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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04] 조선에서 건너간 철령의 성주이씨(星州李氏)

입력 : 2019-09-05 02:39:11
수정 : 2019-09-05 03:20:14

이해와 오해 [104]

조선에서 건너간 철령의 성주이씨(星州李氏)

번역가, 자유기고가 박종일

중국 요녕성 철령(鐵嶺)시에서 동쪽으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최진보향(催陣堡鄕)이란 작은 마을이 있다. 부근에는 기원 초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큰 규모의 고구려산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최진보향 소둔(小屯)은 한국의 성주(星州)를 본관으로 하는 이()씨들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성주이씨 후손 200여 호, 1,200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한 1세대 선조의 묘가 지금도 잘 보존 관리되고 있는데 그 비문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우리 철령 성주이씨는 원래 조선 독로강(禿魯江) 일대에서 거주하다가 명초 홍무(洪武, 1368~1398)년간에 강을 건너 이곳으로 와 정착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650여 년 동안 340여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명사열전(明史列傳)이성량전(李成梁傳)”에는 이성량의 고조부 때에 조선에서 건너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중국인명대사전에는 이성량은 조선인이다. 철령지휘첨사(鐵嶺指揮僉事)로 부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철령 성주이씨 5세대 이성량은 중국 10대 군사전략가의 한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령 성주이씨 1세대인 이영(李英)은 조선시대에 함경도 변방을 지키던 무관이었고 법을 어겨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중국으로 도주하였다. 그는 명의 군대에 들어가 만주지역의 소수민족을 정복하는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철령지휘첨사로 승진하였다. 2세대 이문빈(李文彬), 3세대 이춘미(李春美)도 지휘첨사를 세습하였다.

철령 성주이씨 5세대인 이성량은 군사에 능통해 철령지휘첨사직을 세습했다. 그는 22년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 요동총병(遼東總兵, 요동지역의 군사총지휘자)에까지 올랐다. 요통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서 군공이 이처럼 뛰어난 장수는 명 왕조 200여년 이래 처음이었다. 그의 공적 덕분에 명은 동북지역 소수민족과의 관계에서 열세를 벗어나 지배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성량은 중국역사에서 “10대 군사전략가의 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성량의 장님 이여송

이성량의 장남 이여송(李如松)도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하였고 그 뒤로 산서총병(山西總兵), 제독섬서토역군총병(提督陝西討逆軍總兵)으로 승진하면서 여러 차례 군사를 이끌고 녕하(寧夏), 청해(靑海) 등 중국 서부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여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무관으로서 최고 직급인 제독에까지 오른 그는 조선에서 왜란이 일어나자 동정대원수(東征大元帥)로 임명되어 군사 4만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이때 그의 동생 여백(如柏), 여매(如梅)와 여러 조카등 한 집안이 참전하였다.

이여송은 휴정(休靜), 김응서(金應瑞) 등이 이끄는 조선의 승군, 관군과 연합하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왜군을 기습해 평양성을 탈환했다. 그리고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하며 평안도와 황해도, 개성 일대를 탈환했지만 한성 부근의 벽제관(碧蹄館)에서 왜군에 패하여 개성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함경도에 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이 평양성을 공격한다는 말이 떠돌자 평양성으로 물러난 뒤에는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강화에만 주력하다가 일부 병력만 남기고 본국으로 철군했다. 귀국한 뒤에 이여송은 계속 승진하여 1597년에는 요동총병(遼東総兵)이 되었다. 1598년에, 타타르[韃靼]의 토만(土蠻)이 요동을 침공하자 이여송은 4000여의 경기병(輕騎兵)만을 이끌고 정벌에 나섰다가 복병을 만나 전사하였다. 그는 죽은 뒤 충렬(忠烈)의 시호를 받았으며, 동생인 이여매가 요동총병의 직위를 계승하였다.

이여백(李如柏, 1553~ 1620)은 임진왜란 때 벽제관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나, 귀국 후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누르하치가 이끄는 후금(後金)에 대패하여 자결하였다

명 왕조가 망하고 청이 들어서자 이여송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조선으로 망명하여 농서(隴西) 이씨(李氏)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고도 한다.

중국의 동북지역에는 지금 2백여 만의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들의 역사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본이다.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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