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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9) 파동밴드 박화용 “작은 울림이 가슴에 큰 파동이 되길”

입력 : 2018-10-18 11:34:36
수정 : 2019-06-20 02:19:39

작은 울림이 가슴에 큰 파동이 되길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9 파동밴드 박화용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파주시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시민들은 나들이에 마음이 들떠있다. 축제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특히 거리로 나온 밴드의 연주음악은 발길을 묶어놓는 마력이 있다.

 

금촌 지하공간에 깃든 밴드 연습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은 연습실은 지하인데도, 무척 쾌적하였다. 관상용 어항이 2개나 있었고, 깨끗하게 정리된 연습공간이 뒤쪽에 있었다. 소파가 자로 배치된 자리는 편한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듯했다. “Waves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작은 울림이 가슴에 큰 파동이 되어 밀려온다.” 그의 연습실에 붙어있는 문구이다.

파동밴드는 작은 울림이 가슴에 큰 파동이 되어 밀려온다.”는 모토를 의미하는 파동을 이름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파동밴드가 파주의 밴드이니, ‘파주동아리?’ ‘파주동무?’ 등등으로 파주를 쉽게 연상하게 되는 이점도 있는 것 같다.

 

 ▲  금촌에 있는 파동밴드 연습실은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통기타 하나로 시작하게 된 파동밴드

파동밴드는 처음부터 밴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박화용씨(43) 혼자 통기타 하나 들고 금릉역앞에서 노래를 했다.

박화용씨는 음악을 좋아해서 혼자 노래도 하고, 기타도 배웠다. 완전 독학이란다. 학교 다닐 때 레크레이션이나 응원 반장을 하기도 하고, 목청이 좋아 노래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 그러던 그가 혼자 통기타 들고 거리에 나섰다가 사람들 반응이 좋아 노래를 계속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2010년이었다. 그러다 2011년 문산거리축제 임진강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 2012년 금촌 코스모스 가요제에 나가서 금상을 받았다. 이 때 자신이 생겼다. “음악에 소질 있다고 인정을 받은 셈이어서, 내 목소리를 믿고 음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 밴드 결성, 연습실 마련하다.

연습실도 만들고, 음악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2013년에 처음으로 6인조 밴드로 운정행복센터 대공연장에서 공연했다. 2011년부터 계속 거리공연을 하며 만난 팬들에게 알려 500여 객석을 가득 채웠다.

어느 공연이든 소홀하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요. 첫 공연에 오신 분들 모두 거리에서 제 음악을 들었던 분이거든요. 저는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해요. 엄살 부리지 않아요. 그런 것을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찾아주는 것 같아요.”

그는 거리 공연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연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공연비와 관계없이 부르는 곳에 달려간다고 한다.

팬들이 고마운 그는 매년 1년에 한번씩 콘서트 하고 있다.

 

 ▲ 박화용씨 자신의 음악색을 내기 위해 프로연주자들고 멤버를 교체했다.

 

윤도현과 듀오가 되다. TV 판타스틱 듀오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출연할 수 있냐고.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지? 입소문이라는 것이 있더라구요. KBS, sbs, mbc 모두 전화왔는데.... 제가 음악이 본업이 아니어서, 오란다고 쫓아다닐 수가 없어요. 렉카사업이 겨울에 바쁘거든요.” 그는 생업으로 렉카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출연제의를 모두 쫓아갈 수 없었는데, 2016sbs 판타스틱듀오에서 윤도현과 함께한다는 출연제의가 와서 만사 제끼고 출연했다. 그에게 밴드 음악을 하는 윤도현이 롤모델이다.

윤도현과 공연한 후 깨달았다. ‘이제 내 음악을 해야겠다는 것. 항상 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자, 그 이후 혼자 곡작업을 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파동밴드앨범을 냈다.

모두 자신이 작곡하고 작사했다. 그리고 어디든 자작 노래를 꼭 한다. 30분 공연이면 6곡 중 4곡 유명한 곡으로, 2곡은 자신의 곡으로 노래하고 있다.

 

 ▲ 박화용씨 롤모델은 윤도현 밴드이다.

 

파주가 고향이 된 태백 사람

박화용씨는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독립하고자 하는 근성이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에 있다고 해석했다. 18살에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는 자신을 충북 단양에서 낳고, 4살까지 키우다가 아버지에게 보냈다 한다. 아버지가 키울 수 없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을 키웠다. 박화용씨는 자신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인 셈이라 덤덤하게 말했다.

학교 가을 운동회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라지, 풋고추, 된장을 점심으로 싸왔을 때, 그 때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막 울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그립고 했는데...지금은 이해해요.”

당시 아버지가 건축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이 안되어 돈이 쪼들리자 중2 였던 자신을 부산으로 불러들였다. 새엄마와 동생 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는 할아버지에게서 자금 지원을 받으려 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2 때 가출해서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3개월 일하다 잡혀내려갔다. 3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집을 영영 나왔다. 새어머니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욕하는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독립했다. 그 때 새어머니는 그의 공납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파주 봉암리 봉제공장에서 싹 튼 사랑

집을 나온 그는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일을 했다. 무엇이든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일했으니, 사장도 좋아했다. 파주 봉암리에 공장을 짓자, 그가 관리자 자격으로 오게되었다. 그 때가 20살이었다. “처음에 여기 올 때는 사장이 두 달만 있다가 와라고 했는데 24년이 되었어요.” 이제 파주는 그의 고향이 되었다.

그는 서울이든 파주이든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두 달 반만에 서울에 나갔더니, 왜 전화를 안받냐는 거예요. 전화를 안바꿔준 거죠. 당시는 삐삐도 없고 사무실에 전화해서 바꿔주는 시스템이었는데... 뿔이 나서 경리한테 뭐하는거냐고 화를 냈더니 사람들 많은데서 막 울더라구요.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 안바꿔줬다는 걸 알게 되었죠. 달래다가 결혼하게 되었어요.”

생활력 강한 부인은 두 아들을 낳은 후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지금 간호실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기타, 노래, 작곡 모두 독학

거리에서 노래를 하면 너의 목소리에는 한이 많이 서려있다. 살아오며 억눌려있던 것이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해요.” 기타, 노래, 작곡 모두 독학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더 많은 표현을 하고, 더 많은 곡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많은데 표출을 못한다. 서포트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의 첫앨범중 아버지의 일기를 묻자, 군산 쉐보레 공장에서 퇴직당해서 양복입고 등산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자신과 같다는 생각으로 단숨에 작사 작곡했다고 말한다.

있다는 걸이란 곡도 사연이 있다. 음악한다고 집에 잘 못들어가는 자신에게 부인이 당신은 음악할 시간은 있고, 나랑 놀아줄 시간은 없냐?”고 하길래, “내가 휴일이라고 노는 것 보았나? 이것이 나에게는 휴식이다.”라고 했더니, 부인이 편지 5장을 써서 보내왔다. 그 내용을 가사로 해서 작곡했다고 한다. 부인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영상을 찍어주고, 많이 응원하고 있다.

 

▲문산거리축제에서 파동밴드 음악에 빠져있는 시민들


파주에서 키우는 파동밴드의 꿈

파주에는 중고교 밴드가 18팀이 있어요. 아는 후배도 있고. 제가 밴드를 하니까, 아이들이 삼촌 삼촌하면서 쫓아다니죠. 걔들이 삼촌은 좋겠어요. 공연을 많이 하니까.”라고 말하는데 짠하더라구요. 공연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안타까워요. 매년 1년에 1번씩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파주락페스티발 만들 생각이예요. 일등 한 학교에 매월 20만원씩 장학금을 줘서 밴드활동에 필요한 데 쓰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졸업하면 공연에 후배를 데리고다니고 싶어요.“

자신처럼 음악이 좋아도 먹고 살기 바빠서 내려놓았다가 나중에라도 직장인 밴드든 뭐든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를 위해 젊었을 때 음악을 맘껏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것.

파주가 나를 키웠으니 파주 중고생 밴드를 돕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는데도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

콘서트 한 번 하면 350만원 이상 들어가고, 아무리 안들어도 최소한 200만원 이상 들어가는데, 이 경비와 장학금을 마련해야하기 때문이다. “후배를 키우겠다고 생각인데, 남에게 후원해달라고 하지 못해서... 내가 빨리 커야겠다고 생각해요. 페이를 많이 받아서 후배를 키우려고요.”

렉카사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로 담배를 약간씩 하지만, 술은 못한다는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쉼없이 달리는 풍차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공연이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며, 책상 앞 중용 23장이 떠올랐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나오게 되고, 겉에 베어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작은 일에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그였기에 파동밴드는 파주시민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곧 파주청소년 락페스티발을 열게 될 것이다.


글 임현주

사진제공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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