게도 좋다.
전라도 김치는 다 아는 얘기겠지만 젓갈의 진한 맛이 일품이다. 친정이 경상도이고 시댁이 전라도인 나는 전라도 김치를 결혼하고 처음 먹어보았다. 김치에서 바다 맛이 난다고 했더니 남편이 웃으며 좋아했다. 이후로도 잘 먹다가 둘째를 가졌을 때는 젓갈 냄새도 맡기 싫어서 김치를 안 먹었다. 친정집은 경상도에 있지만 부모님 고향이 강원도라서 나는 강원도 김치 맛이 좋다. 아삭하고 씹히는 시원한 강원도 김치는 김치 중에 으뜸이다.
전라도 김치는 갓 담갔을 때 맛있다. 그런데 익으면 익을수록 각종 젓갈이 짬뽕이 된 텁텁한 맛이 난다. 그런 반면 강원도 김치는 처음에는 좀 싱거운 듯하지만 익으면 익을수록 시원하고 깔끔한 맛에 긴긴 겨울밤 찬밥에 김치만 있어도 좋을 정도가 된다. 경상도 김치는 그냥 깔끔한 양념 맛, 이것이 김치네 하는 정석인 것 같다. 서울 김치는 그야말로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중도를 걷는다. 이건 순전히 강원도 김치를 좋아하는 나의 소견이니 이 글을 보고 내년에는 김치 안줘야지 하고 마음먹은 서울 언니, 그러시면 안돼요. 김장철에 맛보는 이웃의 인심이 참말로 좋다. 이렇게 사니 참말로 좋다.
주부 독자 허영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