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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독립만세》(걸음마다 꽃이다)

입력 : 2018-11-04 13:59:27
수정 : 0000-00-00 00:00:00

《할머니 독립만세》(걸음마다 꽃이다) - 신간 안내

 

 

1. 책 소개와 출간 의의

2. 책 구성

3. 좀더 자세한 저자 소개

4. 본문 속에서

 

 

남편의 아내가 아닌, 가족의 엄마가 아닌, 손주 돌보는 할머니가 아닌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독립선언!

 

김명자는 나이 70 중반에 자발적 독립을 선택한 할머니다. 20년 가까이 함께 산 아들가족에게 독립을 선언하고 파주 교하에 조그만 방을 얻어 자신의 인생을 새로이 출발시켰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30여 년 전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자식 셋을 키웠다. 작은 방은 독립의 상징이자 작업실이다.

 

김명자 할머니는 자신의 공간에 있는 조그만 책상에서, 혹은 지역의 도서관에서 매일매일 기록을 한다. 기록의 도구는 주로 글이지만 가끔은 그림으로도 표현한다. 쓴다는 것은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행위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고 했던가. 그래서 김명자 할머니는 매일이 행복하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이도 독립글쓰기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기록이 바탕이 되어 한 권의 책이 나왔다. 할머니 독립만세

 

할머니 독립만세(걸음마다 꽃이다)는 가족들과 독립해서 살며, ‘아내, 어머니가 아닌 여자, 김명자로서의 삶을 찾으려는 우리 시대 평범한 할머니의 진솔한 기록이다.

 

 

1. 책 소개와 출간 의의

개인 기록의 의미 우리 모두는 하나의 역사다

보통 역사는 큰 사건이나 유명한 인물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내 삶의 소중함을 종종 잊고 지낸다. 개인의 꼼꼼한 기록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자존감을 깨우는 동시에, 우리 생활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은 평범한 사람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복원하는 것과 맥이 통한다.

소동출판사는 “100명의 사람은 100권의 책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개인들의 기록(글쓰기, 그림, 사진 등)을 중심으로 한 책을 시리즈로 낼 계획이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에 집중함과 동시에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책마을을 만든다는 목표이고, 이 책 할머니 독립 만세(걸음마다 꽃이다)는 그 시작이다.

 

급변하는 사회 한 사람의 인생에서 배우는 위로와 용기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 인식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지 않고 사회 분위기도 더 강퍅해져 간다. 일인가구도 늘어가고 있다. 사회적 제도도 보완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아픈 사람에게는 위로를, 힘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고령화사회가 된 지 오래지만, 노인들은 사회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여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공공기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세대간의 소통 또한 쉽지 않다.

 

한 권의 책이 위로와 용기를 주고 소통과 희망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이 책 할머니 독립 만세는 여기서 출발했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김명자 할머니의 글쓰기는 비슷한 아픔의 사람들에겐 위로를, 노인들에겐 용기를, 젊은층에겐 어른 세대에 대한 공감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김명자 할머니의 책을 보고 꾸준한 기록과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진솔한 글쓰기는 힘이 세다

이 책의 큰 장점은 고단했던 삶과 현실의 갈등을 미화하지 않고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글을 좀 써본 사람들은 진솔하게 글쓰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안다. 자기 과시나 치장의 글이 넘치는 시대에 맞선, 투박하고 진솔한 글쓰기의 힘을 이 책을 통해 전해고자 한다. 진솔함만큼 크게 독자를 움직이는 게 있을까.

 

투박함 속의 감동

이 책은 글쓰기 전문 저자와의 책과는 또 다르다. 세련되기보다는 삶을 보여주는 리얼 다큐멘터리다. 암투병과 이혼, 가족들과의 갈등 등 아픔을 요란하지 않고 덤덤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떤 페이지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어떤 페이지에선 공감의 박수를 치게 된다. 한자 한자 눌러 쓴 글에서 걸음마다 꽃이었던 삶의 울림이 전해진다.

 

할머니의 생활사를 알 수 있다: “어머니(할머니)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봤는지요

우리는 할머니를 인간적으로 이해한 적이 몇 번 있을까. 보통의 할머니가 생일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장미꽃이고, 명절에 자식이나 손주 만나는 것보다 친구 만나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은 내비친다. 일인가구로서 혼밥(혼자 밥먹기)이나 혼잠(혼자 잠자기)을 즐기지만 또 그게 외롭기도 한 인간적인 면모도 알려준다.

할머니도 생각하고 고민하고 짜증도 내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가족들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고, 멋진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간 대상화에 그쳤던 할머니들의 삶과 생활을 알려준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어머니나 아버지(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에 좀더 다가간다.

 

주요 독자층

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50대 이상의 성인(용기를 준다), 이 땅에서 비슷하게 고단한 삶을 살았을 여성들(위로를 준다), 어른 세대와 소통하고 싶은 청소년 및 청년층(이해를 하게 한다), 그리고 미시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꼼꼼한 기록 속에 생활사 포함)들에게 보석 같은 책이 될 것이다.

 

 

2. 책 구성

 

 

이 책은 모두 4부로 되어있다. 1<나의 두 번째 삶은> “혼인으로 시작한다. 곡절 많았던 삶, 그러나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대한민국 어머니, 할머니 누구나가 비슷하게 겪었을 삶의 모습이 옛 일기, 편지와 함께 고스란히 드러난다. 돌아보기 힘든 한맺힌 기록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 한자한자 글을 써나갔다. 한 장을 펼치면 다음 장이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2<맹자씨 맹자씨>는 결혼 전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고향마을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집에서 한 달을 머물렀을 때의 풍경, 명절 때면 해대던 엄청난 음식들의 요리법, 여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충격과 새엄마, 평소에 고무신을 신다가 외출할 때는 앞집에 숨겨놓은 구두를 신었던, 여자들에게 제약이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 등 첫 번째 삶에 대한 기록은 손톱 밑에 조금 남아있는 봉숭아물처럼 아쉬움과 그리움이다.

 

3<할머니 독립만세>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시작한다. 독립해 낯선 곳에서 일인가구로 적응해가는 과정, 독립생활의 필수요소인 배움과 즐김, 친구, 종교, 자연, 자립심 등을 일상의 기록으로 보여준다. 김명자 할머니는 생일날 장미꽃을 선물 받고 싶었는데 아무도 주지 않자 직접 장미꽃을 만든다(“나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다”). 독립을 하고 싶은 분이라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필요한 건 용기.

 

4<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아름다운 늙음을 꿈꾸는 김명자 할머니의 지금, 여기에 관한 글들이다. 7,80대들이 겨울 한밤중에 팥죽을 사먹으러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이나 간 이야기(“도서관 언니들”), 궁상이냐 알뜰이냐를 고민하는 이야기, 나눔과 봉사, 친구들과의 한끼(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요하다) 등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펼쳐진다. 그리고 엄마에게” “딸들에게” “보고 싶은 당신에게” “명자에게로 이어지는 편지를 통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못다 한 말들을 전한다.

책 마지막의 나의 버킷리스트에서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꿈꾸는 김명자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 좀더 자세한 저자 소개 

 

김명자 할머니는 도서관을 직장처럼 이용한다. 도서관은 배움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평소엔 서재가 되고 친구들을 만나 책과 시에 관해 토론하는 사랑방이다. 때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2018년 무더운 여름, 할머니 독립만세의 교정을 본 장소도 도서관이었다.

할머니 독립만세의 계기는 파주 교하도서관의 시니어 자서전 쓰기프로그램이었다. 10주간 진행된 워크숍 뒤 전시를 하고 책(그림과 글, 사진 등이 들어간 표지 포함 32)을 만들었다. 김명자 할머니는 2016, 20172년 연속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여기에서 자극받아 지나간 일기와 편지를 꺼내 정리해나갔다.

현재 파주 교하도서관 동아리 책마중’(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서토론, 시 합평 등을 하는 시니어 동아리)의 회원이며, ‘파주 시민·학생 손편지 쓰기공모전에서 2년 연속 수상(일반부 가작과 최우수상)했다.

무엇보다 김명자 할머니는 기록하는 인간(호모스크립투스)이다. 집의 조그만 책상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매일매일 기록을 한다. 젊은 시절 암투병 중에도 꾸준히 병상일기를 썼으며, 독립 이후 도서관이나 지역의 공공 문화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더 열심히 쓰게 되었다고 한다.

 

김명자194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바람소리와 나무 우는 소리에 마음이 설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스물세 살 결혼하여 고향을 떠났다. 12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바꿔놓은 건 서른여덟 살에 만난 병마다.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듯 싶었으나 마흔여섯 살에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냈다.

아들 가족과 함께 살다가, 독립에 자신을 불살라 파주 교하로 이사 왔다. 교하는 삶의 가치를 준 도시다. 지금 76. 그림도 배우고 종이접기 자격증도 땄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시도 쓰는 도서관 동아리와, 백주간 성경공부를 하는 성당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기억은 가물거리고 머리 빛은 바뀌었어도 매일, 머리로 가슴으로 손끝으로 또박또박 글을 쓴다. 온 정열을 다하여 그리운 이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듯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4. 본문 속에서

p.8

지옥 같은 시련과 병마와의 싸움에서 돈 한 푼 없이 내 목숨을 건져낸 기억들을 차마 잊을 수가 없어서, 미운 오리새끼의 넋두리가 어느 날 백조의 날개가 되어 훨훨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써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엄두를 못 내는 분도 많을 것이다. 글쓰기가 힘들고 그보다는 과거를 들추기 싫어서일 것이다. 험악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숱한 사연을 가진 사람은 더 그럴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살아보니 깊은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고, 비우다보면 마음도 새로운 것으로 채워졌다. 또 그렇게 힘들게 버텨온 삶이 있어서지금의 내가 있으니, 나의 과거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용기를 냈다.

 

이 글들은 내 마음속 오래된 상처의 고백이기도 하다

 

p.9

쓰기 시작하니 서툴고 거친 글이지만, 오래 잠복해있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치밀어 올랐다.

날마다 도서관을 출입했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도서관으로. 혼자 집 지키기 싫을 때 도서관에서 사람들 속에 책 속에 묻혀있는 것이 좋다.

도서관. 나는 직장처럼 드나든다.

 

p.10

글 쓰는 것. 소싯적 염원했지만, 삶에 지쳐 다 잊었는데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리다보니 꿈이 되살아났다. 도서관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자서전 쓰기 워크숍이었다. 그걸 계기로 40년이 다 된 병상일기가 생각나 깊숙이 묻어두었던 걸 꺼내 보았다. 그때의 절박함이 다시 나를 움츠려들게 했지만, 그 글을 한자 한자 옮겨 쓰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업실이 따로 있어 넓은 책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2인용 식탁에서 이면지에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내 식탁 옆엔 A4 용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이렇게 쓰기를 계속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어갔다. 나 같은 미약한 사람도 쓰는데, 누구든 사연이 있다면 한 번쯤 용기를 내봤으면 좋겠다.

 

p.152

대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한해의 악운을 쫒고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빌었다. 밤이 되면 가을에 거두어들였던 고춧대나 수숫대를 잘라 마당에 낮게 쌓아놓고 불을 붙였는데, 아이들은 자기 나이만큼 그 불을 넘어야 했다. 아마도 별 탈 없

이 한 해를 잘 보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대보름날 아침이 되면 마을아이들이 밥을 얻으러 온다. 다섯 집 이상 얻어온 밥을 아침으로 먹는다 했는데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오곡밥은 거칠어서 우리 집에서는 해보지 못했다.

 

p161

얼마 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책을 읽었다. 100세 노인이 생일날 요양원에서 슬리퍼 바람으로 창문 너머로 탈출한 이야기다.

나는 며느리와 17년을 같이 살았다. 가끔은 섭섭한 적도, 내가 불편하게 한 적도 있었지만 별 불화 없이 잘 지냈다. 소소한 갈등이 없지는 않았으나 며느리도 그만하면 살갑게 모든 걸 잘 챙겨주고 염려해준 편이었다. 집안에 큰소리 날일이 없으니 그리 오래도록 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여럿이 같이 살면 저승길 가는 게 외롭지 않겠다 싶기도 했는데,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불현듯 딴살림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분주해졌다.

사람 마음은 사는 것에 안주하면 개선점을 찾지 않고 그려러니 하고 살아가는 쪽으로 기우는지 모른다. 그러니 나도 그토록 오랫동안 그냥 아들 가족과 함께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내가 변덕스러운 할머니로 변해가는 것을 발견하고 더 늦기 전에 실행을 하고 싶었다.

 

p.192

생일이 되면 꼭 받아보고 싶은 선물이 있다. 붉은 장미꽃 한 다발. 언젠가 아이들이 줘서 받아본 것도 같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지금 아이들이 주는 선물은 주로 현금이다. 이성적으로 현금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쯤은 감성을 느끼는 사치를 해 보고 싶다.

나도 장미꽃 다발 받는 시간을 누리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 꽃다발 아무도 안 주면 내가 선물해주자 하고, 강남터미널 꽃시장에 갈까 하다가 문방구로 발길을 돌렸다. 문방구에서 빨간 장미꽃을 만들 색종이 두 묶음을 샀다.

 

p213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산 지난날보다 내 이름 석 자로 사는 지금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앞으로 몇 번의 카네이션을 더 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 얼굴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웃으면서 모든 이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정답게 베풀면서 살 고 싶다.

 

p219

늙음이란 열정이 사라져간다는 뜻이라는데, 우리는 그날 나이 들었다’ ‘위험하다가 아닌 열정을 선택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젊음 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름답게 늙기 위해 오늘도 내일 도 도전해본다.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는 감동을 맞이하기 위해서.

 

p.227

나는 알뜰을 가장한 궁상을 떨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전쟁과 어려 운 시절을 겪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뜰해 보려고 하는 것이 요즘 사람한테는 궁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모든 것 이 풍족한 시대에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에 염증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풍족하게 살려고 마음먹어도 이건 낭비야 라는 생각이 들면, 생활이 조금 불편한 게 마음이 더 편할 때가 있다.

 

p.229

고물들

 

땀이 몸에 흐른다.

누워 있다 참지 못하고 선풍기를 발로 눌러 켰다.

선풍기가 자존심이 상했을까.

아닐 거야 나와는 오랜 친구니까.

선풍기도 전자레인지도 김치냉장고도

이십년 전 며느리가 쓰던 걸 내가 가져왔다.

내 집엔 값나가고 쓸 만한 물건은 없다.

쓰다 싫증 나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짐 되는 구닥다리 물건들뿐이다.

그래도 모두 작동은 된다.

새 마음으로 세간을 나왔으면 새로운 물건으로 채워야 하는 것 아닌가.

마음만 새로웠지 인생 자체가 고물인데

새 것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옆동 자매님이 이사 가면서 버릴 물건 중에

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가져갈 사람을 찾기에

매번 달라고 해놓고 늙은 할매가 조금 창피했다.

우리 딸 하는 말

엄마는 왜 아직 쓰고 있는 것도 충분한데 자꾸 남이 쓰던 걸 가져와

고장 나면 사줄 테니 절대 그러지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마음속에 거지근성이 있다

 

p.249

엄마, 그런데 난 엄마가 없어서 정말 서러웠어.

항상 내 가슴에 새까만 돌이 박힌 것처럼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에선 피눈물이 쏟아졌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호호백발할머니가

된 지금까지 죽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었어.

아이를 낳아 산후조리할 때도 엄마가 미웠어. 엄마 원망도 많이 했어.

누구 하나 챙겨주는 사람 없어 혼자서 미역국 끓이고 밥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퉁퉁 부풀어오른 앞가슴을 부둥켜안고

내 눈물은 강을 만들 정도였어. 지금 생각하니 다 지나간 이야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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