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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책 되새기기] 예수와 묵자 (문익환·기세춘·홍근수, 바이북스)

입력 : 2019-02-21 17:09:51
수정 : 0000-00-00 00:00:00

[지난 책 되새기기] 예수와 묵자 (문익환·기세춘·홍근수, 바이북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서 가장 소름 돋는 대사였다. 지배당하는 자와 지배하는 자의 철학은 엄연히 다르다. 지배당하는 이들을 위해 싸우던 이가 문득 지배자가 되면 철학과 행동이 돌변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만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맛은 영혼마저 잠재운다. 지배자들은 권력을 자손 대대 유지하려고 지배자의 가치관을 사회 전 영역으로 펼친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종교 등 모든 영역이 지배자의 관점으로 재편성된다. 이때 지배자들이 앞세우는 게 피지배자들이 따르던 인물이나 집단이다. 피지배자들이 따르던 상징적인 인물과 집단이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변화하면 생명과 권세가 보장된다. 그러나 피지배자의 목소리를 여전히 대변하려 한다면 제거 대상이 된다.

 

기원전 5세기 춘추전국시대, 묵자는 공자와 쌍벽을 이루던 철학자였다. 공자가 글귀를 알아보는 귀족의 눈높이에서 철학을 전개했다면, 묵자는 철저히 밑바닥 민중의 눈높이로 철학을 전개했다. 묵자는 끝없이 일어나는 전쟁을 막으려고 평화유지군을 육성해 공격당하는 나라를 돌며 목숨을 다해 싸웠다. 세상이 혼란한 이유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진정한 사랑은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외쳤다. 지배자들의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유교가 한나라의 국교가 되면서 공자의 가르침이 살아남은 것과 달리, 묵자의 사상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7세기에 이르러 도교 경전 속에서 묵자가 발견되었고 18세기에 최초의 해설서가 나왔다. 실로 이천년 만에 빛을 본 셈이다.

 

기세춘 선생은 92년에 묵자 해설서를 내면서 동서양 사상과 비교분석했는데, 당시 문익환 목사가 옥중에서 이 책을 읽고 예수가 외친 평화의 하느님은 히브리 전통의 하느님이다는 반론을 기세춘 선생에게 편지로 보냈다. 이후 삼십여 차례 편지가 오고가면서 논쟁이 이어졌고,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의 글이 합쳐져 <예수와 묵자>가 나왔다.

 

묵자의 가르침은 예수의 가르침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묵자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기독교가 되어 지금껏 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시작된다. 지금의 기독교가 진짜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는지, 아니면 지배자의 입맛에 맞춰 재편집된 이야기를 전하는지 질문하는 이에게 <예수와 묵자>를 권한다.

 

유형선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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