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9) 영원한 해병 이영남씨 -  “방역초소 지키는 일이 나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

입력 : 2019-10-23 02:36:31
수정 : 0000-00-00 00:00:00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9

- 영원한 해병 이영남씨

 

방역초소 지키는 일이 나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

- 외진 곳에서 ASF 방역에 총력하는 영원한 해병, 이영남씨

 

 

 

파주의 모든 돼지가 살처분되거나 예방수매돼

 

파주시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11월이면 종료될 전망이다.

파주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방지를 위해 관내 양돈농가 63농가를 대상으로 수매·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100% 동의를 받아냈다.

파주시는 14일까지 110농가 123,636두 중 45농가 61,841두를 살처분했다. 지난 104일부터는 전체 61,795두의 수매를 시작하여 늦어도 1020일 경이면 수매와 살처분이 완료될 예정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20일경 수매·살처분이 완료되면 잔존물 처리와 함께 30일이 지나야 이동제한이 해제될 것이며 발생농장을 제외하고는 방역초소도 다 철수할 예정으로 11월까지는 이 상태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이하 돼지열병)으로 강화, 김포, 파주, 연천의 모든 돼지를 처분하기로 결정한 정부방침이 발표되고 관내 각 농가에서 돼지 수매를 위해 차량이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다. 수매 차량이 고기로 쓸 돼지를 다 사들이고 나면 그만큼의 몸무게가 안 되는 돼지들은 다 살처분 된다. 돼지열병에 안 걸려도 고기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 애기 돼지들은 비용문제로 다 묻는 것이다. 인간들의 고기를 향한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적어도 돼지열병이 그 욕망을 많이 줄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재기까지 하던 시중 고기가격은 조금 인하되어 있을 뿐이다.

1012, 암울한 돼지열병의 기운처럼 어두운 새벽 5. 법원읍에서 파주 이이 유적지와 두루뫼 박물관을 넘어 적성으로 가는 길. 금곡리를 지나 왼쪽에 파평산 꼭대기 군 초소 불빛이 보이는데 웅담리를 앞에 두고 산길을 넘어가면 파주에 또 이런 시골길도 있었구나 싶다. 새벽이라 그런지 차들이 싱싱 달린다. 그리고는 길 한 켠에 컨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돼지열병 방역초소가 보인다. 지금 파주에는 60여개의 돼지농가를 지키는 66개 초소에 공무원과 시민을 합쳐 연인원 8천여명의 인력이 불철주야 방역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수매나 살처분을 마친 농가는 사후처리를 한 뒤 초소도 철수해서 한때 92개까지 늘었던 초소 수가 조금 줄었다. 각 초소마다 3~2인이 한조가 되어 3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다.

 

▲ 방역초소를 찾은 파주시의원들

 

여기는 제 5초소!

 

주변의 돼지농가 출입 차량과 인력에 대한 방제를 위해 설치된 법원 제 5 방역소초. 이곳에서 이영남씨는 젊은 경찰 한 분과 순찰을 위해 들린 한 공무원과 함께 근무를 서고 있다. 평소 해병전우회 파주지회에서 여러 형태로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이씨는 이번에도 교통 실비 정도만 받고 거의 자원봉사 형태로 이 일에 뛰어 들었다. 파주 해병대 전우회 전진광 회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뒤였다. 최저 임금 수준을 받는 것이니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그 돈으로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처음에는 금촌, 조리 쪽에서 근무를 하다가 그쪽은 군인들과 경찰들이 맡게 되면서 그 외 외진 지역을 해병대 전우회가 맡게 된 것이다. 이곳 주변의 5개 초소를 해병전우회가 맡아서 지키고 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 와

 

해병대 전우회 파주지회는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봉사한 뜨거운 인연으로 제대 뒤에도 지역을 위해 자원봉사 등 여러 형태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석 달 이상 양계가와 닭고기 조리 식당들을 힘들게 했던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때는 계란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들을 위해 계란을 대량으로 사서 기부했다. 자원봉사센터 직원들과 함께 주보라의 집 등 사회복지시설 여러 군데를 직접 다니며 계란을 나눠주는 훈훈한 이웃사랑을 나누었다. 양계농가도 돕고, 어려운 이웃도 돕는 일석이조의 활동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다. 이영남씨는 이때도 운전으로 도왔다.

지난해 고성산불 때도 고성군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그때는 그가 속해있던 해병전우회와 대한적십자사 파주지구협의회, 파주시모범운전자회 등 여러 자원봉사단체 회원 40여명이 참여해 산불로 어려움을 당한 피해주민의 복구작업에 일손을 보탰다. 그때 이씨는 파주에서도 수해나 이런 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전국 각지의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힘을 얻었었는데 이런 활동으로 이제 빚을 갚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용기를 얻어 하루빨리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도왔다. 그리고 그때 산불 피해자 분들이 정말 고마워하던 모습이 이런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들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그 뒤로도 여러 재난의 현장과 어려운 이들을 돕는 현장에 함께 했다. 홍수, 태풍 피해 복구사업 자원봉사, 겨울 연탄 나누기 자원봉사 등등.

 

광탄 출신 해병대 이병장!

 

파주 광탄 출신인 이영남씨는 광탄고를 졸업하고 1년 뒤 8756일 해병대에 571기로 입대해서 정확하게 30개월을 복무하고 89117일 제대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입대해서 기수가 높은 편인데 가끔 동네나 해병대 전우회에서 형님뻘 되시는 분들을 만나요. 그런데 그분들 중에 기수를 확인하고 깎듯이 선배대접을 해요. 그럼 난 그러지 마시라고 그러지. 옛날엔 그분들이 해병대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들 하셨는데 요즘은 다시 정상적인 형님 동생으로 돌아갔지, 허허

밤에 근무를 서고 있으면 지회장을 비롯한 해병대 사람들이 빵이나 우유, 순대 등을 사와서 위문을 오기도 한다고. 이씨는 날마다 저녁 6시에 근무를 시작하고 아침 6시면 교대를 한다. 그 뒤엔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일어나 볼일을 좀 보고 저녁 6시면 다시 근무를 시작한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 속에 피곤하고 조금은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지역사회를 지키고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돼지 열병 정리가 다 될 때까지는 계속 근무할 생각이다.

이영남씨는 젊어서는 중장비 일을 생계를 위해 오래 했었다. 그것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더 이상 못하고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차량운전도 하고 봉사생활도 함께 했다. 이것저것 주어진 대로, 닥치는 대로 일하는 파주의 대표 서민인 셈이다. 다행이 건강이 나쁘지는 않아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 병이 있어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투병생활을 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나마 좋은 일을 하면서 얻게 된 복이라고 생각한다.

 

 

 

돼지 농가, 희망이 안 보인다

 

이영남씨는 지금 당신 가족 걱정보다 지키고 있는 초소 뒤 농가가 더 걱정이다. 2400두를 키우면서 돼지를 더 키우려고 증축하려던 차에 이번 돼지열병사태로 돼지 전원 처분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정부의 시책이라니 안 따를 수도 없고 이제 이 농가의 돼지들을 다 처분할 날만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돼지 수를 늘이느라 생긴 빚이나 그동안 겨우 버텨왔던 생계는 이제 계산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 농가의 돼지가 전원 처분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20113천두를 키우던 농장에 구제역이 닥쳤다. 설마, 설마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며 온갖 주의를 다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어느 날 두 마리가 쓰러져 신고를 하고 나니 바로 구제역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돼지들을 농장 옆에 다 묻었는데... 그 뒤에 빚을 내서 모돈 200두를 들였다. 그리고 구제역이나 다른 질병 방제를 위해 온갖 신경을 써가며 돼지들을 키워왔는데 이제 구제역도 아니고 직접 돼지열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안전조치를 위해서 농장의 모든 멀쩡한 돼지들을 다시 묻게 된 것이다. 이영남씨는 이 이야기를 듣고 농장주 못지않게 망연자실 했다고 한다. 저분들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그사이 시퍼렇게 멍든 것 같던 하늘이 밝았다. 하지만 돼지들을 모두 잃고 실의에 빠지게 될 농장주들에게 더 이상 희망찬 아침은 좀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도 희망의 해가 떠오르길...

어떤 사람들은 집단 사육의 문제니 그 규모를 줄이고 방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게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오래된 역사의 문제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맨처음엔 아프리카 풍토병에 불과했지만 이것이 1957년 포르투갈로 옮겨갈 때, 식민지 앙골라에서 온 사소한 음식물 찌꺼기를 그냥 돼지에게 주는 것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번졌고 지금에 이르렀으니 식민지가 제국주의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거 아니냐는 식이다. 다 호사가들의 심심한 말장난이겠지만 지금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먹어왔고 또 먹어야 할 돼지 고기를 위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며 어떻게 제도를 고친단 말인가. 다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아직 더 이상 다른 도시로는 확대 되지 않고 있으니 우리의 돼지열병 방역수준이 이만큼이나 되었다고 자부하며 위로나 받아야 할까? 이 도시를 덮은 돼지열병의 어둠이 걷힐 좋은 생각이 아침이 다 되어도 떠오르질 않는다.

이영남씨는 아침 여섯시가 지나면서 퇴근 준비를 한다. 그 사이 돼지 수매차량 5톤 트럭이 들어온다. 이 씨가 한쪽에서 옷을 갈아입은 터라 젊은 경찰이 방역을 한다. 옷을 갈아입은 이 씨는 짧은 인사와 전화번호를 남기고 피곤하다며 퇴근하려 했다. 대뜸 엉뚱한 물음이 생겼다. 집으로 가려는 이영남씨를 붙잡고 마지막 물음을 드렸다. 이 사태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이나 희망이 있겠느냐고. 이영남씨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대안은 잘 모르겠구요, 그냥 사는 게 희망이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가을 아침 해가 조금 늦게 떠올랐다.

                                                           김은환 기자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